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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Jul 31. 2022

일 년 감정 모으기 프로젝트

 작년 크리스마스, 작은 종이가 들어있는 봉투를 세 개 구매했다. 하나는 내가 가졌고, 다른 두 개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봉투에는 작은 네모 칸들이 365개 그려져 있었고, 다섯 가지 색깔의 스티커가 잔뜩 들어있었다. 맞다. 일 년간의 나의 기분을 다섯 가지 색깔에 대입시켜 그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 년이 지나면 한 해의 감정이 모두 모여있게끔 말이다.


 이제 일 년의 반 이상이 훌쩍 지나있는 상태다. 2022년의 남은 칸들은 이미 스티커를 붙인 칸들보다 확연히 적다. 스티커를 붙이면서 한 해가 벌써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올 한 해를, 아니 지난 반년이라도 돌아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막연히 되돌아보기 위해 과거를 떠올렸다면 몇몇 사건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기분이 좋았던 일, 그리고 짜증 나거나 기분이 상했던 일들 몇 가지를 중심으로. 


 색으로 그날의 감정을 표현해두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때 조금은 더 풍부한 회상이 가능한 것 같다. 모든 하루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상당히 많은 붉은 스티커와 푸른 스티커의 사연들이 떠오른다. 어느 날에는 왜 유독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그 후로 며칠이나 더 붉은 계열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나는 그 사건을 언제쯤 잊고 평상시의 상태로 돌아왔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긴 하다. 매일 그날의 기분을 한 가지로 정해야 한다는 점이 제일 힘들다. 하루는 길고, 긴 하루를 살아내며 다양한 사건을 맞이한다. 나의 기분은 시시각각 변하고, 가끔은 나도 내 기분을 모를 때가 있기도 하다. 보통은 잠자기 전에 스티커를 붙이곤 하는데, 어떤 기분을 선택해야 할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오늘 하루를 쭉 되돌아보며 '그래 이 정도면 좋았지', '그래, 오늘은 좋지는 않은 기분이었어'라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한 번 정도 시도해 볼만한 일임은 확실하다. 뭐가 좋다고 명확하게 드러내기는 어렵다. 아직 일 년을 모두 마무리한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 '무조건 추천해야지'라는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뿌듯함인 것 같다. 감정이 어땠는지, 다시 회상하기 좋다는 뿌듯함 보다도, '내가 일 년을 벌써 이만큼 살아왔구나'. '올 한 해를 이렇게 보내왔고, 또 이렇게 마무리해가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이 더 크다. 


 일 년간의 나의 감정 모으기 프로젝트. 남은 시간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내보아야겠다. 그 색이 푸르던 붉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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