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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프디 May 31. 2020

<인사이드 르윈>의 진자운동

벗어날 수 없는 반복운동과 지독한 피곤함에 대해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읽기 전 참고해주세요.


르윈이 포크송 바인 가스등 카페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가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자 카페 주인 파피가 그의 친구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르윈이 카페 밖에 나가자 그를 기다리던 남자는 다짜고짜 그를 때린다. 남자가 돌아가는 뒷모습은 골파인 교수의 고양이가 걸어가는 뒷모습과 디졸브 되며 다음 장면으로 페이드 인/아웃된다. 고양이는 골파인 교수 집 소파에서 자고 있는 르윈의 위에 올라가 그를 깨운다. 이 장면의 구성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변화된 순서로 반복된다. 정확한 순서는 고양이가 골파인 교수 집 소파에서 자는 르윈을 깨우는 장면, 르윈이 가스등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미지의 남자가 르윈을 때리는 장면 순으로 진행된다. 나의 질문은 여기에서 나온다. 영화는 그 마지막 몇 장면 전까지, 즉, 영화가 끝나기 대략 10분 전까지는 정확히 선형적인 시간 흐름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마지막 10분 동안 모든 게 뒤엉킨다. 르윈이 가스등 카페 무대에서 'Hang Me, Oh Hang Me'를 부르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을 거예요. 포크송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라고 하는 장면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정확히 일치한다. 르윈이 남자에게 맞는 장면도 그렇다. 즉, 다른 시간의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완벽하게 동일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그 장면들은 도대체 스토리의 타임라인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의 장면들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선형적 타임라인 위에 위치할 수 없다. 이 영화의 구조는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진자의 궤적과 닮았다.


영화는 시작점에서 시작하는 듯 보이고 도착점을 향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막상 도착점에 다다랐을 때 그곳은 다시 시작점이 되고 처음과 똑같은 궤적으로 이제는 도착점이 된 원래의 시작점을 향해 움직인다. 진자의 운동처럼 한쪽 끝에서 운동을 시작하여 반대쪽 끝에 도달하지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끊임없는 반복운동을 벗어날 수 없다. 르윈의 여정도 마찬가지로 벗어날 수 없는 반복 운동일뿐이다. 가스등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조롱당한 아내 때문에 화가 난 남자에게 맞고, 골파인 교수의 집 소파에서 자고, 진의 낙태 비용을 구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니고, 시카고까지 가서 유명 프로듀서 버드 그로스먼을 만나 노래를 부르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뱃일을 하려고 하지만 허가증이 없어 거절당하고, 그리고 다시 골파인 교수의 집 소파에서 자고, 다시 가스등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아내의 복수를 하러 온 남자에게 맞는다. 택시를 타고 멀어지는 남자에게 르윈은 프랑스어로 "잘 가슈."라고 한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기대도 절망도 없다. 그저 피곤함만 있을 뿐이다. 르윈은 진에게 말한다. "너무 피곤하다. 한 번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그가 피곤한 이유는 도저히 자신이 서 있는 회귀 운동의 궤적 위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피곤을 느끼는 것 외엔 그가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다.


골파인의 고양이 이름은 율리시스다. 영화가 끝을 향해갈 때, 지독한 진자운동처럼 시작점으로 되돌아오기 직전 장면에서 고양이의 이름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 이름을 들은 르윈은 되묻는다. "고양이 이름이 율리시스라고요?" 그의 반응을 심상히 넘길 수 없다. 그 이유는 율리시스라는 이름이 그리스 신화의 율리시스와 동일할 뿐만 아니라 고양이 율리시스는 영화의 시작부터 르윈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르윈이 골파인의 집에서 나오다가 따라 나오는 율리시스를 막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율리시스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골파인 교수의 학교로 전화했을 때, 골파인 교수의 비서는 르윈의 "Llewyn has the cat.(르윈이 고양이를 가지고 있어요.)"라는 말을 "Llewyn is the cat.(르윈은 고양이예요.)"라고 잘못 알아듣는다. 또 고양이를 안고 지하철을 탔을 때 고양이가 지하철 창문을 내다보는 시점숏이 여러 번 나온다. 그 시점숏들에는 지하철이 지나치는 지하철역들의 플랫폼이 지나간다. 고양이의 리액션숏과 시점숏들은 숏-리버스숏으로 여러 번 컷 된다. 여정의 주인공은 르윈이지만 여정이 시작됐음을 지각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주체, 즉, 리액션 숏의 주인은 고양이 율리시스이다. 그렇게 영화는 고양이 율리시스와 르윈을 포개서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르윈과 고양이 율리시스와 그리스 신화의 율리시스도 포개진다. 그들은 모두 여정을 했고 그 여정의 도착점은 여정의 출발점과 같았다. 결과적으로 모두 지독한 회귀의 여정이었다.


코엔 형제의 필모그래피 속 모든 작품이 뛰어나다. 몇 작품은 위대하다는 수식어도 아깝지 않다. 필자가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첫째로 완벽한 시나리오, 둘째로 완벽한 숏구성과 컷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사이드 르윈>은 그런 코엔 형제의 위대함이 모두 담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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