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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Jan 19. 2022

#9. 거절할 용기, 거절당할 용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아.. 네! 괜찮아요. 해볼게요"라고 말하고

'아, 이거 언제 또 한담, 아 짜증 나, 이걸 왜 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나.


거절을 못하는 내 잘못이다. 그 대가를 내가 감당하고 있는 거고. 


거절에도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아마 거절해야 하는 상황의 가지 수만큼 거절의 종류가 나누어져 있지는 않나 싶다. 정중한 거절, 고민 끝에 하는 조심스러운 거절, 단칼에 거절, 확고한 거절, 여지가 없는 거절, 애매모호한 거절, 에둘러 말하는 거절, 예의 없는 거절 등 어떠어떠한 거절 이야기를 들으면 그 대략적인 상황이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거절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멋진 사람은 거절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절을 잘 못하고, 멋진 사람이 아니라 생각해서일까 멋지게 거절하는 것이 아주 큰 능력으로 비치는 것 같다. 물론 여기저기에다가 예의 없이 단칼에 거절을 하고 다니면 적게는 '차가운 사람'부터 깊게는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될 테니 그런 거절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고 난 뒤에 여의치 않은 제안과 부탁과 요청에 대해 정중하게, 예의와 배려와 대안을 갖추어, 거절의 의사를 전하는 능력을 갖고 싶다. 아니 그런 용기를 가지고 싶다. 


지난 파주 여행에서 카페에 앉아 읽었던 한 책의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부탁을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거절을 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빌려줄 때에는 줘도 아깝지 않은 만큼만 빌려주고, 없다는 생각으로 빌려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무언가 부탁할 때에도 거절당해도 될 것처럼 부탁해야 합니다. 거절당할 용기 없이 부탁할 용기만 있다면 사이가 어긋나기 일쑤입니다. 간혹, 어떤 부탁에 대해 거절하면 '매정한' 사람으로 보고 블랙리스트에 적어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인에게는 '변했다.' 소문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거절당한 사람의 섭섭함은 알겠지만, 과정과 결과 둘 다 잘못된 거겠죠. 아무리 서운하고 섭섭하더라도 자신이 부탁을 한 용기만큼이나 거절한 상대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거겠죠. 거절로 인해 상대를 나쁘게만 본다면, 오히려 거절당할 용기가 없는 자신의 잘못일 수 있겠습니다. 부탁을 거절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매정한 게 아닙니다. 변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다정하기에 당신의 부탁에 고민하고, 변함없기 위해 거절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중에서 (정영욱 지음)


거절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과연 나는 거절당할 용기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요구해야 하는 상황은 반드시 나에게도 종종 찾아온다. 용기가 없는 나에게도 무언가를 부탁할 용기는 꽤 있는 편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부탁을 하곤 한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가 앞에 붙는다. 마치 내가 하는 부탁과 요구와 제안이 정당하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그래서인지 '아 좀 힘들겠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아요, 다른 방법으로 해 보죠 뭐'라고 말은 하지만 마음은 좀 쓰리다. 마치 '거절=패배'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나도 거절당할 용기는 없었나 보다. 


거절을 하는 상대방도 얼마나 난감했을까.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 끝에 '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고, 조심스레 의사를 전달했겠지. 거절을 밥먹듯이 하는 위에서 말한 '차가운 사람' 또는 '싸가지 없는 인간'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거절 표현이었을 테다. 나는 그 용기마저 부족했던 거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거절과 관련된 어떠한 용기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인가 보다. 거절을 할 용기도 부족하고, 그렇기에 거절당할 용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절의 과정에 소모되는 수많은 고민과 파악과 전달 방법에 대한 숙고를 이해하고 있다면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흐름도 익숙해졌을 테다. 거절당하는 입장에서도 아마 상대방의 '거절할 용기'를 느끼고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나는 멋진 사람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라 말했다. 이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멋진 사람은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며, 잘 거절당하는 사람이다. 거절을 당하는 것이 마냥 기분 좋은 일일 수는 없다. 이건 확실하다. 아쉽고 난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상대방을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그래서 한 두 번의 거절이 인간관계를 좌지우지하지 않을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 멋진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대신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라며 충분한 고민을 거친 멋진 거절을 할 수 있는 사람. 


'아 그렇군요. 괜찮아요. 고민해주셔서 감사해요. 다른 방법이 있겠죠.'라며 거절을 실패와는 멀리 떨어뜨려 볼 수 있는, 거절당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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