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X도자기 04]
처음 들었을 때는 귀가 간지러웠다. 저것은 대체 어떤 니혼진(日本人)의 인사이트란 말인가?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부정할 수 없는, 맞는 말이었다. 우리말로 하자면 “그릇은 요리의 완성”쯤이 되겠지만 저 인용문이 전달하는 야리꾸리한 회심의 한 방이 장전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일본요리의 화사한 플레이팅은 그와 어울리는 그릇을 만날 때 극대화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일본요리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릇을 만나 기모노로 한껏 치장한 여인으로 순식간에 상징화된다. 한국요리는 어떤 그릇과 어떻게 어울리는 것이 최선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식의 모양새를 떠올려본다면 그것은 화려하기만 한 느낌이어서는 안 될 것 같고, 훨씬 여유롭고, 순박한 아름다움이 연출되어야 할 것 같다.
인용한 문장은 100년 전 일본에서 일본요리의 미학적 차원을 정립하였다고 감히 일컬어지는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이 남긴 유명한 구절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방문해 3년을 머물렀고, 그 후로도 몇 차례 조선을 다녀갔는데, 이 시기에 그는 조선의 서각과 도자기에 특히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당대의 유명한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논쟁도 벌이면서 ‘민예(民藝)’란 무엇인가를 논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조선의 도자기 등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조선의 문화예술 작품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공통점이 있다.
로산진은 일찍부터 전각, 서화 등에 조예가 깊었고, 조선 여행을 계기로 도자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는 미식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도쿄에 최고급 요릿집을 직접 열어서 당대 최고의 미식을 선보였다. 로산진의 진두지휘 아래 호시가오카사료(星ヶ岡茶寮, 1925-1945)에서는 최고의 재료가 아니면 쓰지 않았고, 최고의 셰프들을 불러 모아서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요리를 내어놓았다. 일본의 고관대작들이 앞다투어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특히 로산진은 자신의 요리에 걸맞은 그릇을 백방으로 구해서 내어놓았는데, 이렇게 되니 그의 요릿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적 경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직접 가마를 만들어 생산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치스러운 실험을 통해 일본요리는 시각과 미각을 함께 사로잡는 차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끝 간 데 없는 그의 실험적 시도는 과도한 비용 지출이 다반사였기에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든 요릿집에서 해고당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미식과 도자기 그릇을 이토록 깊게 밀착시키는 일은 생각해 보면 당연한 귀결이기는 하다. 예술적 경험이란 것이 인간의 오감을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시키며 원초적 감동을 제공한다고 할 때, 이는 일상적 삶의 경험 속으로 다시 회귀하게 되어 있다. 일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초월의 구원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경험으로 고도의 예술 체험이 소환되고 녹아들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파장은 대단할 것이다. 로산진은 당대에 이미 그런 명성을 누렸다. 당시 일본을 다녀간 외국의 유명인사들(찰리 채플린 등)이나 그가 해외에서 만난 이들(파블로 피카소 등)은 일본요리와 도자기의 환상적 조합을 알아보았고, 이는 곧 일본의 문화예술적 명성을 더 깊고 넓게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들은 단지 감상용 혹은 소장용으로만 여겨져도 무방한 것인가? 이 도자기들은 근본적으로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 그 만듦새가 워낙에 뛰어나서 예술품으로 여겨진 것이지 원래는 목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도자기의 최대의 향유는 감상이 아니라 그릇으로 향유하는 것이라는 말. 청자에 밥을 말아먹고, 백자에 술을 따라 마시고 해 보자는 것이다. 음식과 조화를 이루며 그 용도에 맞게 사용되면서 도자기는 그 아름다움을 기능적으로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도자기 감상을 그런 차원으로 끌어와보는 일이 감히 필요하다 생각한다. 고급 도자기라고 선반에 올려놓고, 애지중지 감상만 하고 있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도자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실제로 사용해 보는 경험을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실험적인 이벤트를 만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경주시내에 작은 공간을 하나 찾아서 두 달간 도자기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 기간에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차를 내려 대접했다. 좋은 차와 다구를 이용해서 느긋하게 도자기를 보며 차를 마시는 자리를 매일 마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5번에 걸쳐 도자사 강의를 진행했다. 알고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법이니. 