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노동조합은 가치가 없는 걸까?
오늘은 좀 더 특별한 ‘평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특별한 평범’이라는 어구가 모순적인 측면이 있지만,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어쩌면 ‘평범할 수’ 있고, 어쩌면 ‘특별할 수 있는’ 단체와 관련된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 및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누군가에게는 불순한 조직으로 비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합당하고 온당한 조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거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그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직장인’들이라는 점이다.
애당초 시작은 ‘아이리쉬 맨(Irishman)’이었다.
https://www.imdb.com/video/vi2244525849?playlistId=tt1302006&ref_=tt_ov_vi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주연이라는 이 막강한 라인업은 다시 보기 힘든 조합이며 그들이 푸는 이야기는 실존인물이었던 ‘지미 하퍼’의 실종사건을 기반으로 미국 정치와 마피아의 결탁, 그 사이 ‘노동조합’의 역할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정치드라마요, 범죄 드라마이자, 휴먼 드라마이다. 이 셋은 특수효과를 빌려 중년의 시절, 노년의 시절까지 완벽하게 분장하여 마치 진짜 그들의 일대기를 보는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의 조합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1976년도 작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에서 보여준 스콜세지의 영민한 연출력, 드니로의 패기 있는 연기가 이제는 원숙한 노감독과 노배우의 만남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니 둘의 조합은 영화의 시너지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3시간 29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그게 넷플릭스라서 더욱 가능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3시간 29분의 러닝 타임 속에 버릴 컷은 하나도 없어 보이며, 오히려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은유적인 코드의 장면들이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는 이미 ‘대부(Godfather)’에서 한차례 마피아 보스 역을 한 바 있으며, 알 파치노는 그 이후에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scarface)’에서 극렬한 폭력을 마구잡이로 보여주기도 했다.
1972년 프란시스 코 풀라 감독의 ‘대부’에서 젊고 탱탱한 모습으로 어린 ‘마이클 꼴레오네’로 대부라 불렸던 알 파치노는 늙고 쇳목소리 나지만 깡다구 있는 ‘지미 하퍼’를 열연한다. 지미 하퍼는 1957년부터 71년까지 무려 20여 년간 미국의 화물 운송 노동조합장을 지내며 영화 속 묘사에 따르면 엘비스 프레슬리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75년 갑자기 실종되었으며 몇 번이나 그와 관련된 수사를 대대적으로 벌였지만 결국 끝끝내 시체를 찾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떠도는 루머 중 하나는 마피아 개입설이었다. 영화를 보는 당시만 해도 그게 선뜻 와 닿지는 않았다. 마피아들이 지미 하퍼가 다시 위원장 자리를 노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를 소리 소문 없이 제거했다는 것인데, 도대체 마피아랑 ‘노동조합’이란 무슨 심도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그 당시 미국 정치의 현주소라 할지언정 말이다. 물론 트럭운송 노동조합 위원장이 어찌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는지도 미스터리 했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공포 도시 : 마피와의 전쟁(Fear City: New York vs the Mafia)”을 보다 보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https://www.imdb.com/video/vi3456810521?playlistId=tt12588372&ref_=tt_ov_vi
이 다큐멘터리는 1970-80년대 뉴욕을 장악했던 5대 마피아(콜롬보, 보난노, 감비노, 제노베세, 루케세) 조직을 일망타진했던 수사관들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누구를 정보요원으로 포섭하며, 그들의 거점을 알아내고 등 몇 년간의 걸친 수사 끝에 결국 그들의 검거를 성공하고 유죄판결까지 이끌어낸다. 마피아 조직의 영향력은 거대해서 일단 ‘노조’를 선점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고, 모든 공사 수주를 따내 이익을 취한다. 물론, 이건 그들의 전체적인 책략일 뿐 하급관리들은 마약사업에 일반 상인들 삥 뜯기 같은 일도 관여한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조’에 대한 선점이자 영향력 행사를 하는 점이다. 일단 ‘노조’를 장악한 마피아들은 쉽사리 건설 계약을 따내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노조원들에 대해서는 대놓고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도시의 무법자들이 된 그들은 뉴욕의 높은 건물들을 짓고, 높은 마진율을 남기고, 모든 권력을 군림하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뛰어든 검사는 ‘아이러니’하게 ‘루디 줄리아니’였다. 그는 그 이후 승승장구하며 뉴욕시장을 10여 년간 하고, 지금은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터뷰 도중 염색약이 흘러 세간의 비웃음이 된 적도 있다.
