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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토 Jan 13. 2021

인스타로 미리보는 HCI/UX 미국유학의 삶

미국 HCI석사로 유학길에 오른 한 학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다

안녕하세요, 링크드인 뉴욕 프로덕트 디자이너 안토입니다.


혹시 미국 HCI 유학 생활을 앞두고 계신가요? 혹은 미국 UX 디자이너 취업을 생각으로 미국 유학을 조심스레 생각 중이신가요?


미국으로의 HCI/UX 디자인 유학 - 다들 각기 다른 이유로 오시지만 대부분의 분들께서는 실리콘밸리 취업, 억대 초봉, 캘리포니아의 완벽한 날씨 - 이런 것들을 목표로 오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하지만 먼 타지에서 2년간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하시죠?


오늘은 미국으로 HCI/UX 디자인 해외유학을 가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궁금하신 분들께 미국 HCI 유학생의 생활을 미리 보여드리는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서 어떤 동기들을 만나고, 어떤 수업들을 들으며, 어떤 고충이 있고,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어려웠지만 영상을 가미하여 한 글에 담아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과 학부, 석사 친구 및 지인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소설 읽듯이 가볍고 재밌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실제 경험에 기반한 가상 스토리이며, 여기 쓰인 모든 영상은 제 개인 SNS/작업물 및 일상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영상 속 인물/장소들은 가상 스토리와 전혀 상관없다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8월 중순, 오리엔테이션 - 설렘과 자부심에 가득 찬 신입 동기생들을 만나게 된다


신입생들 모두 들떠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보입니다. 특히 유명한 HCI 종합대로 갈수록 그런데요, 대부분의 신입생분들께서 드디어 좋은 학교, 좋은 프로그램에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다는 자부심과 희망감에 다들 들떠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고, 앞서 졸업하신 선배분들처럼 실리콘밸리의 핫한 기업들에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 모두 파이팅이 넘칩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왔지만 막상 백인은 몇 명 없고 대부분이 동양인입니다. 중국인이 참 많습니다. 이미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중국어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몇 명 정도 있는지 주변을 둘러봅니다. 옷차림과 얼굴을 보니 대충 한국인들이 보입니다. 한 4-5명 있어 보이네요. 아직은 낯선 이들이지만 앞으로 2년간 한 스튜디오, 다양한 수업에서 동고동락할 동기들인 만큼 친해져 보려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친목을 다집니다.



맑은 여름 하늘의 미국 동부




9월 초, 수업의 시작 - 뭐지 이거 생각보다 쉬운데?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고 대부분의 학교들에선 UX 디자인의 기초부터 다루게 됩니다. 21세기 기술의 현주소, IT산업에서의 UX 디자인의 역할, 기본적인 UX 디자인 프로세스 등 기본적인 수업내용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숙제도 어려운 것 하나 없고 이대로라면 전 과목 A+도 가능할 것 같죠. 실제로 HCI 석사 프로그램들은 수업이 어려운 과정이 아닙니다.



HCI 입문 수업 중



하지만 어딜 가나 열심히 사는 우등생들이 있죠. 이분들은 몇 주 전부터 열심히 강의가 끝나고도 교수님들과 친해지며 리서치 및 프로젝트 기회를 찾습니다.


종합대에서는 다양한 교수님들께서 다양한 기업/연구소와 HCI 연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미대에선 디자인 현업에서 이미 높은 직급이신 교수님들이 계십니다. 그런 교수님들과 친해지며 파트타임 일을 구합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용돈 벌이용인가?" 싶습니다. 날씨도 좋고, 동기들과도 서서히 친해지는 과정입니다. 90%가 아시안 유학생들이어서 다들 같이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며 맛있는 식당을 찾아 나섭니다.


그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거야! 뭔가 아직까진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기분 좋게 취하는 밤입니다.



시골은 밥값이 싸구나!




