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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우 Feb 18. 2020

의자 팝니다.

강현우 드림

 이케* 물건들로 채워진 단칸방에 제법 몸집이 큰 의자가 어울리지 않게 놓여있다.

4년 전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던 그때, 좋은 의자에 앉아 좋은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다짐을 담아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나름 고가의 의자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의자에 앉아 레버를 당겼다. 의자는 눕기 직전까지 넘어갔다. 등받이를 따라 벽에 붙여 놓은 그림에서 천장의 조명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은 면접이 있는 날이다. 그림을 그려보겠다며 일을 그만두고 2년의 여행을 마친 뒤 돌아온 자취방에서의 오후였다. 그림을 그리며 살아보겠다는 당찼던 마음은 당장 내일 써야 할 몇십만 원에 무너지기도 한다.


 지난밤 노트북을 펼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수학 강사'란에 이력서를 올렸다. 수학 전공에 경력까지 있어서인지 곧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 학원을 둘러봤다. 연초록 바탕에 더 연한 초록색의 네모가 그려져 있는 벽지와 흰 타일 바닥 체리 나무 몰딩이 시선을 무너뜨렸다. 벽에는 그 흔하다는 그림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축 2018년 중간고사 전교 2등 어디 고등학교 2학년 K 양', '축 2018년 중간고사 국영수 100점 어디 고등학교 1학년 K 군'이라는 글이 적힌 게시판과 방송용 스피커가 전부였다. 학원은 대체적으로 학생들의 '쓸데없는' 시선을 방지하기 위해 인테리어를 최대한 죽인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리며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실로 걸어가는 복도 양옆으로 교실이 나 있었고 교실마다 폭 20cm 정도의 창문이 길게 뚫려 있었다.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칠판과 책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나는 교실 안쪽을 바라볼 수 있지만 교실 안에서는 나의 눈만(잘 봐야 코까지)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감시 아닌 감시를 하는 기분이 들어 눈을 돌렸다.


반투명 유리로 되어있는 원장실에 정장을 걸친 내 모습이 비쳤다. 그 모습에서 4년 전 수학을 가르치다 그만둔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면접은 어렵지 않았다. 범죄기록 증명서부터 보건증까지 모두 건네고 형식적인 질문과 응답이 오고 갔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싶으시죠?"

학원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잠시 고민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우리 집 창문을 20cm로 만들어 하늘이 그만큼 밖에 안 보이는 기분이었다.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 'B'와 'B'에게 전화를 걸어 속의 말들을 꺼내 널었다. 속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조언은 따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해 효과가 좋다. 한참을 통화하고 나니 축축하게 젖어있던 마음이 어느 정도 말랐다. 젖어있던 마음에 잘못 손을 대 찢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들어가고 잘 마른 마음 위로 조금 더 노력해보자는 짠 내 섞인 도전장이 옅게 적혔다.


다시 노트북을 열고 중고를 파는 카페에 들어가 카테고리를 훑었다. 카테고리 중 '가구'란을 선택하고 제목을 적었다.


'의자 팝니다.'


다음 날 의자를 사고 싶다는 연락과 면접에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의자를 팔겠다.’라는 문자를 했고, ‘죄송하지만 일을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문자를 했다.

 팔려갈 의자에 마지막으로 조심히 앉았다. 레버를 당겨 다시 한번 의자와 함께 몸을 눕혔다. 벽에 붙은 그림에서 천장의 등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흔들리던 불빛이 한번 크게 깜-빡이더니 이내 흔들림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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