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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Jan 12. 2022

몸의 루틴, 마음의 루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 한

현재 시각은 오전 열 시 이십 분이다.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쯤 눈이 떠졌다.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아 잠에 드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깨지 말았어야 하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떠진다. 벌써 한 이 주 정도 지속된 것 같다. 다행히도 그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잠에 다시 들지 못하거나, 잠이 부족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지는 않고 있다. 다시 잠에 들고 여덟 시 반이 되어서야 또 한 번 눈이 저절로 떠졌다. 


파주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알람을 모두 끄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수면을 오로지 출근 시간에 맞추어 억지로 조절해왔다. 나는 매일 아침 여덟 시 반 까지 학교에 출근해야 했는데, 이런저런 준비시간, 아침 식사 시간을 고려하면 매일 오전 일곱 시에는 눈을 떠야 했다. 그나마 학교가 집에서 매우 가까운 편이라 약간의 시간을 단축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파주에서는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나를 강제로 깨우거나, 일어나게 만드는 어떤 사건들이 없기에 알람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벽 한쪽을 차지한 큰 테라스 창으로 밝아진 아침 하늘이 빛나고 있었다. 햇빛이 직접 파고 들어오는 방향이 아닌 탓일까, 햇빛이 따갑다기보다는 간접 조명처럼 방 전체를 은은하게 채워주는 것이 좋았다. 어젯밤에 머리맡에 놓아둔 리모컨을 가지고 TV를 켰다. 어제 잠들기 직전까지 보던 유튜브가 자동으로 재생되었고,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저런 걸 보고 있었었나?'


그렇게 한 동안을 더 누워있었다. 몸은 깨어났지만 머리가 아직 덜 깨어난 기분이었다. 물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찬 바람을 쐬며 출근을 한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머리가 재깍 깨어날 것이다. 싫었다. 그냥 누워서 몇 개의 유튜브 영상을 더 시청했다. 방은 따뜻했고, 더군다나 침대의 매트는 아직도 뜨끈뜨끈했다. 작지만 조용한 방안이 내가 좋아하는 영상과 소리로 채워지는 것이 꽤 만족스럽고 편안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 선택지.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모자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동네를 산책하자.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서 들어와 아침을 여유롭게 챙겨 먹자. 그렇다면 머리도 깨어날 것이고, 항상 마시던 모닝커피도 해결될 것이고, 여유로운 산책이라는 것을 드디어 경험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두 번째 선택지.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자.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씻은 다음 근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가자. 그곳에 앉아서 노래도 듣고, 머리가 덜 깨어난 일상을 좀 누려보자. 


주방으로 가서 어제 사다 놓은 것들을 몇 가지 챙겼다. 우유 한 컵, 식빵과 딸기 잼, 비요뜨 한 개를 챙겼다. 또다시 나는 TV 앞에 앉아 나름의 푸짐한 아침 식사를 즐겼다. 아홉 시 반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사이 인접 시에서 각종 재난 문자들이 날아왔고, 이제는 확진자 수에 무뎌진 탓인지 알림 자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사라졌다. 어서 징-징- 거리는 알림이 끝나고 조용히 아침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샤워를 하고 따뜻한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날씨가 하루 종일 엄청 춥다는 예보가 있어서 평소보다 더 따뜻한 옷을 겹쳐 입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도, 이곳 파주에서도 걱정이 참 많다. 집을 나서기 위해 눈에 보이는 오만 곳의 멀티탭을 모두 꺼야 하며, '자 이제 됐다'며 나서려는 현관 앞에서도 한참을 서서 혹시나 빠뜨린 것은 없는지, 내가 없는 사이에 불이 나거나, 누전이 된다거나 하는 위험은 없을까 고민을 했다. '됐다'며 확신이 들 때 비로소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수 있었다. 


5분 거리 학교에 출근을 할 때도 이런저런 이유로 차를 종종 타는 나는, 오늘만큼은 평소와는 반대로 생활해보고 싶었다. 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생활해보자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핑계일 뿐, 나는 오늘 시간에, 일정에, 수업에, 출근에 쫓기지 않는다. 늦게 도착해도, 빠르게 도착해도, 하다 못해 가려던 곳에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목적지를 갑자기 바꾸어도 나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문제의 소지도 없다. 그저 다른 곳에 가게 될 뿐. 


카페에 도착해서 따뜻한 카페라테를 하나 시켰다. 내가 상상하던 출판단지의 모습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예쁜, 깔끔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역시나 아침시간이라 그럴까 손님은 아무도 없다. 두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통유리로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만이 유일한 변화다. 그렇게 나는 카페의 정적과 도로의 변화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행복하다. 편안하고 따스하다. 몸이 아닌 마음이 따스하다.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야 했던, 그리고 주말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던 나의 몸은 그러한 루틴에 적응해 있겠지. 이 몸뚱이의 주인은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편안함을 기억하는 내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을까. 오늘은 내 마음의 루틴을 찾게 되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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