11월, "엥 벌써 하계 인턴십을 딴 애들이 있다고?" - 학부생들을 만나다


수업 2달 차, 수업은 여전히 할만하고 이제 중간고사를 슬슬 보는데, 링크드인 피드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벌써부터 삼삼오오 각종 하계 인턴십 합격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야 이거 봤어? 어떤 애가 벌써 페이스북 프로덕트 디자인 인턴 합격했다는데?"

"벌써? 누가?"


학부생들을 만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석사 프로그램 학생분들은 이제 막 새로운 도시에 정착해서 UX 디자인 기초를 천천히 배워 가는 중이지만, 일찍부터 디자인으로 진로를 정한 디자인 학부생들은 이미 2학년부터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오던 1년 차 배테랑입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석사생들에 비해 UX 디자인으로만 보면 선배지요. 학부 3학년인데 이미 대기업 인턴경력이 있는 친구들도 몇 명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8월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고 있을 때, 이미 인턴취업 절차를 한번 밟아본 학부생들은 페이스북과 최종 면접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벌써 페이스북 합격이라니..



실리콘밸리에서 인턴십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인턴십이 정규직으로 연계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굳이 연계가 안되더라도 포트폴리오에 인턴 프로젝트의 유무는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요.


동기들 사이에 공기가 달라집니다.

"뭐야, 우린 아직 프로젝트 진행한 것도 없는데, 벌써 지원해야 하는 건가?"


인턴십이 중요하다고는 미국 오기 전부터 들어왔지만, 벌써 지원기간이 시작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자국에서 과거 디자이너로 일하다 오신 분들은 9월 초 학기 시작부터 벌써 아무도 모르게 발 빠르게 포트폴리오 플젝 작업을 병행하고 계셨습니다. 알고 보니 9월 초에 교수들과 친목을 다지던 친구들은 유명 대기업 연계 리서치 프로젝트를 벌써 2개월째 하고 있었습니다.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대기업 로고를 대문짝 만하게 박아놓았네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인턴 지원 시즌이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뭐지.. 난 포트폴리오에 넣을 프로젝트도 없는데 큰일 난 건가?"




12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과거 디자인 경력이 없거나, 유명 기업/기관 리서치를 못 구한 학생들도 사실 UX 플젝 수업 덕분에 뭔가 만들긴 하고 있지만, 플젝 한 개 가지고는 턱도 없어 보입니다. 뭔가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개인 플젝 혹은 2인 1조로 팀플을 시작하는 애들도 보입니다. 더 많은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러 여기저기 바쁘게 다닙니다. 포스트잇과 유성펜을 달고 살게 됩니다. 칠판에 40개의 포스트잇이 어지럽게 붙어있습니다.


바쁜 그 와중에 인턴십 정보 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아 이런, 이미 30여 개의 기업들이 인턴공고를 내고 실시간으로 지원서를 받는 중입니다. 링크드인에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인턴십 합격 글들이 올라옵니다. 저번 주는 페이스북, 이번 주는 테슬라.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인턴 할 수 있는 자리는 한 개씩 사라지는 중입니다.



벌써 이렇게 많은 인턴십이 열었다고..?!




겨울방학, 쉴틈이 없다.


겨울방학이 오고 일단 한국으로 잠시 귀국합니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절대 놀 수가 없습니다. 1월 첫째 주에 구글의 인턴 포지션들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꿈의 직장 구글... 분명 난 구글 같은 대기업을 꿈꾸며 오른 유학길이지만 지금 당장 제출할 포트폴리오는 반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어서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어야만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수 있고, 포폴이라도 있어야 시간 안에 구글에 지원이 가능합니다.


