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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y 11. 2021

엄마를 이해하기로 했다.

엄마의 따뜻함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엄마는 나와 성격이 정말 다른 분이다. 엄마는 처음 만난 사람하고 절친될 정도로 친화력이 정말 좋고, 누구에게나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시는 분이고, 조금 더 손해보고 살더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분이다. 반면에 나는 남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자 하며 피해 주는 것도 싫어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들면 할 말을 하고 이성적인 아빠를 많이 닮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와 딸, 하지만 이렇듯 다른 성격의 모녀지간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와 함께 살아오며 기억나는 엄마의 일화를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1. 어릴 적,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딱 한자리가 남아있던 적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엄마는 절대 안 앉으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왜 안 앉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거동이 힘든 사람이 탈 수 있잖아 엄마는 서서 가는 게 편해'라고 답하시곤 했다.


2.  중학교 때 수술해서 입원했을 당시, 엄마는 늘 병원에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오시곤 했다. 엄마는 내가 먹을 것만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항상 넉넉하게 준비해오곤 하셨다. 다른 병동 보호자들, 그리고 간호사들한테 떡과 과일을 이쁘게 깎아 나줘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창 예민하고 사춘기였던 내겐 엄마의 오지랖이 너무 싫었다. 나는 엄마한테 투덜거리며 '엄마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인데 왜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거야?'라고 말을 한 적 있다. 엄마는 '다 같이 먹어야 맛있지!'라고 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가뜩이나 수술 때문에 예민하기도 했던 나. 모든 게 좋게만 보이지 않던 사춘기 시절, 엄마의 너그럽고 넓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춘기 시절의 나.


3. 엄마가 식당을 운영하셨을 때, 어려운 사람들이 오면 된장찌개를 서비스로 주셨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어렵다는 사람들 다 도와주다 보면 우리가 망하지 않겠냐고 엄마에게 투덜거리던 갓 성인이 되었던 딸, 엄마는 그럼에도 내가 여유가 있다면 베풀며 살아가는 게 맞다며 딸을 다독이곤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함께 30년을 넘는 세월을 함께하며, '엄마는 베푸는 거 좋아해. 베풀어야 복이 온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부터 너무 착한 엄마를 닮기 싫었고 이성적인 아빠를 닮아야지 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아빠를 많이 닮았다. 


며칠 전, 딸은 엄마의 오지랖 때문에, 엄마는 이해해주지 않는 딸 때문에 그런 이유로 서로에게 서운함이 있었다.


그 날 따라 오지랖 넓은 엄마가 너무 답답했던 날이었고 친오빠한테 '어휴, 우리 엄마 너무 착해서 답답해 나랑 너무 달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라고 하소연을 하고 말았다. 오빠는 웃으면서 '자식인 우리가 엄마를 이해해야지! 엄마만큼 좋은 엄마 없다 세상에'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고, 남에게도 한없이 관대하고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에 너무 속상했다.나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엄마와 관련된 책을 알아보고 있었으나, 오빠는 엄마를 이해하기 좋은 글이 있다며, 글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 글은 엄마가 대학교 사회복지 전공 공부할 때, 쓴 과제물이었다.


일단 받았고 정말 이해하기 위해서 경건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읽었다. 엄마의 삶이 쓰여있는 글이었고,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5남매 중에 장녀로 태어났던 우리엄마.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도 도와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엄마는 장녀라는 무게를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장녀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을 돌봐야지라며, 더 베풀며 살아가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같은 상황의 나라면, 내 꿈을 펼치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해 살아가야만 했던 엄마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을 돕는 삶을 살기 위해 만학도가 되어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자격증도 취득한 엄마. 배움을 위해 늦다면 늦을 수도 있는 공부를 시작한 엄마, 배움을 통해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식들을 더 잘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던 엄마, 그래도 자식들이 잘 커주어 감사하다는 엄마의 글을 보니 눈물이 핑돌고 말았다.

 

난 엄마에게 무뚝뚝한 딸이었는데, 늘 가족과 자식들에게 더 베풀 수 있는 엄마가 되고자 했던 나의 엄마. 그런 엄마의 딸로 태어난 점에 너무 감사드린다.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과 봉사를 나누면서 행복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싶다고 하신 엄마, 지금까진 엄마의 베푸는 삶을 공감해주지 못하던 딸이었지만 


앞으로는 엄마의 삶을 누구보다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멋진 딸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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