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는 친구가 아니고, 아부는 능력이다
슬기로운 회사생활: 직장 내 인간관계 편
동기는 친구가 아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 다닌다. 때때로 회사 인간관계에서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오는 날, 그럴 땐 이 문장을 초콜릿처럼 꺼내먹어야 한다. 회사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 이들과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에 8시간씩 무려 5일이나 옹기종기 모여 죽치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을 평소에 잘 인지하고 있는 편인데, 사회초년생 시절 동기한테는 그렇지 못했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 착각했다. 우리들도 처음엔 참 돈독했다. 하루 종일 누가 보면 큰일이다 싶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굳이 또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했다. 타 본부, 부서에 무슨 일이 있는지, 오늘 그쪽 팀장님은 출근하셨는지, 왜 결재는 안 하고 자리를 비우고 계신지, 위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여러모로 서로에게 정보통이 돼주었다. 우리 모두 언젠가 회사에서 한 자리씩 꿰차고 우아하게 일하는 미래를 그리며 즐거웠던 것 같다.
하지만 동기는 결국 비교와 경쟁으로 내몰린다. 인사평가, 승진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나의 비교 준거점이 될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다닐만하면 좋은데, 나는 일도 사람도 그지 같은 부서에서 개고생 하는데 쟤는 똑같은 월급 받으면서 세상 편하게 다니고 있다는 판단이 서면 배알이 꼴린다. 이 와중에 어떤 세상의 이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걔가 나보다 평가도 잘 받고 성과급도 더 받는 날이 오면 분노가 일렁인다. 같은 팀에서 일머리라곤 없는 동기 뒤치다꺼리까지 하다 보면 내가 그와 한 그룹에 묶여 평가받는다는 사실조차 모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건 극단적인 사례였고, 결국 수십여 명에 달하던 동기들은 동기 모임에서 '내가 더 바쁘네, 더 힘드네'로 투닥거리다 각자 자기 살길 찾기에 바빠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나누는 얘기는 카더라만 분분한 영양가 없는 정보이거나 '퇴사하고 싶다'는 신세한탄이 전부였다.
물론 믿을 수 있는 동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입 조심, 행동거지 조심, 무엇 하나 조심스럽지 않은 게 없고 외롭고 고단한 회사 생활에 믿을 수 있는 동기는 훌륭한 안식처가 된다. 남자 친구, 여자 친구보다 내가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기에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우리 모두 그런 동기를 가질 수 없고,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직장은 생계를 걸고 나서는 삶의 터전인 만큼 각종 욕망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동기간의 우애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러니 동기와 친구를 혼동하지 말자. 동기에게 나 힘든 거 알아달라고 호소하거나 소문과 내막, 편견과 감정을 옮기지 말자. 여기서 오래 벌어먹고 살려면 이런 태도는 하등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동기에게 더 특별한 배려와 주의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 자리한 곳에서 제 몫을 해내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적극 도와주는 멋진 동료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부도 능력이다
나는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대개 웃사람들 옆에 딱 붙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며 딱히 하는 일도 없음시롱 뭐 할라치면 혼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마냥 앓는 소리를, 앓는 소리를 하는 그들을 보며 먹고살려고 참 애쓴다고 생각했다. 진짜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저거 저거는 입으로 일한다고 얕잡아보기까지 했다. 저런 부류는 올라갈수록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했다. 더 좋은 보직을 맡았고 더 빨리 승진했다. 반전이었다. 보통 웃사람들은 '일하는 사람', '일 안 하는 사람' 한눈에 봐도 다 알 수 있다고 말했기에 다 알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웃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고 나는 한동안 벙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일만 했지 무얼 한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너 친한 사람이랑 안 친한 사람 중에 누구랑 일하고 싶어?' '당연히 친한 사람이지!' '그래, 그게 정치야.'
처세술이 더 중요한 거냐며 열을 올리는 나에게 친구가 해준 얘기다. 반박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먼저 살갑게 말 걸어주고 관심 가져주고 '잘했다, 고생 많았다' 인정해주는 동료한테 마음이 더 가기 마련인거슬, 나는 빈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아서, 말보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 더 멋져서라고 핑계를 대 왔다. 다 알고 있지만 외면해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내가 '내 위로 전부 반경 50미터 접근 금지'라고 써붙인 사람마냥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와중에 그들은 자주 얼굴을 내밀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전략적으로 '일'했다. 일하지 않음으로 일하였다.
의사결정권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면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다. 상사와 자주 같이 있다 보면 이말 저말 듣게 되고 동향 파악차 이것저것 질문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나와 관련 있는 이슈를 빠르게 파악하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상사가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필요에 따라 조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꼬인 문제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처리할 수도 있게 된다. 때때로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들의 친밀감과 죄책감을 자극해 나에게 오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실은 상사와 가깝게 지낸다고 나쁠 것이 없다는 점이다. 가능하다면 상사 역시 인정받고 싶고 상처 받기 두려워하는 똑같은 직장인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알랑방귀 그까이꺼 할 수 있다면 해보고 도저히 못할 것 같으면 깎아내리지나 말자. 그냥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만큼 조직 구성원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면 어떨까. 물론 영 아니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