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아니어도 바꿔볼 수 있는 '조명'에 대한 고민
나는 현재 #월세 집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하고 나서 함께 산 첫 신혼집이고 거주한 지는 1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과 계속 함께 살아서 이 집이 내 인생의 첫 독립된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나는 독립을 하긴 했으나 내 집에서 살고 있는게 아니다.
집 관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문제해결과 별도로 집주인 쪽에 리포팅 해야하는 추가 과정이 수반된다던지
: 최근에도 화장실 타일에 금이 쫙 갔는데 (다행이도 신축아파트 단지이기도 하고 이 집만의 하자는 아니어서 관리사무소를 통해 공동으로 A/S를 받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집주인 쪽에도 (1) 이런 일이 있고 (2)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아파트 전체의 문제다 - 라는 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못 하나 내 마음대로 박지 못한다던지
: 뭐든지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것 보다야 걸려있는 것을 선호하는 나에게 못을 박지 못하는 건 좀 서글픈 일이다. 물론 세상에는 전세/월세 주민이 많기 때문에 #3M코멘더 라던지 #무타공벽걸이 등등이 잘 나와 있지만 깔끔함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좀 떨어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불편한 부분은 #인테리어 부분을 내 마음대로 고치는데 제약 조건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집주인 분의 허락을 받으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벽을 허문다던지 집 구조를 왕창 바꾼다던지 큰 변화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뭐 이해는 충분히 된다. 다음 세입자를 받기 위해서는 집 구조가 평범한 게 제일 좋으니) 그리고 세입자 측면에서도 어차피 떠날 집에 큰 돈을 투자해서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리하여 집 공간에 대한 변화를 꿈꾸는 나같은 세입자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두는 것이 인테리어 소품. 그래서 처음에 신혼집에 들어올 때 가구/가전 선택에 온 힘을 기울였고, 나중에 살면서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소품들로 조금씩 변화를 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인테리어 소품이라는 영역도 미적 센스(?!)가 발휘되어야 하는 부분인지라 무심코 휙 사서 들이는데 주저함이 컸다. 내 스스로의 감각에 대한 의구심이 좀 큰 편이다 보니, 이케아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실험할 수 있는 여지는 많아졌지만 왠지 예쁜 쓰레기를 구매하고 집에 어울리지 않아 바로 쓰레기통으로 갈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심심할 때마다 디자인서적이나 인테리어 관련 인스타그램을 찾아보고는 있는데 여전히 텍스타일이나 미적 기능에 충실한 오브제들을 선뜻 구매하기 어렵다.
이런 나 같은 사람이 반 강제적으로라도 실험해 볼 수 있는 공간 인테리어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기능과 미학 요소를 함께 구비하고 있는 #조명 아이템들이 그것이었다. 마침 관련해서 추천받은 책도 있겠다 주저없이 책을 골랐다. 조명 디자이너분께서 퇴사(?!)를 하시고 쓴 책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실제적인 사례도 많이나오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팁들도 많이 녹아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제목: 빛의 얼굴들
저자: 조수민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빛이다.
물체는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사물에 맞고 반사된 빛을 감지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빛이 얼마만큼의 색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가 보는 사물의 색상도 달라진다... 빛과 환경에 따라 색은 무한히 변할 수 있는 존재이다.
빛은 하늘 위 태양이나 집 안의 조명등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기로 가득 차 있는 대기 중에도, 우리가 머무는 방 안에도, 탁자와 그 위에 놓인 책 위에도 빛은 존재한다. 그리고 빛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사하고 산란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 극히 일부의 빛, 그러니까 내 눈으로 들어온 빛 만을 감지하며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고한다... 같은 공간, 대상, 사람이라도 우리가 어떠한 빛을 통해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소비재 회사 마케터로서 제품을 개발하고 광고컷을 고를 때마다 항상 고민했다. 어떠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은가.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고 가지고 싶에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상품을 접하는 채널이 디지털이고 이 가상공간에서 드러나는 영상/사진/애니메이션 등이 첫 인상을 좌우하다 보니 제품이 드러나는 사진을 어떻게든 잘 찍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때마다 조명이 가지는 힘을 익히 깨닫고는 있었으나 항상 2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곤 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한 제품 자체의 색감과 모양이 '잘 빠져야' 빛으로 보정되는 부분도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이는 크나큰 오산, 아니 기획자의 오만이었다. 우리는 빛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리고 동일한 사물이어도 어떻게 어떤 환경에서 보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데에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의 오(5)감 중에서 시각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서일까, 시 감각에 대해 나도 모르게 자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빛 덕분에 내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색감이건 분위기건 보여지는 것인데 말이다.
