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이 Apr 09. 2022

코다, Children of deaf adult

루비, 너의 꿈을 응원해!

최근에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기고 요청이 와서 청각장애를 다룬 영화인 코다와 청설을 보고 느꼈던 소감을 기고했다. 얼마전 이슈거리가 많던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코다가 작품상을 수상해서 관심있게 봤었다. 그 중 코다와 관련하여 기고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올려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선천적인 청각장애인이 아닌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게 되어 인공와우 기기를 사용 중이며 구화를 사용하며 자라왔다. 그럼에도 청각장애인의 삶을 몸소 겪으며 살아왔기에 청각장애인과 관련한 드라마 내용이나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감정이입을 하며 보게 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청각장애인 주변인의 이야기를 다룬 <코다>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남들과는 아무래도 조금 다른 삶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편이어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수 있지만 정작 내 주변인들, 특히 가족에 관해서는 말문이 막히곤 한다. 가족들이 분명 나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어떤 희생을 했는지는 감히 알지 못하고 정확히 어떤 것인지 얘기할 수조차 없다. 


코다에서는 음악에 재능이 있지만 가족이 모두 청각장애인인 주인공이 생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에 가족들의 일을 도우랴 학교에서는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바쁘고 쉼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한 장면들을 보며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주는 가족들이 우선적으로 생각났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 모든 걸 마냥 배려받는 존재로만 그려지는 현실이 싫은데 이러한 섬세한 감정선들도 잘 표현되어 있어 좋았다. 비장애인인 동생에게만 모든 걸 맡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려 스스로 상인들과 거래도 하고 흥정도 하려 하는 청각쟁애인인 오빠의 모습. 청각장애인도 단순히 배려받는 존재가 아닌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에서 비치는 청각장애인은 마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남들의 배려에만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디어의 묘사가 무서운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 청각장애인들에게 그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도 가족이나 주변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노력에는 감사하지만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배려와 희생을 강요받는 관계라면 절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청각장애인도 가족의 일원이고 듣는 것을 제외하고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다.


비록 주인공은 청각장애인이 아니지만 나름 청각장애인들의 좌절도 잘 묘사되어있다. 무전 소리를 듣지 못해 해경에 체포되어 벌금을 물게 된 주인공의 가족들. 청각장애를 다룬 영화에서 청각장애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가 필수적으로 들어가곤 하는데 실제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무너지지 않고 성장한다는 점이다. 내 가족이 내가 청각장애인으로서 겪는 작은 좌절로 인해 본인의 꿈을 접게 되거나 무언가에 실패한다면 몹시 괴로울 것이다. 다행히 주변의 좋은 사람들(남자 친구, 스승)의 도움으로 청인인 주인공들이 성공과 사랑을 쟁취해낸다. 


내가 청각장애인으로서 20년 이상 살아오며 느낀 점은 좌절이 실패는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나 또한 청인들이 겪어보지 못했을 좌절들을 겪은 일이 많다. 하지만 그 좌절들을 모두 실패로 받아들였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수도 없을 것이고 마음은 어둠을 계속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청인인 주인공들이 좌절할 때, 결국 옆에서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들이 듣지는 못하지만 어찌 보면 그 좌절들로 인해 단단해져서 어려운 상황에서 힘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장면은 코다의 오디션 장면중 수화를 하며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가족에게 메시지를 전하던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청인의 교내 공연에 초대된 청각장애인 가족들은 노래를 전혀들을 수 없어 상황에 공감할 수 없고 자신의 딸이 노래를 잘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청각장애인에게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란 음악을 즐길 수 없는 것이라는 물음을 던져줬지만 마지막엔 이마저 해결되는 모습이었다.  BTS의 수화를 활용한 춤이 화제가 된 것처럼 노래를 주제로 했던 영화에서 수화가 주는 울림이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파도쳤다. 사실 노래라는 것의 본질도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교감이라는 것처럼. 청각장애인과 우리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관계가 희생과 헌신이 아닌 교감임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