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낮게 깔린 월요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유난히 버겁습니다. 알람이 울리고, 이불속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 책상에 놓인 휴대폰을 끕니다. 다시 성큼성큼 안방으로, 이불속으로 쏙. 그렇게 몇 번이고 일어났다 다시 벌러덩 눕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킵니다. 벽에 등을 대고 앉은 내 마음으로 알 수 없는 공허함이 훅 들어옵니다. 지난주와 크게 다를 게 없는데 왜일까요.
일상이 반복될수록, 삶이 일정한 리듬을 유지할수록 역설적으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성실함과 상관없이 삶의 목적에 맞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고 모든 게 덧없이 느껴지기도 해요. 단 한 번뿐인 삶이 손에서 모래처럼 빠지는 기분. 시간은 꼬박꼬박 흘러 달력의 날짜는 어느덧 한 달의 끝을 향해 가는데 그 시간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흐릿합니다. 허무함은 그렇게, 아주 일상적인 순간을 타고 조용히 찾아와요.
이런 날은 아침 루틴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따뜻한 커피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잠시 멍하니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손끝이 따뜻해지고 배 아래가 따뜻해질 즈음, 다이어리를 펼쳐 지난 일주일을 복기해요. 딱히 떠오르는 몇 가지 사건들. 그렇다고 7일, 168시간 동안 숨만 쉬고 있진 않았을 텐데요. 의미 없이 날아가버린 듯한 시간의 족적을 찾아갑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스케줄러를 확인해요. 막연했던 무언가가 형체를 드러냅니다. 지난 내 일주일을 채웠던 것들, 남편과의 대화, 아이들과 일상, 애써 쓴 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던 책, 만난 사람들.
처참할 정도로 무심하게 살진 않았네요. 특별할 것 없지만 분명 의미 있던 일들이 나의 시간을 채우고 있었어요.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듭니다. 허무함은 종종 삶의 기대치가 높은 나를 찾습니다. 거대한 이벤트가 없어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서, 어제와 오늘이 같아서. 이루고픈 꿈은 저 하늘 끝에 보이지 않고 땅에 발을 딛고 선 나는 너무나 작게 느껴집니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고 다독이고 때로 견디는 게 방법이라는 걸 알아요. 사람이 매 순간 치열할 순 없지 않을까요. 조금 더 잘해보려 애쓰다가도 귀찮아서 미루고 후회하기도 하고 넘어질 듯 말 듯 시소를 탑니다. 그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기. 잘한 건 잘했다고, 부족했던 건 다음엔 좀 더 해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 봅니다. 타인의 인정과 평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 내가, 오늘을, 지금을 어떻게 살았는지가 더 중요해요. 포장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야박하게 굴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삶의 허무를 완전히 없앨 순 없습니다. 때때로 찾아오고, 다시 사라지고, 또 돌아옵니다. 그건 꼭 두렵고 불쾌한 감정만은 아닌 듯해요. 무던히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거든요. 지금 이 삶에 내가 진심인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힘을 내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 아닐까 해요.
그래서, 끄적끄적 나를 기록합니다. 허무함은 삶의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신호라고 믿기로 합니다. 거창한 계획이나 대단한 목표가 홀연히 나타난 건 아니에요. 기껏 동네 한 바퀴 뛰는 실력으로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꿈꾸다가 좌절하지 않기로 합니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결국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가에 있다고 봐요. 허무함을 이기려 하지 않고 그에 또 지지 않고 가끔 놀러 오는 친구 삼아서 손잡아 보렵니다. 짧지 않은 인생,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