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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Jan 15. 2022

#6. 무언가에 빠지는 경험

진행 중

무언가에 갑작스레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것이 사물이든, 작품이든, 사람이든 나에게 보일 수 있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우연히 마주한 무언가에 빠져버리는 경험을 자주 한다. 쉽게 말하면 너무나도 손쉽게 '그것'으로 둘러싸인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푹 빠지기도 잘 하지만, 금세 실증 내서 빠져나오기도 잘 하긴 한다. 그건 뭐 나중 이야기라 치고, 오늘은 푹 빠져버리는 경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어렸을 때, 해리포터라는 영화에 푹 빠졌다. 그 당시의 나는 그냥 마법사였다. 영화 속 상상 이야기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고, 나에게는 저런 기회가 안 오려나 하며 기대 속에 살았다. 어딘가에서는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나름 확신을 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로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지만, 그 감정과 여운과 희망은 그 후로도 한참을 이어져 왔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한 친구에게 푹 빠져버렸다. 그 친구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는 것, 수업 시간에 몰래 과자를 꺼내 먹는 것,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는 것마저 재미있었으니 말이다. 시험 기간에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를 하다가 피시방에 가자고 하는 제안마저도 고민의 여지없이 수락할 정도였다. 평상시였으면 고민에 고민을 거쳐 결국은 거절을 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즐거웠다. 


오만가지 주제로, 길고 짧은 빠짐을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함에도 여전히 나는 무언가에 빠진다. 그것도 점점 깊게, 푹 빠져버리곤 한다. 파주 여행을 계기로 나는 한 드라마에 빠졌다. 드라마에 푹 빠져버렸다는 게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요즘 각종 SNS를 보면 이 드라마에 푹 빠져버렸다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면서 '숨길만큼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다. 왜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이 그리워서?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되어? 헤어진 전 사람이 생각나서? 저런 삶을 살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명확하게 떠올리는 것은 없다. 그냥 이유도 모르게 빠져버렸다. 사실 무언가에 흠뻑 젖어가는 경험이 이유를 달고 논리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나. 


넷플릭스를 통해 한 편, 한 편 집중해서 시청하고 있는데, 에피소드가 모두 소진되어 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하루에 딱 한 편씩만 보기로 나만의 약속을 정했다. 그리고 내 이어폰과 방의 스피커에서는 '그 해 우리는'의 OST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드라마의 감성, 분위기, 장면을 3분가량의 곡에 담아내는 마법 같은 일이다. 드라마를 직접 보고 있지 않아도, 그 속에 살아가는 기분이 들게 해 준다. (노래도 다 좋다.. 정말..)


무언가에 빠지는 것은 당연스럽게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은 언제 무언가에, 누군가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그 부분을 꽤 오래 고민해보았다. 당연한 정답이 나왔다. 무언가가, 누군가가 채워질 빈자리가 생겼을 때, 마침 그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올 때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빈자리와 결이 비슷하다면 더욱 푹 빠져들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부족한 감정과 온기와 여유를 간절하게도 채우려는 마음의 노력이 아닐까. 


몸이, 마음이 간절하게 채워주기를 바라며 무언가에, 누군가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거라면 앞으로도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땅한, 당연한, 꼭 필요한 마음의 보충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싶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푹 빠져 있나요? 여러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https://youtu.be/-YxdzUEpy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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