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잘한 거야.
가끔은 여유로움이 어색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다.
오늘 드디어 파주에 도착했다. 두 시간가량 운전을 해서 열심히 달려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서울로 향하는 차들이 상당히 많아 자주 정체구간을 마주해야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답답한 주행을 하면서도 마음만큼은 답답하지 않았다. 오로지 '여유로움' 하나만을 찾아 떠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좀 답답하고 짜증 나면 어떠냐는 근래 볼 수 없던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도착 예정 시각이 1분 정도 남았을 때, 내가 들어선 동네는 상상 속 이미지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 한적한 도로, 그리고 각기 정돈된 모습으로 아름답게 서 있는 예술적인 건물들까지. 분위기와 날씨마저 완벽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 여느 여행들과 별다를 것 없는, 그렇지만 굉장히 중요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 동안 머물게 된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했다. 어쩌면 파주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이 장소 또한 너무 마음에 들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알차게 들어선 각종 가구들, 그리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테라스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늑한 내 방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적당했다.
사실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긴 했다. 며칠간의 식사를 모두 나가서 사 먹을 수는 없다 보니 장을 봐야 했다. 당장 마실 물도 사 와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한두 시간 정도 배가 고프다고, 목이 마르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침대에 누워 가장 먼저 한 것은 배달 앱을 켜 본 것이다.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랐을 때, 어떤 음식을 선택할 수 있을지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원하는 음식을 못 먹었을 때 바로 불행해지지는 않지만, 행복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원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얼마간을 더 누워있다가 '이제 나가봐야지'하며 일어섰다. 차를 타고 향하다가 눈길을 끄는 한 장소를 발견했다. 나는 바로 차를 숙소 주차장에 되돌려놓고 그 장소로 향했다. 바로 한 카페. 탁 트인 높은 천장과 넓은 책상. 책을 읽을 수도, 영화를 볼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 자유롭지만 정돈된 분위기가 돋보이는 카페다. 이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갑작스럽게 이 글을 적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질문이 명확하지가 않았다. 교사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를 알고 싶은 걸까?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면 어떨지를 알고 싶은 걸까?
내 성격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고 있을 리가 없다. 뭐라도 붙잡아서 즐거운 척, 전문가인 척, 타고난 센스라도 지니고 있는 척하며 속으로는 뼈 빠지게 노력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여유를 즐겨보는 나는 교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었나 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인생 선택은 선택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척척 흘러갔다. 오로지 '하지 뭐'라는 몇 번의 선택으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의 아쉬움이라던지, 그리움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머리를 굴려보자. 어느 기업의 대리쯤 되어 있을까? 가게를 운영하고 있을까? 아니 누군가 운영하는 가게의 일을 맡아하며 돈을 벌 수도 있겠다. 그러한 모습의 나였다면 지금보다 행복할까?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휴식을 위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즐거웠을까? 아니면 이러한 여행을 벌써 수 차례도 더 겪을 만큼 힘들고 답답했을까? 흘러간 시간에는 '만약'이 아무런 의미 없다고는 하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궁금하다.
지금 일요일 저녁에도 내 주변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누군가는 엑셀로 일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으며, 누군가는 책을 읽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모두는 나중에 본인에게 찾아올 '그때 만약..'이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 위해 지금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잘한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