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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Aug 26. 2020

엄마에게도 고래의 분수공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고래는 아가미가 없고,허파로 숨을 쉬기 때문에 가끔 물 밖으로 나와서 공기를 마셔야 한다.

그래서 고래가 물 위로 올라와 헤엄쳐 다닐 때, 고래의 머리 위에서는 분수처럼 물이 솟아 나온다.

이것은 고래가 분수공으로 숨을 쉬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물 속에서 헤엄칠 때는 숨을 잠깐 참았다가 물 밖으로 나와서 숨을 쉴 때 움푹 파인 분수공에 고여 있던 물도 함께 내뿜는다 한다.

그런 고래를 보면서 엄마들에게도 그런 분수공이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모성애


지금에서와서 되돌아보면 나는 아이를 낳고 나 스스로 나에게 크나큰 착각과 환상을 갖었었다.

신도 아니면서 엄마라는 모성애만 있으면 신처럼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엄마라는 모성애만 있으면 불가능할 것들도 모두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허나 그 자신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라는 모성애만 믿고 맨 땅에 헤딩하며 덤빈 육아는 금방 탈이 나고 말았다.

엄마라는 모성애만 믿고 24시간이라는 모든 시간을 엄마로써만 살았더니 내 삶에 나는 점점 없어져가면서 내 안에 내가 없는 가장 위험한 껍데기 삶이 되어갔다.

그런 삶의 지속에서 내 눈에서는 생기가 점점 없어져갔다. 살아는 있지만 산사람같지 않은 잉여인간같은 그 더러운 기분.. 사지 멀쩡하고 어디 모난데는 없는 사람같은데 그저 무급유모가 되어가는 그 더러운 기분..

누가 그리 살아라해서 시작된 삶은 아니었지만 그런 삶의 지속은 어느새 당연시 되어가기도 했다.

당연시 되어가면서 나의 자유시간의 요구는 터무니없는 시간으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 이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엄마로써만 채워진다면 그 엄마는 위험해진다.

엄마의 위험은 아이의 위험..결국 한 가정의 위험처럼 도미노같이 연결된다.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기에..

엄마는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엄마에게 분수공같은 시간


엄마들에게도 하루 24시간 중 고래의 분수공같은 시간이 무조건 필요하다.

엄마들도 가끔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공기를 마셔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들에게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공기를 마시는 시간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존재하는 시간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존재하는 시간은 누구의 아내라는 타이틀없이, 누구의 엄마라는 타이틀없이, 누구의 며느리라는 타이틀없이, 누구의 딸이라는 타이틀없이, 그저 온전히 나란 사람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의 행복이라함은 엄마의 하루 24시간 중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의 유무와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업주부에 하루 24시간 엄마로써의 삶의 몇년간의 지속..언젠가부터 이 삶이 나를 갉아먹었다.

하루 24시간 중 내 삶에 내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만나도 아이의 엄마로써 만나게 됨으로써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서도 내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 일상의 지속에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이런 일상은 결국 나와 아이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위험이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각을 하고 난 뒤 그저 물흐르릇이 흘려가는 시간의 소중함도 모른채 그냥저냥 살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해졌었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듯이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동안 누가 어찌보든지 말든지 그리 혼자 카폐로 출근하면서 혼자있는 시간을 가진 듯 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혼자 마시는 커피가 이리 맛있을 수도 있는지를.

그리고 야행성이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존재하는 시간확보를 위해 새벽기상이란걸 하게 됐다.

순전히 모두 내가 죽을거 같아서 내가 나라도 살리기위한 몸부림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혼자있는 시간의 고요함이 외로움이 아닌 충만함을 준다는걸.

지난 육아기간동안 나에게 분수공같은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죽어가는 진짜 나를 나라도 심폐소생술시키려했고, 그 시간에는 지극히 이기적이게도 살림과 육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

그나마 그런 시간으로 나는 짧게나마 숨쉬며 산 듯하다.

혼자만의 시간은 나만의 분수공같은 시간이고, 엄마들 다들 각자 분수공같은 시간은 다를 것이다.

요즘같이 코로나로 아이들과 24시간 그것도 외출자제로 집콕모드를 불가피하게 해야하는 상황일수록 엄마들에게 분수공같은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해보인다.

누가 먼저 그 시간을 만들어주리라 기대말고, 내가 나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시간을 확보해아한다.

시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엄마에게 분수공같은 시간은 생존이니까.​

나에게 새벽시간은


나에게는 요즘 같은 시국에 새벽기상을 통한 나만을 위한 새벽루틴이 분수공같은 시간이다.

살기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아무에게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기위해 새벽에 일어난다.

살기위해 새벽에 일어나 고요한 시간 속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진짜 나와의 연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분수공같은 시간의 꽃을 피우기위해 이리 자연으로 나와 몸을 움직이고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는다.

엄마들이 하루 24시간 중 분수공같은 시간을 당당히 요구하거나, 스스로라도 만들어서 숨 쉴 시간을 확보했음 좋겠다.

엄마의 생존은 엄마 스스로라도 지켜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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