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X도자기 05]
도자기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읽다 보니, 지금 동시대의 도자기는 어떤 형편인가 궁금해졌다.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은 어떠하며, 명품 브랜드가 한둘이 아닌 유럽 쪽은 어떠한지도 알고 싶어졌다. 마침 이런 관심사를 따라 취재를 해서 ‘유럽의 도자기’를 세 권으로, ‘일본의 도자기’를 세 권으로 쓴 조용중 선생의 책을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간동아> 편집장까지 지낸 저널리스트가 수십 년간 도자기의 역사와 현 상황을 점검하는 수고로운 여행을 거쳐 정리한 노작이라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좋았다. 이런 책을 읽으며 외국의 현황을 살피다 보면 결국 한국의 상황도 되새겨 보게 마련이다. 한중일 삼국의 도자기 산업이 어떤 상황인지, 각각의 특성은 어떠한지도 궁금해졌다. 앞으로 직접 여행을 가서 파악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겠으나, 그간 보고 들은 것으로 그려보는 한중일 도자기 삼국지의 대략적 모습은 이러하다.
중국은 대표적 도자기 산지인 경덕진(景德鎭)에서 나오는 거대한 청화백자와 다양한 채색도자기가 대단한 주목을 받아왔다. 강렬한 색감과 온갖 형태를 다 갖추고 나오는 중국 도자기는 그 관록이 대단하다. 일찍이 유럽으로 수출되었던지라, 도자기를 아예 영어로 china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이 실크로드나 해상무역로를 활용해서 유럽으로 도자기를 수출한 역사는 매우 오래된다. 그러나, 17세기 초반부터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이 주도해서 중국의 경덕진이나 광조우에서 유럽의 수요에 맞추어 주문생산한 것이 대대적인 국제 도자기 무역의 시대를 열어갔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중반 청나라 때 한동안 도자기 수출이 금지되면서 막대한 유럽의 도자기 수요는 대체지를 찾았고, 그때 일본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국제 무역의 판도가 바뀌었다. 조선은 임진왜란 후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게 되면서 이런 엄청난 무역의 시대에 전혀 유익을 누리지 못했다.
중국 도자기들은 그 특징이 뚜렷하다. 온갖 크기의 작품들이 다 존재하지만, 특별히 대형 작품들이 잘 나오고 있고, 색깔은 청색이나 노란색 등 선명한 색상을 강렬하게 구사한다. 문양은 도자기 전체를 꽉 채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미에 대한 중국의 감각은 좀 과도한 느낌이 있다. 예술적 완성도를 논하고자 할 때는 그림이며, 색깔이며, 크기가 ‘투 머치’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자랑하는 청화백자의 매력은 유럽의 황실과 귀족들을 매료시켰고, 유럽의 주요한 도자기 회사들이 저 코발트블루의 쨍한 청색을 시그니처로 내세우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수출금지령으로 주춤하던 시기에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일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엄청난 양의 도자기를 일본에서 사갔고, 주문생산하면서, 일본의 도자기 무역은 급성장했다. 이후 중국이 다시 도자기 무역을 재개했지만 예전과 같은 일방적 영화를 누릴 수는 없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전부터 차문화가 고도로 발달되면서 다기를 중심으로 도자기 산업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기 하나를 성 하나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할 정도였고, 다완을 하나 차지 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이들은 임진왜란과 그 이후 시기에 조선에서 의도적으로 많은 도공들을 데려갔고, 이들을 통해 엄청난 기술의 향상을 이루었다. 이때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유럽과 대대적인 무역이 시작된 것이다. 18세기 이후 일본이 도자기 수출을 통해 이룬 명성과 부가 이들이 유럽과 서양세계로 진출하는 문화적,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이것은 고스란히 일본의 근대화에 동력으로 작용했고, 아시아권에서 가장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룬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정밀하고 단아한 미를 극도로 추구하는데 일가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양이 주문생산을 요청하며 가져다준 최고급 염료들을 사용해서 아름다운 색감의 도자기들을 만들어 내는 한편, 극도의 소박한 미를 추구하는 이도다완 류의 도자기도 만들어 내었다. 일본 전역에 아리타를 비롯한 다양한 도자기 산지들이 흩어져 있는데, 저마다 특색 있는 작품들을 생산한다.
유럽은 한 동안 중국의 도자기를 애용하다가, 일본의 도자기로 넘어갔는데, 도자기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자 유럽 본토에서 직접 생산을 시작했다. 이것이 독일의 마이센(Meissen)을 비롯하여 로열 코펜하겐(Royal Conpenhagen) 등 유명한 유럽 도자기 브랜드의 시작이다. 영국에서 뼈를 활용해서 뽀얀 우윳빛 백자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본 차이나(bone china)이다. 지금 전 세계 도자기 산업은 독일과 북유럽 등 유럽권이 강세라고 볼 수 있다. 도자기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국가적 차원의 부를 산출한 대형 산업이었다.
<2023 도자센서스>에 따르면, 2022년 현재 국내 도자기 시장은 2,193억 원 규모로 그간 정체를 겪다가 살짝 성장을 보이는 중이다. 국내의 대표적 식기회사들은 매출이 급감하면서 규모를 줄이거나, 폐업을 하는 등의 어려운 시기를 겪어가고 있지만, 유럽의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이 가장 매력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 있어 속속 입성하고 있다. 현재 국내 고급 도자기 식기 시장은 70% 이상이 외국 브랜드의 차지가 되었다. 포트메리온, 로열 코펜하겐, 웨지우드, 덴비, 마이센 등의 이름이 익숙하다.
