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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포동굴 Jan 20. 2022

[읽다]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란 내가 결여하고 있는 것을 채워준다고 느낄 때

집을 짓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관련한 여러 텍스트를 찾아 읽게 된다.

앞으로 건축, 공간과 관련된 책들을 읽게되면 내 생각 정리 차원에서 독후감을 하나씩 남겨두고자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읽다 보면 항상 자아성찰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건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푼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나도 이렇게 매력적이면서도 생각을 곱씹게 되는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인간이 어떤 공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


1. 우리는 건축, 공간에 대해 얼마나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을까? 


예전보다 인테리어 혹은 디자인 등의 위상이 많이 올랐다고나 하나 여전히 건축에 대해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백신과 같이 생명에 직결되면서도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이점이 없다고 혹자는 볼 수 있으니깐. 하긴 요즘처럼 내 집 마련/ 부동산 정책이 (백신과 더불어) 최고의 핫이슈인 시절 마저 '어떤 건축' 이냐는 질문을 하기 보단 '서울/수도권에 위치한 아파트 공급 및 가격'에 대해서 주로 논의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2021년도의 모습이 근대화, 기계적인 건축의 주창하던 19세기 르코르뷔지에 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르코르뷔지에에 대해서는 현대에 들어서야 건축에 있어서 인간성을 모조리 없애버렸다는 극단의 평을 받는 건축가이지만, 르코르뷔지에가 살았던 시절 - 넘쳐나는 도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 의 시대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21세기의 한국은 19세기와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싸고 빠르게'로 대표되는 효율성의 집합체인 아파트를 목매어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인 것 같다.


+)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르코르뷔지에에 대해 비판의 시각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알아왔던 이 건축가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이자 필로티 등의 내가 좋아하는 설계요소를 도입한 시대의 아이콘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그가 지은 '빌라 사보아'에 거주하던 건축주 분들은 살면서 불편함을 지속 호소하였으나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는 본인의 생각이 너무 확고하여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답답한 건축가였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의 기준을 제시하였으나 정작 건축주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과연 좋은 건축가일까?


2. 집의 기능


르코르뷔지에가 모더니즘의 시각에서 과학적 이성으로 정의한 집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 더위, 추위, 비, 도둑, 호기심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켜주는 피난처

- 빛과 태양을 받아들이는 그릇

- 조리, 일, 개인생활에 적합한 몇 개의 작은 방


그러나 건축/디자인 혹은 공간이 정말 저런 기능적인 목적만을 가지고 있을까? 저 외에 아무런 추가적인 감성 요소가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경험치를 이야기하자면 평일 퇴근하고 내 집에 들어오면 안락, 평안, 위안을 느낀다. (코로나 시대에 너무 먼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벼르고 별러 떠난 해외여행에서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지언정 결국 집에 돌아와서 이 한 마디를 외치게 된다. 역시 집이 최고야.


나는 아파트에서만 25년 넘게 살고 있다. 아무래도 (이사를 간다 해도) 규격화된 직사각형 틀을 벗어나지 않다보니 아파트 구조 자체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우울하지는 않다. 내 집에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들이 채워지면서 (남이 보기에 무쓸모라고 일침을 놓을지 모르겠어도) 그냥 보기만해도 좋은 요소들이 있다. 그냥 존재만으로, 혹은 예쁘다는 이유로 우리 집에 들어와서 나를 위로하는 오브제라고나 할까?


실용적인 쓸모가 없으면 왠만하면 구매하지 않는 나 조차

- 집안에 들여높은 식물 (살식마이긴 하지만... 자꾸 식물이 죽어요)

- 조립해서 진열해둔 레고 아키텍쳐 시리즈 (사실 먼지 털어주는게 일이긴 함)

- 커플 곰돌이 인형 (그냥 보고있음 귀여움)

- 바람에 흩날리는 흰색 커튼자락 (사실 빨리 더러워짐)

을 보고 있으면  굳어있던 표정이 한껏 풀어지게 된다. 


저자는 이를 좀 더 멋지게 표현하여 '건축이 나에게 말을 건다'고 표현했다. 그렇지, 건축/공간/오브제가 나에게 주는 분위기가 있다면 그게 바로 말을 거는 것이겠지. 전세집이냐, 혹은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고 있어 내 의사 반영에 제약이 있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다들 집에서 저런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딱딱한 회사 공간에 머무르다보면 꽤나 자주 답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집에 오면 그렇지 않다. 절대적인 공간 사이즈가 작아도 나의 공간에서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모여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공간은 그렇게나 중요하다.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 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양식도 다양하다'


3.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낄까?


① 내 가치관 혹은 지향하는 바를 잘 표현하는 사물에서 우선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② 그런데 그 지향점이라는 것이 (좀 더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가 결여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즉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 사실은 나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준다고 느낄 때 일 수 있다.


① 관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사실 ② 관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나 희망하는 모습을 옆에 두고자 함이 내 취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정의하는 나의 취향을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 


[내가 생각하는 내 취향]

- 모던한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곡선/색의 대비 등의 비정형적 재미 요소를 추구함 

- 18세기 이전 과거의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들에 대해 호감을 가짐

[속 마음]

- (변화에 대해) 적응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보다 규격화된 엑셀돌이 업무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나

- 그러나 나는 창의적인 EQ형 인간이 되고 싶음. 그리고 촌스럽고 싶지 않음


4. 아름다움에 대한 공동의 합의를 이끌 수 있을까?


사실 답이 명확하게 떨어지는 중세 혹은 과학 만능주의 시절의 근대 건축에 대한 대다수의 합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의 양식은 인간의 수 만큼 다양하니까. 그러나 절대적인 답은 없고 모든 것을 개인의 취향으로만 돌리는 상대주의 끝판왕 역시 그닥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런 두 가지 양 극단의 사상 사이에서 저자는 '건축의 미학'이라는 챕터에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통상 느끼는 다섯가지 가치관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질서/ 균형/ 우아/ 일치/ 자기인식인데, 따지고 보면 이건 내가 원하는 심리 상태이다. 이 복잡하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힘겹게 출퇴근을 하는 나는 매일같이 혼돈의 도가니에 빠지며 품위를 잃거나 혹은 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는 상황에 자주 봉착한다. 그런데 이게 비단 나만 느끼는 심리상태일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미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심신의 안정을 원할테고,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면 건축에서 저런 요소를 찾게 될 수 있을 듯 하다.




결국 건축/공간은 내가 원하는 심리상태의 물리적 구현이다. 그러므로 일단 나를 알아야한다...!!


다만..... (구현하는 방법론은 둘째로 치더라도) 저 심리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자아 성찰은 평생 지속된다고 했던가? 내가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의하는 것 부터가 난제이다. 그래서인지 일단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동안 이 책에서 제시한 신선한 방법, ② 내가 뭘 결여하고 있을지 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할 듯 하다.


그렇지 못하면? 저자는 말한다. 이상한 공간/건축물이 나올테고 이건 마치 이상한 애인과 결혼하는 것 혹은 맞지 않는 일자리를 얻는 것과 같다고. 파국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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