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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Jan 10. 2020

이름 모를 붕어빵 아주머니의 고마움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한 번쯤은 경험해보지 않을까 싶다. 두 아이를 키우는 나 또한 4살 자유로운 영혼 아드님 덕에 그 아찔한 경험을 얼마 전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 어느 주말 아이들 ‘쿠키 & 피자 만들기’ 체험학습을 하러 담양 곤충박물관에 방문을 할 때였다. 두 시간의 체험학습을 끝내고 5살 큰 아이를 챙기는 사이 눈을 뗀 지 10초도 안 되는 사이 아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곤충박물관이 규모가 있음에도 다행히 발 빠르게 뛰어다니며 찾은 덕에 5분여 만에 놀이터에서 아이들 무리에 섞여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는 예승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내와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잊고 있었던 기억 한 조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때는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 3학년 때 내 생일을 맞아 끊인 미역국이 몸에 엎어져 화상을 입어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였다. 마침 그날이 소풍을 다녀오는 날이라 항상 엄마와 함께 가던 병원을 어찌하여 혼자 가게 되었고 소풍의 여파로 인해 버스에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눈을 떠보니 너무도 눈에 익은 육교가 나와 내렸더니 이건 웬걸 지척에 있어야 할 병원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놀라 십여 분을 제자리에서 울고 있었던 듯싶다. 그러길 잠시 길 건너에서 붕어빵을 팔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천천히 다가와 울고 있는 얼굴을 닦아 주시며 왜 울고 있냐며 차분히 다독여 주셨다. 가까스로 진정이 된 후  자초지종을 들으신 아주머니는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물으시곤 근처 공중전화기로 나를 데리고 간 뒤 집으로 전화를 걸어주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병원에 나타나야 할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온 식구들이 나를 찾겠다고 다들 집을 나선 것이었다. 그러니 전화를 받을 턱이 있나. 당황스러운 나의 눈빛을 읽으신 아주머니는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간단히 설명을 한 뒤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꼭 안아주시며 택시비를 지불해주셨다. 그러게 나는 이름 모를 붕어빵 아주머니의 선행 덕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라진 나를 찾겠다고 정신없이 찾으러 다니던 아빠, 엄마, 삼촌, 이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있는 나를 발견하곤 놀라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셨고 너무나 감사한 붕어빵 아주머니를 어떻게든 찾아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 하셨지만 길을 잃었던 아이가 택시를 탄 곳이 어딘지 설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예승이의 사건과 오버랩이 되어 깊숙이 묻혀있던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두 번 만나고 싶은 분임엔 틀림이 없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어떤 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할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꼭 보답을 하고 싶다. 하고 있는 일도 놔둔 채 길을 잃어버려 놀라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괜찮다고 안아주시던 그 따스한 눈빛의 기억! 살아가며 남에게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베풀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붕어빵 아주머니 감사했습니다, 꼭 다시 한번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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