신라토기, 경질토기, 회유토기,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지는 역사를 풍성한 사진자료와 더불어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자, 만찬을 해보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경주의 고택에서 고급한 만찬을 진행하되, 사용되는 그릇은 경주에서 생산된 고급도자기를 매칭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2025년 경주 APEC정상회의를 앞두고 지역 내에서는 다양한 관광 관련 공모사업이 나오고 있었다. VIP급 여행자를 위한 프리미엄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보라는 것. 관광업계에서는 프리미엄 여행 혹은 럭셔리 여행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가 있다. 이 카테고리의 여행은 최고급 코스로 구성된다. 해외여행을 할 경우는 교통편은 일등석으로, 숙박도 5성급, 음식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으로 구성된다. 여행지도 매우 이국적인 풍광이 있거나, 최고급 예술품이 있거나, 익스트림 체험이 제공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1인당 비용이 수천 만원을 훌쩍 넘긴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여행들이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행을 국내에서 구성하기는, 특히 경주 같은 곳에서 만들어내기란 정말 어렵다. 전용기로 경주를 찾는 사람은 없을 테니 교통편의 최대치는 고급 리무진 렌터카를 넘지 못할 것이고, 숙박은 보문단지의 특급호텔 스위트룸의 비용이 상한선이다. 그 가격은 서울이나 부산의 고급호텔과 비기기 힘들다. 경주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다고 해서 외국의 VIP들을 일률적으로 한옥에 재우고, 한식을 먹이는 것에는 반대다. 이국적 경험으로 한번 체험하는 경우는 해볼 수 있지만, 관광상품으로 프리미엄급의 다른 여행상품들이 제공하는 안락함이나 편의성의 수준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한식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상상력이 몇 단계는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마침 이 무렵에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란 프로그램이 막 나와서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방영되고 있었다. '흑백요리사'는 한식의 국제화에 강력한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세계적인 셰프들이 보여준 한국음식의 실험적 시도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한식과 양식 혹은 중식과 일식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한국요리가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확장시켜 준 것이 사실이고, 그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음식에 그릇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는 매우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로산진의 통찰을 다시 빌려오자면, 요리의 최종적 화룡점정을 그릇에서 찍어주었어야 하는데, 거기에서는 한국 도자기의 면모가 그다지 드러나지 못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그간의 시도가 축적되어서 형성된 미감(美感)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아쉬움은 크다. 일본은 백 년 전에 확립된 전통인데, 우리는 그 논의의 초입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일을 벌였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들고 공모전에 나갔고, 1박 2일의 해커톤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당당히 당선되었다. 사업지원금 500만 원을 받았고, 드디어 이것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달간의 준비를 거쳐, 보슬비가 흩날리던 2024년 10월의 어느 날, 우리는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유서 깊은 육부전 공간에서 [경주X도자기X만찬]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당시 '흑백요리사'에 출연해서 이름을 날린 한식대첩 우승자인 부여의 이영숙 셰프와 미슐랭 스타 셰프이자 이북요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최지형 셰프가 연결되었다.
경주의 도요 두 곳에서 생산된 청자와 백자 그릇을 준비하고, 유기장인에게서 빌려온 놋그릇도 추가했다. 4인 상을 한식 코스로 준비해서 진행하는 과정을 다 기록으로 남겼다. 식사 후에는 차회가 있었다. 만찬에서 사용한 백자를 제작한 서동요의 도예 작가가 직접 제작한 다완에 차를 우려 주었다. 커피가 익숙한 세대에게는 차를 마신다는 것이 여간 밋밋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스페셜티 커피의 도입으로 커피를 향유하는 감각도 엄청나게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미감이 충분히 세분화되고 나면 반드시 차의 시대가 올 것이다. 물론 그것도 좋은 차들로 만족스러운 경험치가 형성되어야 할 일이다. 중국차, 일본차, 한국차의 넓은 세계를 나는 아직 충분히 모르지만, 내가 이곳에서 도자기 만찬을 하며 만나는 이들이 권해주는 차는 예외 없이 기대이상의 경험이었다. 내 혀가 이 맛을 알아버리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커피가 그랬고, 와인이 그랬으니, 차도 머지않았다.
경주와 도자기와 만찬. 어느 하나 쉽게 조합되지 않는 연결고리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성을 보았고, 사람들은 즐겁게 호응해 주었다. 우리는 꾸준히 이런 자리를 만들어 볼 것이고, 이 자리를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갈 길은 멀고, 아직 해야 할 일은 많다.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