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과 브런치
어릴 때, 엄마가 어디선가 내 사주를 보시고, ‘역마살이 있으니,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라’라고 하셨다. 역마살이 있으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건 여러 가지가 의미가 담겨 있을 테지만, 안정적인 직업은 엄마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주술 문처럼 역마살, 안정적인 직업은 어릴 때부터 내 머릿속에 되뇌어졌다.
누군가가 그랬다. 정말 누가 그랬는지 기억해내고 싶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예전 농경시대에는 정착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역마살’이 가장 큰 죄악이었지만, 현대 시대의 ‘역마’는 당연한 트렌드이며, 필수 불가결한 생존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주를 전적으로 믿지 않지만, ‘역마살’이 있다는 말은 엄마의 부정적인 뉘앙스와 달리 나에겐 ‘신나는 모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웃기지도 않게 친구들에게 가끔씩 자랑도 했다.
“난 역마살이 있어!!!(매우 신나는 말투로)”. 물론, 아무도 나의 그런 신남을 부러워하거나 동조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역마살’은 나의 ‘역마’ 기운에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는 진짜 ‘주술 문’처럼 되어버렸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지만, 나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계속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이동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것도 나의 ‘역마 기운’이라 여기며 새로운 지역에서의 삶에 설레어하곤 했다.
그리고 휴가마다, 주말마다, 연휴마다 여행을 다니며 이것도 나의 ‘역마 기운’ 탓이라며, 때론 나의 ‘역마 기운’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역마살 驛馬煞 이란 뜻은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이라고 나온다.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라는 단어들이 핵심 개념일 테다.
그러고 보니, 나는 뭐 하나 진득하게 해 보는 스타일보다 정말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떠돌아’ 다녔던 건 같다. 그건 신체적인 것 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찔끔, 저것도 찔끔, 관심분야는 많지만 정말 우주의 유성우처럼 떠돌아다니며, 부딪혀 튕겨나가면 또 어디 부딪히고, 그런 수준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평범’을 찬양하고자 테마를 잡고 매거진을 발간하는 건, 나의 비전문성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자, 나의 ‘역마 기운’에 대한 정당화인지도 모른다.
이런 ‘역마 기운’은 사이버 세계인 인터넷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적 유물, 전설처럼 되어버린 PC 통신 이후, 인터넷 사이트 도메인을 사서 매달 돈을 지급하고 나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했었다. 그때는 뭐 그게 귀찮지도 않았다. HTML과 플래시 툴을 이용해서 디자인도 거뜬하게 만든 건 아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조잡한 페이지 여러 개를 만들긴 했다. 그때만 해도 클라우드라는 개념이 폭넓게 적용되진 않던 시절이라 FTTP를 사용해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는 것만으로도 도메인에 돈 낼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나의 ‘역마’와 ‘게으름’이 합쳐져 큰 시너지를 내다가, 결국 몇 달간 도메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서 홈페이지는 그야말로 ‘폭파’ 되었다.
아마도 더 이상 홈페이지 꾸미기에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거나, 글쓰기에 한동안 소홀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이버 세상에서 글쓰기보다는 진짜 노트에 쓰는 글쓰기에 열중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 당시에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보고 진짜 나도 그처럼 ‘독서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격파하듯이 읽고, 독서일기 작성하고, 읽고, 작성하고 (진짜 다이어리에 말이다) 하느냐 홈페이지에 대한 애정이 식었을 수도 있다.
그와 비슷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도메인을 사고, 열심히 꾸미고, 열심히 글을 쓰다, 돈을 내지 않아 영영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잊히고 의 과정은 무한루프처럼 지속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공들여 쓴 글들은 여기저기 우주에 흩뿌러지는 잔해들처럼 사이버 세계에서 떠돌다가 사라졌을 거 같다. 그리고 몇 번의 이런 무한루프를 반복하고 나서는 더 이상 돈 내고 도메인을 사서 직접 홈페이지를 꾸미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각종 소셜미디어에 그냥 즉흥적인 기분을 내뱉는 수준으로 글을 쓰곤 했다. 처음 시작은 페이스북, 무려 2008년도에 사용했지만, 딱히 놀 친구들도 없어서. 바로 트위터로 옮겼다. 글자 수의 제한이 내 마음의 글자들을 가둬두는 것 같았지만, 글자 수에 맞게 마음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법도 나름 익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그런 글자 수 제한은 이렇게 주절히 주절히 떠들 수 없어서 다시 페북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다시 두드린 페북에는 아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어차피 나를 아는 사람들만 친구로 받으니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횡설수설 헛소리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광고와 너무 많은 정치적 함의의 글들을 본의 아니게 보게 되니 정신적으로 피로함이 누적되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안 쓰는 듯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나름 추억 놀이나 하며 지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되어 페이스북 색깔로 뒤덮이기 전까지는. 어느새 인스타그램도 페북처럼 똑같은 광고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피드의 피로감이 엄습해오자, 바로 계정을 닫고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티스토리에서 리뷰 중심의 블로그에 가끔 글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 배출하고 싶은 욕망, 쓰고 싶은 갈망,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을 제자리에 앉혀서 문장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감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나는 ‘브런치’를 만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것도 ‘역마 기운’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나의 스물스물한 알 수 없는 그 기운. 물론 늘 말하지만, 나는 사주를 믿지 않지만, 나의 ‘역마’는 나의 모든 일련의 행동 등을 합리화시켜주는 가장 편한 도구이자, 알 수 없는 믿음이 되었다.
그렇기에 난 ‘브런치’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글을 쓸라치면, 가볍게 대충 술 먹고 지껄이는 것처럼 쓸 수는 없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장중함이 있다. 무언가, 진중해야 하고 ‘쓰기’에 대한 보다 진지한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고 글을 쓴다. 물론 대부분의 글들은 그냥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을 끌어당겨 앉혀놓는, 마치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서 떠다니는 물체들을 지구로 끌고 와 고정시켜놓고 있는 행위처럼 글을 쓰긴 한다. 즉, 대충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막 쓴다는 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뜬금없이 ‘아 이걸 브런치에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문득 있다.
오늘 쓰는 이 ‘역마’ 기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브런치’를 왜 하게 되었을까 차분히 생각해봤다는 건 거짓말이고 막연하게 생각해보니 역시나 나의 ‘역마 기운’이 아닌가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렇게 한 직장에 오래 버티고 있는 게 화가 나고, 화가 나서 병이 생겼는지, 병이 생겨서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가 나고, 다른 일을 기웃거리다가 여러 창작의 글들을 많이 쓰기 시작했던 지난 역동적인 시간들도 다 ‘역마’ 기운이다 생각하면 스스로가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냥 남들에게 말하기 편한 한 가지의 변명거리가 떠오른 셈이다. “넌 도대체 뭐가 힘드니?” , “난 역마가 있어서, 왔다 갔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지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니 ‘역마’는 나에겐 ‘살’이 아니라, ‘고마운 존재’ 일뿐인 셈이다.
결국, 사이버 세계에서도 ‘역마 기운’이 넘쳐흘렀던 나는 그 기운으로 이렇게 ‘브런치’까지 와서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Any Way I Want It!!
마지막으로, 사랑노래지만 밴드 이름도 ‘JOURNEY(여행)’인 데다가, 노래 제목도 Any way you want it 인 불후의 명곡을 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atxUuldUcfI&list=PLaS06n3ysgc1Kd2F878hXccmTEScRkDP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