한중일 국가들 가운데 한국만 과거에나 현재에나 이런 국제적 거대 산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고려청자로 천하제일의 명성을 떨쳤고, 조선 도공들이 결국 일본의 도자기 산업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것을 되돌아보면, 한국 땅에서는 그 역량이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한국 도자기에 구현된 미감은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생소하다. 그런 와중에 크게 주목받았던 것이 백자 달항아리이다. 색깔이나 문양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덩그러니 빚은 큰 백자항아리에서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2023년 456만 불(한화 60억 상당)의 경매가를 기록한 달항아리가 현재 최고가인데, 수십 억 원을 호가한 작품들이 이미 여럿 나오면서 한국 도자기의 미는 단순소박함에 있다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졌었다.
아마 최근의 K-컬처 웨이브를 감안하면 도자기 부문에서는 앞으로 분청사기의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새나 물고기, 꽃문양을 삐뚤삐뚤하게 그려 넣고 무심하게 거친 질감을 자랑하는 분청사기의 여러 유형들은 조선시대의 미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들 정도로 현대적 느낌이 있다. 제작 난이도도 높은 편은 아니라서 앞으로 현대 한국 작가들의 대대적인 약진이 기대되는 분야이다.
관건은 저만큼 전성기를 누리며 전 세계적으로 그 위상을 떨친 중국과 일본에 비견할 만한 독특한 미감이 어떻게 인정되고 형성될 것인가에 있다고 보겠다. 한국적인 미, 한국적인 도자기는 어떤 것일까? 과거를 재현한다는 것이 단순한 복제일 수는 없다. 무언가 이어지는 것과 전혀 새로운 혁신이 공존해야 가능한 차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작품과 예술적 성취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에야 세계가 한국의 도자기를 새롭게 평가하고, 향유하게 되지 않을까?
백자나 분청사기와 달리 청자는 여전히 재현의 벽이 높아서 접근하기가 극히 제한적이다. 한때 고려청자가 신안 앞바다에서 상자째 건져 올려지면서 도자기 소장가들이 환호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최상품은 아니고 해남 등지에서 만든 생활도자기에 가까운 것들이 다수였다. 최고 등급의 청자는 여전히 매우 희소해서 세계적으로 소장처가 많지 않다. 현대의 청자 재현은 전성기의 고려청자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청자는 매우 까다로운 분야이자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것처럼 되어 버린 감이 있다. 청자를 통해 열어볼 새로운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경주에서 생산되는 청자가 고려시대의 청자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많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도자기가 한중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던 성취도를 재현해 볼 수 있다면, 우리 앞에 펼쳐진 한중일 도자기 삼국지에서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할 만한 중요한 포석을 확보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도자기 기술 중 최고 난이도의 청자가 재현된다면, 그보다 난이도가 덜한 백자와 분청사기 분야에서는 덩달아 기술적 성취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적 완성도를 논할 때 필요한 여러 가지 다른 기준들이 있을 것이기에 제작 기술만으로 그 수준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청자는 기술적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그 고유의 독특한 색감과 품질에 견주 지를 못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고 보면, 이제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경주에서 이런 모든 보석 같은 자원이 하나하나 실에 꿰어지기를 기대한다. 경주 국립박물관에 가득한 도자기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유물로 대대적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경주 인근에 흩어진 가마터에 대한 발굴 작업이 더 광범위하게, 더 꼼꼼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경주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도자기들과 장인들의 작업이 다양한 전시의 기회를 얻기 원한다. 전시만 아니라 그것이 만찬이든, 차회이든, 혹은 축제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결합하면서 경주에서 만날 수 있는 미식과 행사의 격조가 높아지기를 원한다. 장인들의 작업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과거에 조성되었던 경주의 공예촌과 도자기 산업의 기반이 다시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경주를 '한국 도자기의 본향'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과거를 재현하는 대가들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젊은 작가들이 경주를 기반으로 대거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한국적 미란 무엇일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오랜 시간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공산품처럼 똑같이 생기지 않았다. 오직 유일한(one and only) 작품이다. 고온 소성 중의 도자기는 액화상태처럼 보인다. 벌건 도자기를 건드리면 꿀렁꿀렁할 정도다. 그릇 자체의 모양과 무게 때문에 은근하게 기울거나 자연스럽게 모양이 이지러진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나왔을 때에는 찍어낸 듯한 모양이 되지 않고,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미묘하게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그것이 빚어내는 미감에 마음이 스며들면 한국 도자기의 개성에 우리는 매혹되어 가는 것일 테다.
나는 어쩌다가 경주에서 청자가 재현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함의까지 새겨보는 기회를 가졌다.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큰 사건을 만난 것 같다. 특권은 책임을 낳는다고 했던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나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풀어놓아야 한다고 느꼈다. 이야기는 전염병 같은 것이라, 한번 듣고 나면 듣지 않은 것처럼 살지는 못한다. 나는 이렇게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분간 앞으로 계속 나아가 볼 참이다. 그런 기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