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행복하게'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살 것인가?
2018년에 남편이 주재했던 '내집짓기' 모임에서 읽었던 책으로 3년 만에 다시 복기해본다.
제목: 어디서 살 것인가
저자: 유현준
이젠 거의 스타강사(?!) 에 오르신 유현준 건축가분의 책. 그 분의 책 중에서 제일 처음 읽었던 책이었던 듯.
어디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관통하는 큰 질문에 대해 (삼천포로 몇 번 빠지는 듯 하지만), 저자는 결국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점, 건축이 혼자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계속 소통하며 협의해 나가야 한다는 다소 원론적(?)인 결론을 냈다. 제약 조건이 오히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으니, 더 이상 기존의 것과 차별화된 것을 내기 힘든 세상에 살고있는 독자들이여 힘내라(!)는 위안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건축의 관점에서 해결해보기 위해 공적인 공간, 좀 더 인간 스케일에 맞추어진 공간을 중요하게 언급한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책 내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주창한바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술, 사회 (요즘은 자연까지) 환경 변화에 비해 인간의 DNA는 예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변화의 즐거움, 외부 자극, 그리고 사람에 대한 기회를 추구한다.
(코로나 때문에 한 2년여간 누리지 못한 것 같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퇴근 후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힐링을 했는지
열심히 공원에 나가 달렸는지
회사 외의 다양한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활동했는지
경복궁 근처의 고즈넉한 공간을 산책하길 좋아했는지
요즘은 퇴근하자마자 바로 집콕이기도 하고 거리두기 적용 확대로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삶은 군중 속의 외로움이자 자유이며 나는 그 도시의 매력을 십분 즐기며 살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쪽으로 빠지지 않는 균형이며, 그 균형을 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자는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2. 물리적 공간의 소유를 넘어 ?
현대사회에서 나는 내가 소유한 공간이 아닌 소비한 공간으로 대변한다. 확실히 요즘은 재화/서비스를 사는 것 보다 '경험'을 사는 시대로, 나 역시 인증샷과 자랑스타그램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저자가 매우 깊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서 신기술이 만들어낸 인터넷 상 공간 역시 도시의 미래로 제시한 점이 재미있었다.
'과시'와 '자랑'이 인간의 오랜 특성이자 사회를 발전시킨 요소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과거에는 '건축'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물리적 공간을 변형하였다. 그러나 이젠 그 수단에 '미디어'와 '기술'이 추가되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온라인 상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보다 내 맘대로 편집하고 왜곡하기 쉽다. 그 결과 '기술'이 이제 나의 본 모습을 조종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면서 여전히 나는 '내집 마련'에 대한 꿈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 결혼을 하면서 + 특히 임신까지 하게되자 그 목표는 더욱 명확해 지는 것 같다. 여전히 물리적 공간의 소유는 중요하다. 패러다임이 변화한다고 하지만 '소유'가 배제된 완벽한 공유/경험 경제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신축 건물은 때로는 주변 컨택스트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의 의견 제시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울시 구/신청사의 예시 사진을 보자마자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예전 (그래봤자 18세기 이후겠으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오는 파리의 구 시가지가 떠올랐다. 기존의 것과 잘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건 과거의 시각에 고정되는 것일까? 새로운 컨택스트를 제시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거부감이 크면 결국 그건 잘못된 건축인게 아닐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은? 나는 어디서 살 것인가?
사람마다 주어지는 자연,사회적 환경이 다르니 각자에게 맞는 공간은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추구하는 공간 역시 본인의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18년도 30세의 나는 (도시의 삶에 지쳐 시골로 떠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면서도)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라는 도시의 삶을 좋아하는 자칭 '차가운 도시 여자'였다. 아, 그때도 물론 전제가 있긴 했었다. 정신없고 쫒기는 느낌이 들 때도 많지만 그 사이의 소소한 여유를 즐기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어찌보면 정신승리일지도?
21년도 33세의 나는 이제 결혼을 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그 사이에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갔고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서의 삶이 과연 옳은지 큰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젠 어디에서 소외되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