테크기업들의 인턴십에 합격한 합격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모아놓은 플랫폼을 발견했습니다. 이분들 포트폴리오 퀄리티만 따라가면 이 기업들에 취업이 가능해진다는 말이 됩니다. 어서 성공요인을 분석하여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턴 합격생들의 포트폴리오 모음



하지만 포트폴리오 구축 자체도 문제입니다. 한국과는 다르게 모두 웹사이트 형식으로 포폴을 만듭니다. 한 번도 안 써본 Squarespace, Wix, Webflow 같은 웹사이트 툴을 배우느라 머리가 쉴 틈이 없습니다. 웹사이트를 처음 만들다 보니 반응형 웹이 너무나도 헷갈립니다. 분명 데스크탑에서는 제대로 뜨는데 아이패드랑 모바일에선 계속 구성이 깨집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웹플로우는 HTML/CSS 기본이 없으면 참 헷갈린다



데이트는 커녕, 크리스마스, 새해가 컴퓨터만 보다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휴식을 한 것 같지도 않지만 벌써 겨울방학이 끝났습니다. 부모님의 열심히 하라는 응원을 듣고, 새해 목표를 굳게 다짐하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2022년 1월, 2학기 시작 = 전쟁의 시작


2학기 수업들이 시작되고,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불만이 가득합니다. 학교 수업만 잘 따라가면 취업도 알아서 될 것만 같았는데 그게 전혀 아닙니다. 학교 수업은 이론만 가르치고, 이상한 도표만 잔뜩 그려오라 시키고, 가서 친구들한테 설문조사나 해오라 그러고, 자바스크립트로 사각형이나 360도로 뺑뺑 돌리라고 시킵니다.


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취업하기 위해 왔는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지 싶습니다.


퀄리티 있는 플젝이 나올 기미가 안 보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플젝은 고작 1학기 팀플 한 개. 진행 중인 플젝은 내 개인 플젝 하나.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수업 플젝을 가지로 면접을 볼 생각을 하니 이걸론 전혀 안 되겠습니다. 개인 플젝으로 칼을 갈아야 합니다.



디자이너인데 왜 코딩을 배우고 있는지...



수업은 이미 버린 지 오래입니다. 인턴취업에 도움이 안돼 보이는 수업에 대해 학장에게 가서 조심스레 따져보지만 소용없습니다.


"우리 수업은 취업용이 아니야. 우린 학생들에게 폭넓게 IT산업에서의 디자인의 역할을 보여주는 게 목표야. 혹시 몰라, 덕분에 이 중에서 UX 엔지니어 같은 개발직을 하고 싶은 친구들을 발굴해낼지?"


아 - 일단 난 아닙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서 개인 플젝 마무리, 포폴 웹사이트를 구축하기에 바쁩니다. 매일매일 밤샘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시각디자인 능력이 빨리빨리 늘지 않아 답답합니다. 예쁜 UI를 보면 이쁜 걸 알겠는데 직접 만들려 하면 내 건 뭔가 다릅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막막해집니다.




2월, 다들 몰래 준비하고 있었구나


어느 정도 포폴에 플젝 2개 정리를 마쳤습니다. 학교 플젝 하나, 개인 플젝 하나. 이제야 인턴십에 여기저기 지원서를 넣습니다. 학교차원에서 취업박람회도 열어주어서, 참가해보려고 합니다.


이력서 50장을 뽑으러 학교 프린터로 향합니다. 아니 이런, 동기생들 역시 이력서를 뽑는 중이군요. 역시 다들 뭔가 혼자 조용히 준비를 해오던 것입니다. 6달 동안 봐와서 친숙한 중국인 동기들이지만 왠지 모를 적막이 흐릅니다. 공기가 차갑고 프린터의 윙윙 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아침 -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낀 채, 레드불을 한 캔 마시고, 아이패드에 포트폴리오를 띄워놓고, 이력서 더미를 들고 취업박람회에 줄을 섭니다.



애플 리크루팅 행사



이 기업 저 기업 줄을 서가며 열심히 샤바샤바 플젝 설명을 하지만 사실 이게 제대로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을 새운 터라 정신도 반이 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신에게 제발 면접 몇 개만 달라고 빌 뿐입니다.


