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것이 있더라도 일단 최대한 아는척 해야한다. 나처럼 피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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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학년으로써 취업박람회를 갔을때 면접이 잡힐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난 그저 취업박람회에는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유명한 기업들이 많이 와있는 그 분위기가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갔을뿐이었는데. 이렇게 포트폴리오도 없이 덜컥 면접이 잡혀버리니 대략난감했다.
하지만 1학년은 무조건 패기 아닌가? 면접을 딴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성과이다. 일단 부딪혀보자고 생각하고,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진행해본 프로덕트 디자인 프로젝트를 일주일 내내 키노트에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내 룸메이트는 신기하다는듯 쳐다봤다.
"너 포트폴리오도 없는데 면접이 어떻게 잡혀?"
"나도 몰라. 그냥 겁없는 모습이 맘에 드셨나봐."
한 이틀이 지났을까? Flipboard측에서 먼저 이메일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자, 플립보드 베이징 오피스의 Head of Mobile 분께서 연락을 주셨다.
"카네기멜론 취업박람회 통해서 너의 이력서를 받았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한 기업가 정신과 너의 프로덕트 디자인에 대한 집녑을 굉장히 높게 사고있어. Flipboard가 지금 중국시장을 본격적으로 겨냥하러고 해서 지금 베이징 현지 오피스에서 여름 인턴을 구하고 있는데, 베이징 거주중인 너가 좋은 핏일것 같아. 언제가 시간이 괜찮겠니?"
난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좋았다. IT 업계에 대한 열정 하나로 카네기멜론까지 왔는데, 마치 그 열정이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난 면접을 준비하면서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Flipboard는 뉴스 어플이다. 난 한국, 중국, 미국생활을 접해보면서 아시아와 북미권의 뉴스 스타일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낀적이 있다. 한국 뉴스는 대부분 단편적이며 기사가 길지 않지만, 북미권은 한가지의 주제를 상당히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긴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한국 뉴스는 주로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접하게 되고, 정치인사들의 행동이나 교통사고, 산불 등등 정치이슈, 사건사고 및 자연재해 관련 기사가 많은 반면, 미국은 한가지 큰 주제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길게 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다양한 뉴스 어플이 나오면서 다루는 뉴스의 주제도 다양했지만, 당시 14년도만 해도 대부분의 뉴스는 CNN 블룸버스 등등 뉴스 사이트에서 바로 뉴스를 읽는 경우가 많았다.
난 이 미국과 아시아의 뉴스 성향의 차이까지 키노트에 넣어두고 면접을 준비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면접날. 너무 설레면서도 인생 첫 면접이었기에 너무나도 떨렸다. 고등학생때 했던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읊어보다가 Skype콜에 들어갔다.
"Hey Antonio, nice to meet you!"
면접이 시작되었고 가벼운 인삿말이 오갔다. 곧 프로젝트 발표에 들어갔고, 비록 고등학생때 진행했던 프로젝트였지만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면접관도 열심히 필기하며 듣더니 중간중간에 질문을 했고, 나름 괜찮게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발표가 끝날 무렵, 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혹시.. 면접관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Flipboard의 중국 진출 전략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그것도 보여드려도 될까요..?"
한번 보여달란다. 난 한국, 중국 뉴스포털과 미국의 뉴스포털을 스크랜 캡쳐해 비교해놓은 슬라이드로 시작해서, 두 대륙간의 뉴스차이를 짚어가며, 내가 생각했던 중국 Flipboard의 홈 화면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 이런 이유로 중국 Flipboard는 좀 더 본인 지역사회와 연관있는 뉴스들로 채워나가면 더 승산이 있을것 같습니다."
"대단한걸? 나도 동의하는바야."
첫 면접이 이렇게 잘 끝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열심히 준비한 내 자신을 뿌듯해하던 찰나, 훅 들어온 기습질문.
"아 근데 사실 우리 인턴 포지션이 프론트앤드 개발도 좀 할줄 알면 좋겠는데 너가 정보시스템 전공이지? 다음주에 기본적인 자바스크립트 시험을 볼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물론 주전공은 정보시스템이었지만 아직 웹개발 수업은 듣지 못했을 뿐더러, 나의 관심은 프론트엔드 개발이 아닌 오로지 프로덕트 디자인에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관심이 없다고 할 수도 없기에, 다음주로 면접을 보기로 하고 복잡한 감정을 남긴 채 2차면접이 끝이 났다.
그 한주는 정말 두려움에 빠져서 지냈었다. HTML/CSS는 전에 학원에서 이미 공부를 해봤던터라 그나마 괜찮았지만, 자바스크립트는 전혀 해본적이 없었고, 일주일만에 공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학생다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너무 코딩면접이 두려웠던 나머지, 면접관님께 이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면접관님, 제가 독감에 걸린것 같은데요, 혹시 면접을 미룰 수 있을까요?"
미뤄서 시간을 번다고 내가 자바스크립트 공부에 큰 도움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이고, 빨리 낫고 다시 연락주렴."
난 결국 Flipboard 면접관에게 2주나 지난 뒤 이메일을 다시 보냈지만, 그 뒤로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허무하게 떨어질꺼 시도나 해보고 떨어질껄. 후회로 가득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난 여태 살아오면서 준비되지 않은 시험을 본적이 없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미국수능 (SAT),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험을 보는것에 익숙한 나는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는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다.
이 경험을 계기로 중요한것을 배웠다. 무엇이든 시도해보기 전엔 모른다는것. 기초적인 질문들만 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모르더라도 일단 부딪혀보고 배우는게 회피하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것보다 낫다는 것. 그리고 모든 프로덕트 디자이너 지망생들은 멋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것.
난 이 부끄러운 일을 발판 삼아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로 굳게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