https://www.yna.co.kr/view/PYH20201120163900340
그렇게 5대 마피아들을 다 연방교도소로 보내고 도시를 정화하겠다고 선포하신 분이 이제는 초유의 사태인 ‘대선 결과 불복종’ 소송에 에너지를 쏟고 계시는 거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줄리아니의 모습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자신이 이뤄왔던 그 업적, 마피아 소탕 작전에 크나큰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약간 현실감이 동떨어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건 신기루의 줄리아니인가 싶은. )
결론은 그렇게 ‘노조’들은 마피아들의 손에 놀아나게 된 것이고, 그거에 반기를 든 지미 하퍼는 마피아들의 눈 밖에 나서 살해당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 현 상황의 ‘노조’들은 어떤 영향력과 모습을 띌까?
이 역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에 살짝 묘사되고 있다.
https://www.imdb.com/video/vi4081433625?playlistId=tt9351980&ref_=tt_ov_vi
이 작품은 2019년에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으로 오바마 부부의 첫 번째 다큐 프로젝트로 눈길을 끌었으며 기생충으로 요란했던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수상을 차지했다. 스티븐 보그너, 줄리아 레이쳐트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한 촬영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으며 이렇게 흘러갈 줄도 몰랐다고 밝힌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과 미국의 자본, 각각 문화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역동성을 주며 어떻게 인간성에 영향을 끼치는가, 앞으로 미래의 근무환경, 미래의 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주목했던 건 역시 ‘노조’에 대한 갈등이었다.
물론 어느 나라든 사측은 ‘노조’를 싫어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견딜 수 없는 노동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 ‘노조’, 즉 우리의 의견을 실어줄 단체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양쪽의 팽배한 긴장감과 대립 속에서 과연 승리하는 자는 누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승리라 지칭할 수 있을까?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노조 와해 컨설팅’ 회사와 계약을 맺은 공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공장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노조’의 해악성에 대해 설포 하고, 위협하며 세뇌시킨다. 결국, 공장에서 일어났던 작은 반란인 ‘노조’ 설립은 무산되고, 이를 외쳤던 이들은 해고 통지를 받게 된다.
사실, 이런 컨설팅 회사가 있다는 자체도 놀라웠는데 이런 방법이 사기업에서는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해 실리콘밸리나 많은 사기업들의 노조 결성 자체가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노조’는 최소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조그마한 창구일 뿐이다.
물론, 무작정 연봉협상을 부른다든지, 단체 쟁의나 궐기를 부르짖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효과적으로 직원들을 ‘활용’하고 싶은 게 사주의 입장일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 밑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그들 역시 평범하게 일하고픈, 일하는 만큼 권리를 찾고 싶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최소한의 욕망과 소망이라도 펼쳐보고 싶은 ‘평범’한 이들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 산업이 가속화됨에 따라 이런 ‘평범’한 이들의 일자리들도 로봇들로 대체될 것이다. 그들은 말도 없고, 에너지도 넘치며, 권리도 주장할 줄 모르고, 장기적으로 싸게 먹히는 노동력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길거리로 내몰린 ‘평범’한 이들에게 또 다른 삶의 지표는 어떻게 제시되어야 하며, 누가 제시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단순히 ‘노조’의 문제를 떠나 ‘평범’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A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to be 노동계급 영웅은 대단한 거야.
There's room at the top they are telling you still 그들은 네게 최상위 계층에도 여전히 갈 수 있다 하지
But first you must learn how to smile as you kill 하지만 첫째, 넌 사람을 죽이면서 웃는 방법을 배워야 해.
라고 이야기했던 존 레넌의 노래를 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QhHsdH0j4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