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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y 28. 2021

나의 선생님

5월, 나의 설리번 선생님을 추억하며


매년 5월 스승의 날이 되면 학창 시절 잘 따르고 존경했던 선생님이 생각날 것이다. 나에게도 5월의 햇살이 무르익어 갈 때 무조건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다. 내가 정말 잘 따르고, 존경하기도 했고 늘 보고 싶은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잠깐 특수학교 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친오빠가 입고 다니던 유치원 교복과 노란 가방이 너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닌 특수학교 유치원은 교복이 없었고 가방도 딱히 예쁘지 않았어도 나의 유치원 시절 3년 동안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많았다.


즐거웠던 기억이 가득했던 그때.


그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엄마는 나를 일반 유치원에 보내려고 했으나 현실은 이곳저곳에서 거절을 당하고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교육을 시키고자 했던 엄마는 엄청난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현실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엄마가 내린 최선의 결정은 특수학교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그때의 엄마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겠으나 딸이 받는 차별과 선입견을 옆에서 가장 많이 지켜본 엄마는 참 많이 속상하셨을 것 같다. 그 당시,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고 어렸던 우리 엄마가 느낀 야속한 현실에 얼마나 많이 슬펐을까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특수학교 유치원에 막상 가보니, 정말 좋은 선생님들이 많으셨고 친구들도 활기찼다.  일반 유치원과 다름없이 '기린반', '코끼리반' 등등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비장애인들만 있는 우리 가족, 이웃주민들과 함께 지내온 내겐 처음 만난 청각장애인 친구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각각 다른 발음, 그리고 제스처들이 오가는 모습들. 당시 청각장애인 교육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많이 미흡했었기에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하신다. 엄마는 말할 때 나오는 혀의 움직임을 직접 그려서 방 안에 붙이고 나를 그렇게 가르치곤 했다. 열정이 가득했던 엄마 덕분에 나는 그 반에서 눈치가 가장 빨랐고, 말을 제일 잘하는 어린이였다고 한다. 


선생님은 엄마한테 '어머님 이 아이가 말을 잘하네요. 수화보단 말을 무조건 가르쳐야 해요 가능성이 있으니, 더 잘할 수 있어요' 라고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 순간, 희망이 보였다고 한다.


그 이후, 5살이었던 내게 볼펜을 쥐어주며, 입안에 물고 말을 하도록 시키셨고, 실제 전화기로 통화를 하면서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였던 5살의 나에게는 그런 선생님의 교육이 쉽지만은 않았었다. 힘들어서 떼를 쓰면, 선생님은 받아주지 않으셨고 무조건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연습이 끝나면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시곤 했다. 받아쓰기 연습을 할 때는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훈련을 시키던 엄하던 노선생님, 그래도 그 덕에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곧잘 받아쓰기도 잘하던 학생이 되었고 중학교 때까지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늘 따뜻한 말과 격려를 해주시던 선생님이었다.


최근 오래된 프로그램이었던 'TV는 사랑을 싣고'가 다시 방영되는 것을 보며 수많은 연예인들이 찾고 싶은 선생님들을 찾고자 했으나 돌아가시거나 많이 늙은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도 그들처럼 선생님을 만난다면 번듯하게 잘 살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이렇게까지 성장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사는 일에 바빠 선생님을 수소문하는 일에만 신경 쓰진 못하지만 언젠가 꼭 다시 만나 뵙기를 기대해본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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