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경찰인데, 마약 운반자를 쫓고 있어요’
이스탄불로의 비행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랜딩을 위해 캐빈과 승객 점검을 마치고 지정된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을 때였다. 한 승객이 내게 다가오더니 글자가 빼곡히 적힌 휴대폰 메모장을 내밀었다. 랜딩이 코앞이니 어서 자리에 앉으시라고 안내했지만, 그는 휴대폰을 내밀며 막무가내였다. 내민 글을 읽어보니, 본인은 경찰이며 쫓고 있는 마약 수배범이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자를 잡기 위한 경찰 인력이 공항에 대기 중이니 본인을 제일 먼저 내리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바로 부사무장님께 알리니 그를 캐빈 맨 앞자리로 안내를 해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우리가 그 자의 말만 믿고 승객의 짐 검사, 몸 검사를 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으며 그 사람 또한 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특정해 주지 않았으니. 그렇게 그는 원하던 대로 이코노미 승객 중 가장 먼저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승객의 하기 통로는 한 곳이니, ’ 마약 수배범(?)‘ 보다 먼저 내렸다면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그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마약 사범을 쫓는 경찰이었던가, 그냥 가장 먼저 내리고 싶어서 꾀를 쓴 성격 급한 승객이었던가. 하지만 전자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고 싶다.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거대한 마약 사건에 잠깐 휘말린 것이고, 그 비행 이후로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마약 추격전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크크, 허무맹랑한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