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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Aug 23. 2020

엄마라는 그 이름

나에게 8살 이전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8살 이전의 기억을 굳이 기억을 짜내어 생각해보자면 아빠가 술먹고 들어와서 엄마와 한바탕한 다음날 냉냉하고 정막이 흐르는 집안에서 지쳐있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어린 나는 그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천진난만하지도 못하고 멀리서 그저 바라본다.

어린아이임에도 그런 엄마 앞에서 천진난만한 나의 모습은 뭔가 굉장히 죄스러웠다.  

그런 엄마 앞에서 세상물정모르게 천진난만하면 왠지모르게 안될거 같았다.  그저 그런 엄마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숨죽이고 엄마 신경 건들리지 말자였다. 괜히 엄마 신경건드렸다가 엄마가 우리두고 어느날 갑자기 도망이라도 갈까봐..

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모습은 그렇다. 술주정하는 남편으로 인해 늘 그렇게 찌들어있었다. 친척들이 다들 그랬다. 너네 엄마니까 사는거라고..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단한번도 행복해보였던 적이 없다. 단 한번도 편안해보였던 적도 없다. 

내 눈에 비쳤던 엄마는 늘 참는 사람..당하는 사람..우리 불쌍해서 그나마 엄마라는 자리라도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사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한 친구집을 왕래하면서 충격받았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엄마와 뭔가 굉장히 친밀해보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늘 엄마가 집에 있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심지어 학교시험기간에는 엄마와 시험공부도 한단다.  

그 친구는 엄마가 안아주기도 한다. 심지어 안기기도 한다. 엄마가 좋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있는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친구같은 친밀함이 느껴졌다.

8살인가 9살이던 나에게는 굉장히 큰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왔었다.

순진한 나는 나도 엄마한테 그리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따라 학교끝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가 묻지 않았는데도 주절주절 떠들어봤던 적이 있다. 

그 때 엄마의 눈빛, 말투, 공기들이 아직도 느껴진다. 난 그 날 이후 나는 그리 하면 안되는구나..를 너무 일찍 배워버렸다. 

나의 그 조잘거림도 엄마의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엄마는 늘 그런 존재이다.

다가가기에는 너무 멀고, 나라도 엄마의 삶의 무게를 무겁게 해드리면 안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준재.

내가 다가가면 엄마가 버거울거 같고, 너무 멀어지면 안될거 같은 그 기분..그 애매한 알 수 없는 감정.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들을 보아하니 하루에도 엄마와 수십번을 통화한단다. 결혼하고 나니 그리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고, 집에 가고 싶단다. 

그래서 친정에서도 수시로 자주가고, 친정식구들도 자주 부르기도 하더라.

너무 나와 반대..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나 스스로 너무 나쁜 딸은 아닐까 싶었다. 나 스스로 나같은 딸은 키워봤자 소용없겠다 싶었다. 나 스스로 나는 참 불효녀구나 싶었다. 

그런 감정이 드는데도 나는 친정에 심리적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감정속에서 갇혀있었다.

내가 결혼하고 느낀 감정은 엄마에 대한 미안함도 상당히 컸었다.  왠지 모르게 그 집안에 엄마 혼자 두고 나온거 같은 죄책감... 

나도 없는데 아빠가 또 술먹고 주정하며 어쩌지..그 상황을 또 보고싶지는 않지만 안보면 더 미칠거 같은 그 감정..

한동안 그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나살자고 엄마만 두고 온거 같은 미안함.. 그렇다고 결혼해서 보란듯이 잘살고 있지도 못하는 이 찌질한 상황.. 그렇다고 다시 그 불구덩이에 근처에라도 가고싶지 않은 마음..

나부터 살자고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도피했는데 이 도피처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미칠듯한 외로움은 나를 삼켜버리기도 했다. 

어쩌다 아이를 낳고 두려움이 밀려왔었다. 나란 사람이 어떻게 엄마를 할 수 있을지..어떻게 키워야할지 막막했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육아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란 사람은 애를 낳으면 안되었다. 엄마가 되면 안되었다.

나란 사람은 부모와 애착이 전혀없는 사람..그런 사람이 어쩌자고 무턱 엄마가 되었다. 

비록 난 부모와 관계가 그러했어도 육아 그까지것 공부해서 배워서라도 하면 될 줄 알았다. 

기를 쓰고 공부해봤는데..이론적으로 다가갔다가 크게 무너져버렸다. 

육아라는 학문은 이론적으로 공부해서 되는게 아니더라. 

내 안에 없는 사랑을 쥐어짜라라서 주는 것은 엄마의 희생을 동반하게 되었고, 그  희생은 분노들이 야금야금 내 안에 잠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분노덩어리로 쪼글어들어갔다. 

그런 상태였기에 둘째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둘째까지 낳아버렸다가 내가 진짜 미쳐버릴지도 모를거 같았다. 

이 어린거 하나도 어찌할지 몰라 발동동구르는 내가 어찌 두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나 스스로 무서웠고 두려웠다. 

8살이 된 딸을 바라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저 아이도 나에게 원망하지는 않을까? 내가 그랬듯 이럴거면 왜 낳아줬냐고 원망하지는 않을까..? 내가 그랬듯  나란 엄마의 찌든 삶의 모습이 저 아이의 어깨의 짐을 무겁게 해주지는 않을까..그런 미안함이 또 밀려온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살던대로 살 수 없다..그 아이한테 미안해서라도 나란 엄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낸 모습..노력한 모습 그 기억이라도 남겨주고 싶다.

아이가 엄마라고 나를 부를 때마다 아직도 마냥 마음이 철렁거린다. 

나란 엄마가 엄마의 자격은 있는건지, 엄마라고 불려도 되는건지..난 아직도 엄마라는 그 이름이 낯설다.

엄마라는 존재..

아직도 나에게는 나의 엄마도, 나란 엄마도 엄마라는 그 이름이 하염없이 어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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