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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통 Dec 26. 2020

평범의 가치 2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 사랑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듯 안 하는 듯 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던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열심히 한다는 건 주관적인 평가이기에, 내가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노력을 안 기울인 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성과가 안 나온 걸 수도 있다. 또 이 역시, 누군가는 큰 성과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한 ‘성과’란 누구나 ‘우와!’ 할만한, 어디 가서 당당히 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내 이야기가 소위 말하는 ‘성공의 지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삶을 살아갈 따름이다. 그런 평범함이 눈에 부신 그런 ‘성과’들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평범’도 소중하고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누군가는 공감하며 위로받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나의 ‘평범’ 한 일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피아노

   어릴 때 7살 때인 것 같다. 유치원 갔던 첫날, 강당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나는 그 그랜드 피아노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엄마한테 이야기한 듯하다. 마침 엄마도 나를 피아노 학원에라도 보내야겠다 생각했던 터였는지 알겠다 하셨다. 다음날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나니 영창 새 피아노가 집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로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장장 6년을 다녔다. 그것도 겨우겨우 버티다 버티다 그만둔 거였으니. 피아노 배우기는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선생님은 손가락 모양이 중요하다며 자꾸 달걀 잡는 형태로 손가락 모양을 만든 다음에 치라하셨다.

난 그 넘의 달걀 잡는 형태의 손가락 모양 만들기를 자꾸 까먹어 혼나기가 일쑤였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배우기 전부터 달걀한테 진 느낌이었다. 결국 우둔한 나는 달걀 모양 손 형태 만들기에 싫증이 났다.

그래도 바이엘은 끝내야 할 것 같아서 우 격 우 격 배웠다. 그리고 체르니 100을 쳤다. 남들이 체르니 30은 쳐야 한다고 하고, 엄마도 피아노 학원 그만둘 거면 뭐하러 저 큰 피아노를 사게 만들었냐며 하셔서 그냥 계속 다녔다. 선생님은 작은 노트를 주시며 동그라미 열 개를 그려놓고 가셨다. 내가 한 번씩 연습할 때마다 동그라미에 색칠을 하는 거다. 그럼 오늘의 동그라미 색칠을 마치면 간단한 레슨을 받고, 집에 가는 과정이 매일매일 이뤄졌다. 주로 내가 지적받는 건 달걀 모양의 손가락(몇 년이 지나도 달걀 모양의 손가락은 나를 힘들게 했다.), 손가락 번호를 안 지키는 것, 결정적으로 악보대로 안치고 내 마음대로 바꿔서 치는 거였다. 피아노를 치다 보면 내가 대단한 음악가는 아니지만, 여기서 이렇게 조금씩 바꾸고, 저기서 저렇게 바꾸면 더 흥이 날 때가 있다. 멋지게 말하면 편곡이고, 실상은 악보대로 안치는 못난 학생일 따름이었다. 물론 항상 선생님께 혼이 나니 선생님 앞에서는 악보대로 치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게 흥이 나면 박자나 음계를 약간씩 변형해서 치다가 된통 혼나기도 하였다. 그러니 당연히 배운 시간에 비해 진도는 더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흔하게 남들 나간다는 콩쿠르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다.


이사 가고 새로 다니게 된 피아노 학원에서는 내가 적응을 한 탓인지, 선생님 성향 탓인지 동그라미 색칠하기 연습보다는 매일매일 차분한 레슨으로 그날의 진도를 나갔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를 포함한 몇몇의 언니들을 데리고 선생님 댁에 데리고 가셨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쳐봤다. 내가 처음 피아노를 치고 싶게 만든 열망을 이끌어준 그랜드 피아노를 다시 5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선생님 그랜드 피아노는 야마하였다.

그 당시에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였던...... 그렇게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주를 하고 나니, 다시 피아노에 대한 갈망이 새로워졌다. 그러나 선생님이 곧 학원을 파시고 다른 분이 인수하시면서 다시 나는 색칠 연습하는 피아노 치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때의 그 기억과 느낌은 강렬해서인지, 피아노곡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고 찾다가 마음속에 확 팍힌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마침 그 무렵인지, 그 훨씬 전이었는지 호암아트홀에서 상영했던 ‘차이코프스키’ 전기 영화 속에 그 곡이 넓은 러시아 광야의 눈 덮인 하얀 들판과 함께 울려 퍼졌다. 아마 그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피아노 하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하면 러시아의 눈 덮인 설원에 대한 이미지가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피아노곡 듣기는 좋아하게 되었고, 나도 저 곡을 쳐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긴 하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당시 나는 체르니 40번 중 20번을 치고 있었고, 하농은 50번인가 치고 있었으며 모차르트, 바흐 등을 배우고 있었다. 소곡집, 명곡집은 다 끝내고 혼자 피아노 책을 사다 영화음악 OST, 귀에 익은 재즈 명곡집 그런 것들을 집에서 근근하게 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피아노 학원을 매일같이 가는 건 정말 죽을 맛이었고, 난 몇 달을 엄마에게 졸라 결국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둘 수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그때 피아노를 조금만 더 배웠으면 쇼팽, 베토벤, 리스트 등도 치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그때 초등학교 5학년 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피아노 학원 다니는 걸 힘들어했을 것 같다. 똑같은 곡을 반복적으로 치고 연습하고 하는 것들이 너무 기계적인 일상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 체르니 30곡 연주 모음곡 음반을 사서 듣게 되었다. 내가 치던 체르니가 아니었다. 이렇게 상큼, 발랄하며 기교 넘치는 곡이었나? 싶은 생각에 체르니 30 악보를 뒤적거려보기도 했다.


피아노에 대한 갈망은 성인 되어서도 문뜩문뜩 솟아나서 몇 년 전에 전자피아노를 구입하였다. 어릴 때 치던 영창피아노는 동생이 가져갔다. 지금 내가 칠 수 있는 곡이라고는 어릴 때 그렇게 기계적으로 연습했던 곡들 뿐이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6년의 피아노 교육은 내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곡들만 치게끔 작동되고 있다.

그래서 어디 가서 피아노 쳐보겠다고 할 정도도 안되고, 그렇다고 피아노의 피자도 모르는 사람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피아노 잠시 ‘쳐봤던’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남들 앞에 멋들어지게 칠 곡 하나도 없고, 피아노 좀 친다는 사람들이 많이 치는 흔하디 흔한 쇼팽,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곡도 칠 줄 모르지만 혼자 조용히 헤드폰을 끼고, 아기들이 많이 치는 소나티네 곡들을 혼자 치며 배시시 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듯한 나의 피아노 실력은 실력 이외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해 주었고, 여러 저러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탐색하는 걸 즐거워하게끔 이끌어줬다.


그렇다고 ‘말러의 교향곡은 어떤 점에서 어쩌고저쩌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보다는 브루노 발터가 더 정통스럽지(인지 아닌지 조차 모르는)’라고 평가조차 내릴 수 없는 막귀이지만 그래도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들으면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를 때도 있고, 엘비라 마디간 OST 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치며 혼자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전문가나 깊이 있는 사고로 클래식 음악을 듣진 않지만(어디 가서 클래식 음악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도 아니고, 피아노 친다고 말할 정도도 아니지만) 평범한 나의 피아노 실력과 평범한 나의 클래식 음악 사랑은 그래도 인생을 기쁘게 해 준다.  


때로는 평범한 사랑도 마음의 고요와 희열을 줄 수 있다.


오늘의 평범 스토리 끝. (주제 :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 사랑)   

마지막으로,  다니엘 바렘보임이 지휘하고 이스트 웨스트 디반 오케스트라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Q0zkV8RyF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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