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온에서 테라디요스까지 | 25km
여느때나 다름없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 오늘도 다 함께.
사진 찍어준다고 해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난 사진을 찍을 줄은 알아도 사진을 찍힐 줄 모른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다. 이번 순례길에서는 이 단점을 어느 정도 해소한 것 같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걷다가 알게 된 아빠와 딸의 조합, 프란시스코, 그리고 딸 클라우디와 친해져 함께 걸었다. 클라우디는 너무 어렸고, 아빠인 프란시스코는 영어를 하지 못해서, 우리가 아는 최대한의 스페인어를 총동원하여 이야기를 했다. 사실 커뮤니케이션에는 언어보다는 소통하려는 마음 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어를 잘했으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야 했겠지만. 없어도 우리는 소통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여행 중에 언어는 어떻게 해결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커뮤니케이션은 태도가 먼저라고 생각을 한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언어 외에도 수많은 수단이 있다.
수채화 와도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다. 까미노 길이 선물하는 맑고 청아한 하늘이다. 며칠 전 비가 온 구름은 온 데 간데없고, 맑고 청아한 하늘과 코 끝을 뻥 뚫어주는 공기가 어느새 다가와 있다. 걷다 보면 어느새 뜨거운 낮의 태양이 성큼 다가와 있고, 목과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그 땀에는 우리네 인생이 서려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왔을까?
길을 걸으며 대화를 하면, 어느새 길보다는 서로의 인생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춰 듣고 얘기하고 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제일 자주 이야기 하는 질문이 있다. 제일 싫어하는 질문중에 하나이기도 하지만, 결국 대답을 아직까지 얼버무리고 마는 그 질문, "왜 순례길에 왔어?". 이 질문은 길이 끝나고 나서도 쉽게 답을 낼수 없을것 같다. 그저 내 영혼이 이끌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여행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이제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꼭 이유를 찾아야 하는건 아니지만, 이 길이 끝날때에는 답을 명확히 찾을수 있을까?
여럿이서 걸으면 시간은 빨리 가지만 전체적으로 가는 속도가 더뎌진다. 바가 보이면 맥주한잔을 하고 가고, 각자의 체력이 다 다른데 힘든 사람을 우선적으로 맞춰주니까 좀 더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우리는 놓고 가지 않는다. 같이의 가치를 알고 있으니까.
Beatles 의 음반 'Abbey road'의 앨범 커버를 오마쥬해서 사진을 찍었다. Abbey road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도 "한번 더 뭉쳐보자" 라는 제안이었으니, 우리는 뭉쳐서 함께 걸었다고 해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