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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통 Mar 07. 2021

#3 가제본 후 현타 오다

인쇄 이야기

  가제본만 하면 뭐든 것이 술술 다 풀릴 줄 알았다. 인쇄만 좌르르 나오고, 그다음 일정을 진행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제본 결과, 예상치 못한 일들에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다. 책에 희미한 줄이 가있었다. 페이지 수들이 뒤죽박죽이었다. 본드 제본은 잘 안되어서 책을 펼치는 순간, 책이 확 펼쳐져 본드 제본의 흔적이 역력하게 보였다.     



한마디로 조잡하기 그지없는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줘도 가지기 싫은 책”처럼 되었다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되었다. 이런 책을 돈 받고 파는 게 맞냐는 비판 섞인 어조도 들었다. 머리가 띵해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다시 처음부터 되돌아 가기로 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올바로 가는 게 맞겠다 싶었다. 후원자분들께는 책이 늦어질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다음부터는 가제본을 하고, 펀딩을 하던가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 내가 또 펀딩을 할 일이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펀딩은 일단 가제본과 교정 교열이 다 끝난 뒤, 즉 그야말로 모든 과정이 대부분 끝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인쇄소 일정도 고려해서 펀딩도 해야 한다.


욕심이 있으면 펀딩 북페어 등이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진행해도 좋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연말에 “책 한 번 내보자” 하는 건 그 나 큰 패착이었다. 일단 책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많은 과정들이 곳곳에서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타의든, 자의든.   


다시 차근차근 생각하고, 주변에 물어보니 인쇄소 문제라는 결론도 덧붙여졌다. 물론, 나의 편집이 엉망인 것도 한 몫하겠지만. 그래서 나의 구세주인 동생이 편집을 차근차근 다시 해주었고, 표지도 다시 아이디어를 모아봤다.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몇 명이 모여서 디자인을 짜 보고 이렇게 저렇게 일러스트레이트 파일에서 돌려봤다. 그중 괜찮다 싶은 걸 골랐다. 그리고 하드커버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는 몰랐다. 하드커버 만들기가 만만한 작업이 아니고, 인쇄소에서도 매우 꺼리는 거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다시 표지 종이를 고르기 시작했다. 괜찮은 하드커버 책들을 뒤적거리고 마음에 드는 종이를 찾았다. 하지만 그 종이로 하드커버를 해주는 곳은 전무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인터넷에 등재된 거의 모든 인쇄소에 견적을 의뢰했었지만, 그 종이로 하드커버해주는 곳은 아예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드커버에 많이 쓰이는 종이인 스노우지를 골라 다음과 같이 견적을 의뢰했다.


책 사이즈(판형)  102*162 mm

제본형태 : 좌철

표지 : 하드커버

하드커버 용지 : 스노우지 150g 또는 200g

하드커버 인쇄  : 칼라 4도

내지 페이지: 186 page

내지 용지 : 뉴플러스 미색 100g

인쇄: 양면 2도(앞 1도, 뒤 1도)  

인쇄부수 : 100부  

면지 : 매직칼라 A 노란색(BE15) 120g (앞, 뒤 1장씩 추가)


 그래서 결국 두 군데서 인쇄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12월 한가운데였으므로, 인쇄소는 각종 달력과 다이어리 등의 제작으로 한참 바쁜 시기였다. 따라서 보통 하드커버가 10일 정도 소요되는데, 물량 제작이 밀려 3주까지 걸릴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런 답변은 두 인쇄소가 대동소이했는데, 문제는 가제본 출력 여부였다. 한 곳은 아예 가제본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한 곳은 가제본이 가능하긴 하지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였다. 결국, 책을 보지 않고 200부(책당 100부씩)를 인쇄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시간이 걸려도 가제본이 가능한 곳으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하드커버 커버 디자인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싸바리라 불리는데, 싸바리 크기를 마쳐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해야 했다. 문제는 내가 도통 그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 네” 만 대답한 후, 급하게 받아 적은 걸 동생과 상의했다. 척척 동생은 결국 싸바리 디자인까지 뚝딱 완성했다. 몇 번의 인쇄소 디자인 팀장님과 통화 끝에 결국 수정본을 완성하였다. 그렇게 해서 며칠 동안 피를 말리는 기간을 거쳐 가제본을 받긴 받았다. (가격도 꽤 나가서, 한 권당 오 만원 꼴이었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긴 했으나 미세하게 수정해야 할 곳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아래 회색 테두리 부분의 왼쪽, 오른쪽이 맞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수정 요청을 하고

진짜 인쇄에 들어갔다.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월이라 다이어리나 달력 제작이 끝났을 거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또 다른 '복병'인 졸업논문의 인쇄가 있었다! 아하, 2월 졸업이면 1월에 논문 하드커버를 해야 하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 차례를 양보하기로 했다. 인쇄소 팀장님께서 "지금 논문 하드커버가 많이 밀려있어서요. 조금 제작 일정을 늦춰도 될까요?"라고 여쭤보시길래.  "네 알겠습니다. 1월 안에만 완료될 수 있게 부탁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아 열심히 공부한 대학생들인데, 내가 양보해야지 별 수 있나 싶었다. 그렇게 또 하염없이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텀블벅 후원자분들께 약속을 못 지켜 죄송하여서 죄송한 마음에 기념엽서를 또 제작하였다. 엽서 제작이야 1~2일이면 족하니까.

책갈피로 쓰시라고, 표지로 사용하려고 그린 그림을 책 크기와 똑같은 크기로 엽서를 제작했다.


그래서 여차저차 제작한 엽서가 총 5종이 되었다. 그리고 애 진작에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을 맡긴 굿즈 가방도 계속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엽서와 가방 제작도 아주 손쉬웠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역시 인쇄팀들과 계속 디자인 수정을 거쳤다. 같은 포토샵 프로그램을 쓰긴 했지만, 업체들마다 파일 저장 방법이 제각각이고 양식이 달라서 계속 수정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 역시 나의 부족한 포토샵 실력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긴 기다림 끝에 메시지를 받았다.


배송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방문 수령을 했다. 충무로까지 운전해서 총 일곱 박스로 포장된 책들을 조심스럽게 옮겼다면 거짓말이고, 카트에 실어서 과격하게 차에 넣었다. 충무로의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가려면 조심스럽게 할 틈이 없었다. 드디어 이렇게 총 200부의 책을 드디어 진짜로 손에 쥐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건 앞으로 펼쳐질 일의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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