빛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
조명은 천장에 달아야 한다?
사실 높은 공간에서 내려오는 빛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아니 당연한 빛이다. 우리에게 가장 많은 빛을 주는 태양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천장의 조명은 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우 아쉽다. (1) 뻔한 빛만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수 밖에 없으며 (2) 용도에 따라 쉽게 바꾸거나 옮기지 못하고 (3) 우리의 생체리듬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환경은 천공광* 때문에 하늘이 매우 밝지만, 천장에 설치되 조명은 바닥을 가장 밝게 만들고 천장을 상대적으로 가장 어둡게 만든다.
*천공광: 태양 빛을 구성하는 두 가지 빛이 있다. 태양으로부터 바로 지면 위로 떨어지는 직사광(Direct Light)과 대기 중 산란한 빛이 대지를 뒤덮어 땅을 균일하게 덮으며 전체를 밝혀주는 천공광(Sky Light)이다.
조명은 꼭 밝아야만 하는가?
우리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빛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바쁘다. 방등과 팬던트, 주방 조명부터 다운라이트까지 모두 빛을 내는 부분을 드러내 어떻게든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조명은 우리가 머무는 곳의 공간감과 분위기를 만들어 시각적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숨겨진 빛은 아름답다...
주변의 광원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아야 좋은 빛이 나온다.
한국의 아파트 조명의 기본값은 방 구획에 따라 1방 = 1천장등이다. 그것도 팬던트 형태로 내려와있는 등이 아니라 천장 맨 위에 딱 붙어있는 플랫한 조명. 조명은 또 엄청나게 밝다. 색온도 6000K를 넘는 경우가 대다수. 집에서 업무를 보는데 큰 문제가 없다. 사무실 조명과 거의 동일한 밝기이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몇몇 의도된 곳을 제외하고는) 일상 공간에 따른 조명의 차이가 크게 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서양(업무 특성상 서양에 갈 일이 많아서 이쪽 경험치가 많다. 다른 아시아 지역은 사실 잘 모르겠다)의 집에 방문하면 천장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스탠드조명, 플로어조명, 팬던트 조명 등 한 공간 안에서도 여러 조명을 사용한다. 조명이 많으니 밝겠거니 싶지만 조명 하나하나의 색온도가 한국 대비 굉장히 낮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어두운 (그러나 안락한) 느낌이다. 집이 아니라 몰, 백화점 등에 시장조사를 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회사의 직영 매장을 내기 위해 북미 지역의 일반적인 규정에 맞춰 조명 스펙을 다 바꾸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안전규정 때문에 색온도를 4500K 이상 쓰는 것을 엄격히 금지함에 따라(화재 위험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밝고 쨍한 빛이 구현되지 않아 아쉬웠던 적이 있다. 매장에서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조명을 빵빵하게 쏴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조명들 덕분에 전체적인 눈의 피로도는 확연히 감소했던 것 같다. 매장에서 봤던 색감과 집에 돌아와서 확인하는 색감에도 큰 차이가 없고 말이다.
어느순간 부터 한국에서도 #간접조명 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빛에 대한 선호도 다양해지고 있는 듯 하다. 아니면 빛에 대한 피로도 증가에 따름인가...? 집 안까지 점령하고 있는 형광등을 보면 가끔 야근이 (여전히) 당연시 되고 '일해라 노예야'라는 문장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이제 그런 삶은 지양해야지.
이리 본다면 조명의 선택은 내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에 새해를 맞이한 겸 조명을 바꿔보기로 야심차게 결심했다. 그러나 조명 모양 선택지는 너무나 많다. 유명한 조명 오리지널은 또 매우 비싼데 과연 저걸 들이는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짝퉁을 사기에는 왠지 모를 마음의 불편함이 있다. 이케아에서 저렴한 조명을 사 볼 수도 있겠다 싶은데 매장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사기에는 만삭 임산부라 주저된다.
이런저런 고민을 건축가 지인 분께 토로하니, 그렇다면 가장 쉽게 조명 모양이 아니라 조명 스펙부터 바꿔보는게 어떨지 제안해주셨다. 그래, 형광등 일색인 집에 색온도가 좀 낮은 조명을 시도해보자. 자그마한 시도 하나부터가 내 공간을 어떻게 바꿔줄지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