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앱스토어에 있는 모든 캘린더, 할 일 관리 앱을 사용해 보기 시작했다. 수 십 개의 앱을 설치해서 나에게 맞추어 설정하고, 사용하고, 지워버린다. 무언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고, 하루 이틀 새 사라져 버린 앱도 있다. 물론 깔자마자 ‘이건 안 되겠다’하며 지워버린 앱이 훨씬 많다. 나는 일명 ‘생산성 도구’라고 부르는 그런 앱들을 칼같이 사용해야 하는 극 J스러운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나의 하루 일과는 구글에 모조리 기록되어 있었다. 구글 캘린더에는 들어야 하는 수업뿐 아니라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미용실에 가거나 병원에 가는 이벤트도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하물며 모든 일을 마친 후에 시간대에 맞추어 기록하는 버릇도 생겼다. 마치 일기장을 대신해서 캘린더를 쓰는 모양새였다. 매우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언제 어디서든 검색을 통해 내가 한 일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것은 언제이며, 머리를 자른 지 얼마나 되었는지, 영화를 언제 보았는지 또 누구랑 보았는지 등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한 성향은 쭉 이어져 왔지만, 지난 3년 간 최고의 정점을 찍은 듯하다. 수업보다는 학교의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직책을 맡으면서 기록의 필요성이 너무나도 커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바빠지다 보니 캘린더에 기록하는 행위를 할 여유 시간조차 없었다. 캘린더에 무언가를 써두어야 잊지 않고 제시간에 작업이 가능한데, 늦게라도 써 두어야 다음에 확인하고 이어서 업무 진행이 가능한데, 그마저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더욱 나는 나의 패턴에 딱 맞는 서비스를 찾아다녔다. 탐험가처럼 새로 나오는 앱이란 앱은 모두 다운로드하여 사용해 보았다. 무료 앱은 물론 유료, 구독제 앱들도 한 번씩은 모두 다운로드하여 직접 경험해 봐야 했다. 불행히도 완벽히 내 취향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는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내 기준에 ‘그나마 괜찮은’ 앱을 찾아 아쉬움을 극복해 가며 사용했었다. 내가 개발할 수 있는 능력만 있었다면 나만을 위한 앱을 만들어서 정말 잘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코딩을 배워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배보다는 배꼽이 커지면 안 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러다가 나의 업무 집중 기간이 끝났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로 올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2월까지 알록달록하게 각종 카테고리의 일정으로 가득했던 캘린더는, 3월이 되자 휴무에 들어갔는지 흰 배경만 연신 띄워 보여주고 있다. 분명 어떤 일정이나 기록해야 할 것들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겉으로 드러나는 캘린더는 아주 깔끔해졌다. 모든 일을 그만둔 사람처럼 말이다. 예측할 수 있는 일들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물량의 일들을 마주하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이참에 모든 강박을 좀 내려두자는 의지 때문이었을까.
휑한 캘린더를 바라보며 불안함이 아닌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그 이유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성향이 급 변하는 시기가 있다던데, 그때가 되었나 보다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