예민이를 도닥여준 작은 공기의 울림들
때로는 천 명이 넘는 이 큰 조직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도움을 청하러 달려갈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심장이 덜컹하는 느낌과 함께 저 아래 핵을 뚫고 지구 반대편까지 떨어지는 것만 같은 착잡함이 들 때가 있다. 무중력 진공 상태에서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만 같은 기분.
그런데 또 세상은 귀신같이 내가 마냥 이렇게 처절한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게 놔두지 않는다.
어찌나 찰진 밀당인지 딱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얄미울 정도로 따스한 위로를 보내준다.
사실 그중 대부분은 별 거 아닌 말 한마디 또는 손짓 한 번이다. 그런데 프로예민러들에게는 그 작은 공기의 울림이 내 몸을 꽉 끌어안아주는 것만 같은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메모장에 토독토독 적어 내려갔다. 기억하고 싶어서.
신입사원이라는 구차한 핑계는 내 입은 물론 그 어느 누구의 생각에도 떠오르지 않길 바랐다. 그 무엇보다 잘하고 싶었던 일인 만큼 속상한 마음에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결국 참지 못해 잠시 비상구 계단으로 도망쳐야 했다.
창피함, 죄송함, 속상함, 두려움... 오만가지 감정이 2배속으로 내 눈앞에 반복재생되는 걸 휘휘- 날려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순간 내 시야 한 구석에 밀려 들어온 까만 무언가. '쓱-'
그 어떤 말 한마디도 없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빨대 하나를 내 책상에 슬쩍 올려주시곤 자리로 돌아가신 과장님. 이걸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그럴 때가 가끔 있다. 나도 모르게 모난 마음이 들 때, 아니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이 삐뚤게 나갈 때.
어찌 됐든 나조차도 내가 참 별로라고 느껴진 날 이런 나의 모난 모습과 마음까지도 괜찮다고 도닥여주고 안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결국엔 최종 책임자인 '내 사고'였고 '내 책임'이었다. 그 누가 뭐라고 질책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가장 괴롭고 가장 속상한 사람도 나였다.
그래도 이런 돌발상황 몇 번 겪어봤다고 애써 감정은 뒤로한 채 최대한 신속하고 담백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모색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연차였지만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불청객 덕에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전화 통화와 메신저 오가길 몇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정리된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통화한 유관부서 선배님이 말 끝내 건네주신 "고생했다" 한 마디에 나는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 기록을 다시 하나하나 꺼내어 곱씹어보는 이유는 그 때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만,
이제 나도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따스한 울림이 되어줄 준비를 해두고 싶어서이다.
그 모든 위로와 응원 덕에 꽤나 그럴듯하게 자란만큼, 따스한 공명을 만들어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