미국인들과 직접 면접을 해보니 영어회화 실력이 딸린다는 걸 심히 느낍니다. 옆에 있는 백인 친구들은 청산유수로 플젝 설명을 하는데 나는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나름 한국에서 토플 110을 만들어 와 영어엔 자신있는 편이였지만 이 미국인들은 마치 토플점수 220도 찍을 기세입니다. 면접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아쉬움이 남은 채 다시 스튜디오로 향합니다.


취업박람회 외에도 온라인을 계속 지원을 계속해야 합니다. 선배 말로는 그냥 지원하면 깜깜무소식이라 무조건 직원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받지?


아 맞다, 선배에게 온라인 디자인 멘토링 커뮤니티를 소개 받았었지. 자발적으로 포트폴리오 리뷰를 도와주는 착한 현업 디자이너분들께 모여계신 곳입니다. 그곳에서 화상채팅으로 포폴 첨삭을 요청하면, 각종 질문에 대한 답변이나 포트폴리오 첨삭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아직 초면인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이 뻘쭘 그 자체이지만 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여러 기업 디자이너분들과 시간을 잡습니다.


고맙게도 대부분의 분들은 친절하신 것 같습니다. 포트폴리오 첨삭을 받은 뒤 줌콜이 끝나기 직전, 직원 추천을 조심스레 요청해봅니다.



현업 디자이너 멘토링 플랫폼



아직 내 포트폴리오가 부족하다고 미안하다며 거절하는 경우도 꽤 많지만, 10명에 3명꼴로 추천을 해주십니다. 오케이! 이번분은 추천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미국식 네트워킹은 이런 거구나... 오늘 또 한수 배워갑니다.




3월, 첫 면접 -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 할렐루야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전화면접을 보자는 이메일이 2개나 왔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번쯤은 들어본 나름 큰 규모의 기업, 그리고 처음 듣는 스타트업 한 개입니다.


최근 6달간 인생 최대 위기인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 디자인 실력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는 안도감에 눈물도 핑 돌고 나름 뿌듯한 성취감도 드는 날입니다.



드디어 첫 면접!



최대한 늦은 날짜로 면접을 잡은 뒤 또 밤새서 포트폴리오를 갈고닦습니다. 선배한테 물어보니 어차피 프로젝트는 2-3개 정도밖에 볼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나도 이번 1월부터 교수 한명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괜찮은 플젝을 따냈습니다.


플젝 개수만 따지면 이제 3개. 하지만 다시 보니 도표들도 너무 못생겼고, 어플 디자인도 썩 맘에 들진 않습니다. Principle로 만든 프로토타입에도 오점이 보입니다. 싹 뜯어고쳐서 더 이쁘게, 더 완벽하게, 더 아름답게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내 얼굴은 점점 피폐해집니다... 팩이라도 해야지.


전화면접을 봅니다. 어차피 전화로 하니 컴퓨터에 예상 질문 및 답변을 다 띄워놓고 성실하게(ㅋ) 면접에 임합니다. 30분은 정말 순삭처럼 지나갔지만, 그래도 이젠 프로젝트도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많이 봐서 그런지 괜히 잘 본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1주일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 축하한다는 이메일과 디자인 과제가 도착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주어진 주제에 대해 어플 및 서비스 디자인을 제출해야 합니다. 이제 이 정도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하지만, 내 시각 디자인 능력이 회사기준에 충분하길 바랄 뿐입니다.




4월, 이것은 호캉스? ㄴㄴ, 고강도 면접


대기업 면접은 탈락했지만, 한 스타트업의 최종 면접에 붙습니다! 면접 날짜를 정하니 이게 웬일, 회사에서 항공권과 호텔 숙박을 대신 다 예약해 줍니다. 이래서 천조국이구나...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합니다. 어쩐지 최근 몇 주 강의에 여행 캐리어를 끌고 오는 동기들이 한두 명씩 보였는데, 다 최종면접이 잡힌 동기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도 강의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니 왠지 모를 동기들의 경계하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이젠 모든 동기들이 나도 어디론가 최종면접을 보러 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꼭 합격을 해서 돌아와야 합니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비행시간은 약 6시간 반,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도 작업은 계속됩니다.

