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귀찮았고 지금은 고맙고
나는 앞서 글에 썼듯이 친오빠와는 연년생이다. 내가 빠른(이젠 없어져갈 개념이지만) 년생이라 오빠는 두 살 차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연년생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보통 형제자매의 친구와 친한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오빠의 친구들은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오빠의 친구들과는 SNS를 통해 안부를 종종 묻곤 한다.
한 명도 아니고 세어 본 적은 없지만 대략 10명 남짓, 어릴 적 내 뒤에는 든든한 오빠들이 있었다. 늘 우리 집으로 놀러 와서 본인들의 집인 마냥 떠나지 않던 그 친구들. 난 오빠의 친구들과 제법 친한 편이었다. 10명가량 되다 보니 다양한 오빠들이 있었다.
10대 시절부터 봐왔던 그 모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런 오빠들과의 몇 가지 추억이 있는데 친오빠는 아마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못 가고 어쩔 수 없이 멀리 있는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그 학교에는 오빠 친구 몇 명 있었다. 혹시라도 소리를 잘 못 듣는 동생이 괴롭힘을 당할까 봐 먼저 나서 주던 오빠들. 1학년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반에 조용히 있던 날 찾아와서 '니 뭔 일 있으면 얘기해라' 라며 날 챙겨주곤 했다. 다행히도 좋은 친구들 잘 만나서 즐겁게 잘 다녔음에도 나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물으며 신경 써주던 오빠들이었다. 그 당시엔 그냥 친구들과 조용히 다니고 싶은데 왜 오지랖을 부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흔히 말하는 쪽팔림이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학창 시절을 잘 보낼 수 있던 데는 오빠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가 있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서울에 정착했을 때, 마침 서울로 상경해있던 오빠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가끔 밥이나 맥주를 사주던 오빠들. 서로 직장, 연애 고민도 나누고 여러모로 많은 힘을 얻었다. 주변의 친구들도 다 신기해했다.
'혹시 너한테 관심 있어 그런 거 아니야?' 라고 묻던 친구들이 있었다. 오빠 친구들하고는 정말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고 그저 좋은 오빠 동생의 관계로 잘 지냈었다. 타지살이에 힘들어질 때면 가끔 장문의 문자도 보내오고, 참 고마운 오빠 친구들이다.
오빠가 군대에 갔을 때는 집에 전복도 보내며 아들 노릇도 대신해주던 오빠들, 한 명 한 명 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준 오빠들. 내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매 순간순간 함께 있어줬던 사람들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지금은 친오빠가 해외에 있는 상황이고, 각자 삶을 사느라 바쁜 와중이라 이전만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늘 함께여서 고마운 사람들. 보통은 남남과도 같은 사이지만 내 친구들만큼이나 소중한 오빠의 친구들. 평소엔 낯간지러운 얘기를 하기 어렵지만 글을 통해서나마 내 마음을 전한다.
'고마워, 오빠들 덕에 내 삶의 순간순간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