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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Dec 30. 2023

2023년의 나

한 해를 살아내 온 나

어느덧 12월 30일. 올 한 해가 가고 또다른 해가 온다. 그저 해가 지고 다시 뜨는 여느 날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일과지만 왜인지 마음이 무겁다. 또 새로운 일 년의 한 사이클을 살아내야 하는구나 싶어서. 2023년의 나는 참 수고가 많았다. 여러 차례 그만두고 싶은 위기를 넘겼고, 잘 극복해왔지만 그 마지막의 위기에서 나는 짐을 반쯤 던져 버렸다. 내 한 해는 성공이라 봐야 할까, 실패라 봐야 할까. 


나의 2023년 목표는 꽤나 여러 차례 바뀌어왔다. '잘 해내기'였다가 '최선을 다하기'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끝까지 해 보기' 였다가, '그럼에도 건강하기', '버티기', '살아내기'로 바뀌어 왔다. 나의 2023년은 그렇게 흘러왔다. 어찌됐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앞에 두고 뒤를 돌아볼 위치에 와 서있다. 그렇다면 내 한 해는 성공이라 봐야 할까, 실패라 봐야 할까. 


내가 힘들고 속상하고 외로웠는지 우리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 같다. 가끔은 학생들도 아나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고 속상하고 외로웠는지는 아무도 모를거다. 그 소용돌이치는 바다 같은 감정의 회오리 때문에 도대체 얼마나 힘든지 또 얼마나 외로운지를 나도 잘 모르고 지내왔다. 단지 발 닿지 않는 무수히 깊은 심해까지 이어지는 것만 알고 있을뿐. 그럼 덕분이라 해야 할까. 


깜냥에도 안되는 업무를 맡아 일 년을 살아내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참 많이 느꼈다. 나는 마음의 넓이가 부족했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연륜이 부족했고, 포근한 웃음 속에 힘을 주어 전달하는 경력이 부족했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을 끝까지 이어갈 끈기가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깊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대, 무언가를 해주리라는 마음, 함께 걸어갈 것이라는 마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마음. 그런 마음을 너무나도 깊이 당연스럽게도 가지고 또 믿고 있었다. 잘 해보겠다는 나의 첫 다짐이 살아내기라는 그 단순한 형태로 바꾸어가면서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 어떠한 것도 깊이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키웠다. 기대가 없다면 삶은 재미가 없고, 성취에 대한 만족과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하고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까. 


누군가 나한테 물을 때마다 난 진지하게 답했지만, 다들 장난인 줄 안다. 나는 올해가 끝날 때 나의 몸이 또 마음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라 했다. 실제로 그러너 걱정을 일 년 내내 해왔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던 날, 나는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뱃속의 이름 모를 부분이 왜인지 쿡 찌르던 날, 우려가 현실로 이루어지는구나 하며 무서워했다. 내가 하는 일들이 결국은 내 몸과 마음에 잔뜩 스크래치를 낼 것이라는 것을 느꼈고, 알았고, 그럼에도 그냥 살아냈다. 다행히 좁은 유리병같은 마음에 비해 몸은 튼튼했나보다. 살아내기에 성공해 글을 적고 있는 날 보니 말이다. 


올해가 내 뒤로 흘러가면, 모든 것이 끝난다. 다시 돌아봤을 때 미화된 기억들이 추억으로 둔갑하여 하나 둘 떠오를 때까지 다시 돌아보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기억 속 시간과 공간에서 멀어진 새로운 해를 보내고 싶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되돌아가기 싫은, 아니 돌아보기 싫은 기억들이 추억으로 미화되어, 그 추억을 연료삼아 또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그 날이 되기 전까지. 다시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고, 희망을 걸고 함께 발맞추어볼 수 있는 그 날이 되기 전까지. 나는 그저 가만히 행복하고 싶다. 내 2023년은 이렇게 흘러갔지만, 언젠간 이 시간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배울 점을 뒤져 찾아낼 그 날이 올 때까지 가만히 행복하고 싶다. 


제발 그만. 이제는 행복하고 싶다.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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