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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m Musica Feb 13. 2024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Ordo Virtutum>

서양음악사 최초의 음악극

힐데가르트  빙엔 (Hildegard von Bingen) <Ordo Virtutum> (미덕의 질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생애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11세기 말 독일의 라인강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하였지만, 신의 계시와 환상을 보는 등 비범하지 않은 아이로 평가받았다. 그녀는 형제들중 10번째 아이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그녀가 8살쯤 되었을때 수녀원에 그녀를 맡기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수녀원 생활을 시작하게된 그녀는 음악, 수사학, 역사학, 약학, 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며, 특히 발작속에서 신비로운 환상을 보게 되는 등 예언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다른 성직자들로부터 이단에 몰릴뻔한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위기에서 벗어나고, 이전보다 더욱 진보적이면서 열정적으로 수녀로서의 임무를 다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가톨릭 교단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약자에 속했던 수녀들의 권리 회복 및 지위 향상과 10년에 걸쳐 저술한 <쉬비아스> (Scivias)의 출판이었다.  <쉬비아스>에서 그녀는 자신이 경험했던 종교적 환상들을 바탕으로 종교의 본질에 대해 논하였으며, 특히 고위성직자들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그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음악극으로 알려진 <Ordo Virtutum> (미덕의 질서)을 작곡하였으며, 동료 수녀 및 성직자들과 자신의 작품을 함께 상연하기도 하였다.



 <Ordo Virtutum>

<Ordo Virtutum>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대표적인 전례극이며 서양음악사 최초의 “음악극”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2세기 중반인 1151년경 루페르트 수도원에서 작곡되었으며, 가사는 라틴어로 쓰여졌다. 라틴어로 “Ordo”는 질서라는 뜻이며 <Virtutum>은 도덕이라는 의미이다. 이 작품은 또한 악기 반주가 없는, 즉 무반주로 상연되었으며, 힐데가르트의 저서인 <쉬비아스> (Scivias) 에 수록되었다.



<Ordo Virtutum>의 주제 및 등장인물

<Ordo Virtutum>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치열한 갈등과 투쟁의 과정, 또한 선이 어떻게 악을 몰아내고 이겨내는지에 대한 과정을 상징적이면서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이 서양음악사에서 최초의 극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오페라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또한 <Ordo Virtutum>에서는 “선”과 “악”이라는 대조적인 캐릭터가 특징적이며, 극의 구조는 1. 발단 2. 전개 (선과 악의 대립 시작) 3. 위기 (다양한 특징을 가진 “선의 인물”들의 등장  및 악의 세력과의 다툼)  4. 절정 (“선”의 승리) 5. 결말 (모든 “선”의 인물들이 부르는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 인간의 영혼과 선 (Gute)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악 (Böse)의 세력이 갑자기 등장하여 인간의 영혼을 타락의 길로 빠뜨리기 위해 교묘한 말로 유혹한다. 이때부터 “선”과 “악”의 갈등구조가 시작된다. 인간의 영혼은 선과 악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지고, 인간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혼돈의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움과 선의 세력들로 인해 인간의 영혼은 악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인간의 영혼은 다시 선한 마음으로 회복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영혼과 선의 세력들은 함께 하느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찬양함으로써 극이 마무리 된다.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인간 모두를 구원해주신 아버지여, 우리의 무릎을 꿇고 찬미합니다. 그는 그의 손을 내밀어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출해 주셨습니다”


<Ordo Virtutum>의 등장인물들은 크게 “선”과 “악”의 세력들로 구분지을 수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선”의 세력으로 나오는 17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당시 음악극을 통해 여성들을 수동적 인물이 아닌 주체적인 프로타고니스트 (Protagonist), 즉 긍정적 중심인물들로 묘사함으로써 여성들의 카톨릭 교단 안에서의 능동성을 지향하고자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반면 “악”의 세력, 즉 안타고니스트 (Antagonist)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남자들인데 수도원에서 상연시 남자 수도사들에 의해 상연되었던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Ordo Virtutum>에서의 등장인물들의 설정을 통해 카톨릭 교단안에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남.녀간의 젠더 갈등 및 남성중심주의적인 문화를 개선해 나가고자 했던 의지를 보였다고 유추할 수 있다.


<Ordo Virtutum>에서 나타나는 전례극 (Liturgisches Spiel)적인 특징

“전례극”의 본래 의미는 청중에게 성경의 일화를 설명하는 목적의 연극으로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례극은 11세기 경부터 많이 쓰여지기 시작하였고 주로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Ordo Virtutum>에서 역시 전례극의 형식을 살펴볼 수 있는데 특히 다양한 구약 및 신약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특히 인간의 영혼이 선과 악의 세력 사이에서 갈등하고, 이로 인해 죽음과 죄악이 내면을 지배하는 장면에서 역대상 29장 15절의 말씀이 인용된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역대상 29장 15절)


또한 인간의 영혼이 악의 교묘한 유혹으로 인해 내면 깊은 곳에 상처를 입고 심적으로 고통받는 장면에서는 요한계시록 12장 9절 말씀이 인용된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뱀, 즉 마귀 혹은 사탄이라고 하는 자가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이는 과정과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해를 입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고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장 9절)


선의 세력들은 하느님의 능력을 구하면서 인간 영혼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간절히 간구한다. 그들은 상처받은 인간 영혼을 감싸 안음과 동시에 하느님의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 장면에서는 누가복음 15장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이 인용된다. 누가복음 15장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은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의 말씀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 사람의 진정한 회개가 하느님께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누가복음 15장 8절-10절)


또한 선의 세력들은 하느님의 능력을 어떻게 믿고 또한 하느님을 어떻게 기쁘게 하는지 알리기 위해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을 인용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세 상 주시는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


결론적으로, <Ordo Virtutum>에서는 다른 전례극 작품들과는 다르게 특정한 성경 말씀 혹은 에피소드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기 보다는 “선”과 “악”의 대립을 주제를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구약 및 신약의 성경 구절들을 다양하게 인용한다고 볼 수 있다.



<Ordo Virtutum>의 음악적 특징

<Ordo Virtutum>의 선율 구조는 기본적으로 그레고리안 성가의 특성과 비교적 유사하며 (단선율, 무반주, 비교적 좁은 음역대, 순차진행 등), 선율 구조는 대부분 단음적 (syllabic) 구조라고 볼 수 있으나 부분적으로 다음적 (melismatic) 구조가 보인다. 선법은 주로 프리지안 선법이 사용되었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의 관점에서 본 “프리지안 선법”은 인간의 다양한 내면의 감정, 즉 희노애락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선법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프리지안 선법은 기독교 전례 의식에서 사순절 기간에 주로 연주되었다. 형식 구조는 두 그룹이 서로 주고 받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일정의 안티포날 (antiphonal) 구조로 구성되어있다.



<이 칼럼은 필자가 2015년 독일 튀빙겐대학교 학사과정중에 저술했던 소논문 <Ordo Virtutum - Das prophetische und liturgische Musikdrama von Hildegard von Bingen>을 각색 및 재구성한 글입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Ordo Virtutum> 연주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UMlhtoGT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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