최종면접에는 따로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PPT도 이쁘게 만드려니 은근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비행기는 착륙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공항에서 나와 회사에서 보내준 우버 크레딧으로 우버를 탑니다. 오메, 샌프란시스코 SFO 공항에서 서니베일의 호텔까지 1시간이나 걸립니다. 캘리포니아는 넓고도 넓습니다. 우버 값이 $100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회사 계정으로 지불하니 바로 무료 결제가 됩니다. 신기하군..


호텔에 체크인을 하니 넓은 호텔방이 나옵니다. 상당히 고급 호텔입니다. 침대에 드러누워 이제서 핸드폰을 확인하니 회사 측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Welcome to Sunnyvale! Your interview schedule, 4/19/2022"


인터뷰 일정이 나와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하는 강행군입니다.

오전에는 프레젠테이션, 점심식사 후 1:1 면접 4차례... 내일 면접 후 저는 아마 저는 기절할 것 같습니다.


이메일 끝에 보니 음식 비용을 $250불이나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그래..? 룸서비스를 시켜도 남네..?"



룸서비스 공짜라 더 맛있네



피곤하고 배고픈 나머지 룸서비스로 파스타와 와인 한잔을 시켜 저녁식사를 해결한 뒤, 새벽까지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다 잠에 듭니다.


그래도 좀 자야 내일 제정신으로 면접을 보지..



면접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 샤워를 한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면접은 이것 하나뿐이다.

어떻게든 합격해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회사가 지불해준 우버를 타고 사무실로 향합니다.

쨍쨍 내려쬐는 햇빛 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낮고 넓은 유리 건물들.. 자세히 보니 다 익숙한 로고들입니다.


"음.. 저건 애플.. 야후... 링크드인... 구글... 삼성... 와 대박..."

한국에선 자주 보던 삼성로고를 먼 타지에서 보니 마음이 이상합니다.

실리콘밸리가 목표인 당신에게는 이 모든 광경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매일매일 맑고 청명한 캘리포니아



약 15분 뒤, 대학 캠퍼스 같은 큰 공원으로 차량이 진입하고, 이내 우버가 멈춰 섭니다.

탁 트인 전경, 공원같이 꾸며놓은 캠퍼스가 너무 친숙하면서도 신기한 분위기를 내뿜습니다.

햇빛에 구워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바닥 향기가 코끝을 찌릅니다.



캠퍼스 진짜 넓다...



빌딩 8... 여긴가? 통유리문을 지나자 커다란 로비가 나오고, 회사 로고가 네온사인으로 큼지막하게 달려있다.

그리고 드디어 다시 만난 리크루터.


"Hey, welcome! Good to see you again!"

이제 면접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한 시간 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됩니다.

각종 질문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도 많아 임기응변으로 답변을 해야 합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끊임없는 생각이 듭니다.


점심시간입니다. 직원 한 명이 잘하고 있다며 칭찬해주며 구내식당으로 데려갑니다.

큰 뷔페 형식으로 다양한 음식, 음료, 디저트들이 있습니다. 모두 무료라고 합니다.

그래? 접시를 가득 채워 담아봅니다...


뷔페 퀄리티 실화?



근데 이상하다, 직원이랑 함께 밥을 먹는데 은근슬쩍 계속 질문을 합니다.


"왜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셨어요?"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뭐예요?"


뭔가 이것도 면접 같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될 것만 같습니다.

결국 체할까 봐 음식은 반도 먹지 못한 체 점심 면접도 끝나갑니다..


그 뒤 4차례의 1:1 면접에서 계속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쉴 새 없이 발표하고 답변하고 답변을 지어냅니다.

50분 뒤 5분의 휴식, 또 50분 뒤 5분의 휴식, 정신이 나갈 것만 같습니다. 살인적인 면접 스케줄입니다.



