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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Jan 18. 2022

#8. 추억이 추억으로 남게 되는 날

추억을 찾아 경상도에 내려왔다. 유일하게 내가 사는 지역을 떠나와서는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장소,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장소,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두고 아쉬움과 함께 떨어져 나가야 했던 장소. 이곳 경상도.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주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가 선생님이 될 수 있게 해 준 곳.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준 곳. '이런 아이들을 만나려면 꼭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며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해 준 아이들이 있던 곳.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동기들이 있고, 선배와 후배가 있으며, 교수님이 여전히 계신 곳. 진주다.


창원을 떠나 50분가량 운전을 해서는 진주에 도착했다. 내가 기억하는 진주의 모습과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동네의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에 나는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졸업을 하고 진주에 혁신도시가 막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생이던 때는 방문해 볼, 아니 어디선가 들어볼 기회도 없었던 곳에 수많은 아파트가, 건물이, 도로가, 자동차가, 호텔이 생겨났다. 굉장히 생소했지만, 그리 크게 낯설거나 마음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이상한 것은 다른 곳에서 갑자기 다가왔다. 진주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추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의 그 장소, 그 식당, 그 사람들을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없는 거리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써 긴 시간을 운전해서 내려가서라도 한 번쯤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머릿속의 추억이 아직도 그곳에 존재하는지. 언제라도 남아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장소는 당연히 학교 주변이다. 4년간 울고 웃을 수밖에 없던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던 그 장소. 학교, 그리고 집, 식당, 카페, 병원 등.


학교를 둘러싸고 새로 개통된 큰 도로와 터널들, 이미 문을 닫고 전혀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버린 자주 가던 식당들. 이 중 몇몇 식당은 마지막 영업으로 알려진 날, 상당히 많은 현직 교사들이 찾아와서 예정시각보다 일찍 문을 닫아야 했다고도 한다. 재료가 소진되어서. 아마 나랑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나 그곳에서 존재할 것 같았던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다니, 그전에 한 번이라도 마지막으로 느껴보고 싶어서.


이전 글에서 나는 어떠한 온도의 바람, 어떠한 노래, 어떠한 맛이 느껴지면 진주의 ' 순간' 떠오른다고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때마다 정말 참을  없을 만큼 이곳이 그리웠다. 나도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에 더욱 그랬던  같다. 대학을 나온  지역에도 속하지 못하고, 근무를 하는 지역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같은 그런 느낌을 발령 초기에는 상당히 많이 받았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무뎌진 것이지 그리움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니다.


그럼에도 무뎌질 수 있었던 이유는, '괜찮다'며 버텨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추억을 확인해 줄 것들이, 곳들이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이유 없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말 힘들고 힘든 어느 날, 내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먼 길이지만 마음을 먹고 떠나게 되면 그것들을 마주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으로 우리의 추억은 그렇게 사라졌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발전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추억은 말 그대로 '추억'으로 남게 된다. 추억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던, 그 확신을 믿고 힘을 내며 생활해 온 나의 지난 시간도 추억으로 남게 되는 하루였다. 오늘의 만남과 기분, 그리고 감정이 또 언젠가 돌아보며 힘을 얻게 되는 추억의 그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그럴 거라며 담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맞겠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다. 추억이 정말 추억으로 남게 되는 날의 기억은 이런 거구나.


참 서운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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