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본 영화 <파수꾼>
영화 <파수꾼>을 이제서야 봤다. 역시나 좋다.
수많은 좋은 장면 중에서도,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기태가 자신의 상상을 떠벌이는 대목이다. 상상 속에서 기태는 프로야구선수가 된다. 4번 타자로 결승홈런을 날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태에게 열광하고 환호한다. 기태의 애정결핍이 진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태의 상상에서 가장 중요한 풍경은 많은 이들의 환호성이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 아래에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깔려 있다. 큰 결핍이 큰 상상을 만든다.
그리고, 상상은 결핍을 해소하지 못한다.
애정결핍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결국 사랑이다. 저 사람도 나를 떠나겠지.라는 단단한 고정관념을 누군가의 헌신을 통해 바로잡는 것. 계속 사랑을 받으며, 계속 사랑을 확인하며, 그 사람만큼은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
하지만, 누가 그것을 해줄 수 있을까. 어렸을 적 부모가 짊어져야 했던 짐을 누구에게 떠넘길 수 있을까.. 그 피곤하고 진이 빠지는 일을 누가 해낼 수 있을까. 기태는 비뚤어진 형태로 사람을 부여잡았고, 결국 버림받았다.
영화 속 친구들은, 말을 못 한다.
백희는 백희대로, 기태는 기태대로, 동윤이는 동윤이대로, 말을 삼키고 말 대신 욕을 한다.
그들이 나눈 말들은 많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은 말들은 훨씬 더 많다. 이는, 사실과 감정의 은폐이겠지만, 정말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세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는 데에 큰 잘못이나 거대한 서사는 없다. 작은 오해와 서투른 대화가 쌓이고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작은 결들을 얘기할 수 있는 언어가 그들에겐 없었다. 빈약한 10대 남자애들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제 감정을 스스로 읽지 못하니, 말할 수 없는 감정들. 그래서 기태는 단말마처럼 외친다. 씨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들은 욕을 한다.
이는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읽지 못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어수룩한 말로 덮는다. 정확하지 못한 말로 엇갈린다. 상처 받은 여린 마음을 꽁꽁 싸매며 상처는 더 깊어진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여리다. 어릴 때부터, 나이가 먹어서도.
파수꾼이 역시나 좋은 이유는, 나의 이야기처럼 읽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