아니 중간에 쉴틈은 주셔야죠;;



하지만 이것만 견뎌내면 사실상 인턴 합격과 정규직 전환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에 악과 깡으로 환한 웃음을 지어보며 면접관의 질문을 성심성의껏 답변합니다. 영어 발음도 평소보다 더 굴려서 말하느라 이젠 혀 근육이 마비가 될 것 같습니다.


드디어 면접이 끝났습니다. 밖에는 서서히 해가 지고 있고, 머리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지만 우선 배가 너무 고픕니다. 4시에 끝나서 저녁밥은 따로 안 주나 봅니다.


근처에서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호텔로 돌아갑니다.

"아... 난 오늘 과연 잘한 걸까..? 꼭 붙어야 하는데..."

속으로 생각하다 잠에 듭니다.




5월 초, 결실을 맺다


최종면접을 보고 2주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주소가 Sunnyvale, California로 찍혀있습니다.


"아 이거 면접 결과다." 필이 딱 꽂힙니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습니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캘리와 동부 날씨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인사담당관께서 조심스레 말씀을 꺼내십니다.


"면접 후 모든 면접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았는데요,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됐다.

믿을 수가 없다.

난 취업했다.

인턴십만 잘 해내면 정규직은 문제없이 딸 수 있다.

먼 타지까지 오기로 한 나름의 인생 도박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석사 온 이유는 바로 이것.



전화통화 후 몇 분 뒤 계약서가 이메일로 날아옵니다.

문서 상단에 있는 회사 로고가 이토록 이뻐 보인적이 없습니다.

시급을 보고 빨리 계산을 돌려본다. 시급 $55... 얼마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연봉 한화 1억 2천만 원에 준하는 액수입니다.


"대박사건."




5월 말, 1학년을 마무리하며


1학년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습니다. 교수님들과 인사를 하고 동기들과도 인사를 합니다. 학과장이 고생했다고 격려차원에서 디너파티 행사를 준비해주었습니다.


다들 방학 끝나고 보자구~



다들 밝은 얼굴이지만 몇몇 학생들 얼굴엔 왠지 모를 씁쓸함도 보입니다. 저기 한국 대기업에서 이미 디자인하다 오신 분, 보란 듯이 구글 인턴십에 합격하셨습니다. 부럽습니다. 나랑 제일 친했던 동기도 마이크로소프트로 인턴을 가기로 했습니다.


다들 너무 잘된 것 같지만, 30명의 동기들 중 인턴십을 구한 동기들은 대부분 링크드인에 공개를 했습니다. 대략 20명 정도가 링크드인에 올렸으니, 10명 정도가 맘에 드는 인턴십을 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왠지 표정에서, 그리고 지난 1년간 봐왔던 동기들의 과제와 행실에서 그 10명이 누구인지 대충 감이 오긴 합니다. 이들은 아마 여름 기간 동안 칼을 갈며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포트폴리오 강화 작업을 하겠지.


돌이켜보면, 석사과정의 수업내용은 정말이지 취업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는 내용은 하나같이 다 뻔한 내용들이고, 결국 내가 내 힘으로, 동기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자립적으로 진행하여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던 친구들은 자연스레 도태되었습니다. 석사 수업 자체는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디자인 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해 디자인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발 한번 담가보는 정도라는 것, 대신 학교의 네임벨류와 네트워킹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


이번 한 해 가장 큰 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 괜찮고 상관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점은 나도 어떻게든 해냈으니까. 원래 경쟁사회가 이런 것 아닐까요?


캘리포니아의 여름이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얼굴에 미소가 띱니다. 이코노미석이지만 어느 일등석 승객보다도 행복하고 편안한 잠에 듭니다. 난 기어코 해내고 말았습니다. 어서 빨리 가족과 친구들과 축하파티를 하고 싶습니다.


곧 보자, 캘리포니아!



한국가서 친한 친구들과 축하주를 한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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