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신은 없는
오늘 아침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름 잘 챙겨 먹어 보겠다고 주문한 햇반과 각종 밑반찬을 꺼내놓고 나만의 푸짐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좋아하는 유튜브를 틀어놓은 채.
침대에 던져둔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평소에도 사람의 직감은 무시할 게 못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다시 한번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뭔가 께름칙했다. 받기 싫다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울리는 전화를 무시할 성격은 또 못되기에 전화를 받았다.
에어비앤비를 통하여 살고 있는 지금 집, 건물의 관리소장이었다. 내가 지내고 있는 건물은 한 미디어 회사에서 운영하는 건물이라 종종 스튜디오 촬영 행사라던지, 야외 촬영을 위한 짐 옮기기가 상당히 잦았다. 아무튼 그 관리소장은 'OOOO 차주 분 되시나요?'라며 내 차 번호를 불렀다. 그리고는 어디에 근무하는지를 물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혹시나 관리인께서 출입 시에 물어보시면 OOO호에 왔다고 말씀하시면 돼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답했다.
차를 좀 옮겨달라거나, 지하 주차장을 열었으니 이용해도 된다는 말이 당연히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렇지 않았다. "내려와 보세요"
밥을 먹다 말고 이게 뭐지 싶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패딩을 입고 모자를 쓰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1층이 아닌 O층 복도 저 끝에서 관리소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보고 따라오라고 했다. 복도 끝에 있는, 항상 '저 문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던 그 문을 열고는 들어오라고 했다. 독특한 구조의 계단을 내려가자 탁 트인 '정말로 멋진, 펜트하우스 같은' 관리실이 나타났다.
애써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것일까, 관리소장은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불렀다며 살짝 웃기도 했다. "뭐 취조하듯 물어보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까지. 어떻게 OOO호에 지내게 된 것인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지내는지, 방을 어떻게 구하게 된 것인지,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를 비롯해서 에어비앤비 전반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질문했다.
이런저런 답변을 하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 생각이 퍼져나가 더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는, '이 호스트는 에어비앤비를 몰래 하고 있구나'였고, 다른 하나는, '관리소장은 왜 호스트나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물어야 할 내용을 나한테 물어보고 있을까'였다. 갑작스러운 전화로부터 시작된 이 면담이 처음엔 당황스러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쾌해졌다. 한 5분가량을 이야기했을까, 드디어 관리소장은 내가 기대하는 말을 해 주었다.
'오늘 촬영이 있어서 외부인들이 주차장에 많이 들어오니, 오늘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도 괜찮습니다.'라고.
얼떨떨하게 1층으로 내려와 차에 타 시동을 걸면서도 내가 지금 뭘 겪고, 뭘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지하에 차를 대라니까 우선 지하로 내려와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먹다 남은 아침을 마저 먹기 위하여 방에 들어와서도 계속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답변을 잘못해서 호스트가 피해를 보게 되는 건가? 바보같이 말이다.
호스트에게 에어비앤비 앱을 통해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로 시작해서 "호스트 분께서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로 끝나는 꽤 긴 문장들을 모아 보냈다. 돌아온 답은 이미 혼란스러운 나를 더욱 혼란의 중심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다 말씀드린 건가요?"
"에어비앤비라고 이야기하셨나요?"
"아 심각한 상황이군요"
다 말씀드린, 에어비앤비라고 이야기 한, 심각한 상황을 만든 내가 죄인처럼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기분 좋게 아침밥을 챙겨 먹다가 갑자기 전화를 받고 관리사무소에 가게 된 나는 그렇다면 어떻게 이야기해야 했을까. 어떻게 대처해야 했고, 아니 그보다 편하게 쉬기 위하여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생활 중이었는데, 그 비용에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는 둘러대기 경험'까지 더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평소 쓴 생각을 자주 한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상황을 바라보며 느끼는 불만이 상당히 많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누군가를 보며 불만을 느끼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누군가를 보며 짜증이 난다. 그것이 어린 아이거나, 나이 많은 어른이거나에 상관없이.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쓴 생각을 드러내는 쓴소리를 잘하지 못한다.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을 혼자만 느끼고, 정말 친한 주변인들만 그 상황에 빠진 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억울했다. 이게 정말 내 잘못인가, 진짜 내가 실수한 건가 싶어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 보냈다. 물론 그 문장들을 여기에 공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 그 문장을 읽어본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게 무슨 쓴소리야."
그제야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었다.
"놀라셨겠네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남은 시간 편안히 지내시길 바랍니다."라고.
사건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는 또 다른 걱정에 사로잡혔거든.
"나 진상 고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