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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m Musica Sep 19. 2024

연극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밤> 리뷰

당신의 외로움은 반짝거려요.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는 가까웠다.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도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느낄 수 있던 특유의 긴장감 보다는 친한 이웃집에 맘편하게 즉흥적으로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추석 연휴 직전이라 그런지 관객의 수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오히려 오붓하게 연극 공연에 몰입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무대의 배경은 'Crash'라는 서울 시내에 위치한 작은 LP 바. 이곳의 단골 손님들은 연극 연출가, 작가 지망생 , 배우 등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단골 손님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일정이 끝난 저녁에 즉흥적으로 바에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작가 지망생인 은영은 워크숍 과제로 "외로움"에 대한 주제로 희곡을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친구들의 도움을 요청한다. LP바의 사장인 유빈, 연출가 민혜, 배우인 해창, 은영의 후배인 진성은 은영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술을 마시며 "외로움"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또한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재즈 BGM은 이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더욱 빛내주는 역할을 한다.


 은영, 유빈, 민혜, 해창, 진성. 이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은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얼핏 보면 아무말 대잔치를 연상하듯 만담을 늘어놓는것 같지만 이들이 정의하는 "외로움"에는 나름대로의 사유와 철학이 담겨져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외로움은 부정적인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을 오롯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며,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그 무언가이다. 또한 이들은 외로움이 "서울의 복잡하고 화려한 풍경"과 "시골의 한적한 달빛과 별빛"에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서울의 화려한 네온사인은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가며, 바쁘고 치열한 일상으로 내몰리게 함으로써 사람들간의 거리를 멀어지고 소원해지게 만드는 반면, 시골의 한적한 달빛과 별빛은 그 자체만으로도 외로움의 감정을 자아낸다면서.


 이 연극에서는 선역도 악역도, 주연과 조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서사 또한 보이지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키워드가 이 연극의 유일한 주인공이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당신에게 있어 외로움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외로워하지 말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구태의연한 메세지 보다는 "외로움은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가 짊어져야 할 그 무언가"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남긴다. 그냥 혼자여도 충분하다고. 외로움을 굳이 피하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무대 배경이 술집인데다가 등장 인물들이 계속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와서 그랬는지, 아니면 "외로움"이 주제여서 그랬는지 연극을 보는 내내 술 한 잔이 생각났다. 만약에 술을 마시면서 이 연극을 보았더라면, 등장인물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더 깊이 몰입하면서 나의 내면에, 아니 정확히는 무의식속에 잠재하고 있는 "외로움"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외로움"이 주제였던 공연이라 그런지 이 날 공연을 왔던 관객중에 절반 이상이 나처럼 혼자 방문한 관객이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관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적은 관객수가 이 공연의 성격과 더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화려한 무대 배경과 조명, 긴장감 있고 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라고, 그리고 그까짓것 좀 외로워도 괜찮다는 무언의 메세지를 주는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밤>.  당신이 정의하는 외로움은 무엇인가요?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RKO 관객비평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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