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말’은 누구의 언어여야 할까
질문하는 AI, 대답하는 인간
카메라 앞에 혼자 앉은 지원자는, “최근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낯설지 않은 질문이다. 다만 낯선 건,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건 AI 면접 시스템이다. 표정, 눈의 깜빡임, 목소리의 떨림, 키워드 사용 비율, 말의 속도와 길이까지. 말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분석되고 평가된다. 이제 면접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장면에서, 질문하는 역할조차 인간이 맡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
AI 면접, 왜 문제인가? ― “측정할 수 없는데 측정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교수 Kate Crawford는『Atlas of AI』에서 AI는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며, 사회가 가진 편견과 권력 구조를 재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AI는 새로운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기준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결국 누가 데이터를 만들었고, 어떤 사람들을 기준 삼았는지가 AI의 판단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AI 면접도 마찬가지다. 표정, 말투, 시선, 억양 같은 요소를 바탕으로 지원자의 ‘정서 안정성’, ‘조직적합도’를 점수화하지만, 이 수치가 실제 사람의 역량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된다.
“지금 AI는 무엇을 기준 삼아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가?”
“그 기준은 과연 타당하고 공정한가?”
채용의 언어가 자동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AI 면접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롯데, CJ, SK, LS, KT&G, KB국민카드,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400곳이 넘는 조직이 마이다스아이티의 AI 면접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 중이다. 지원자는 카메라 앞에 앉아 말하고, AI는 그 말의 단어 선택, 표정, 말투, 키워드 활용도를 평가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업무역량’, ‘인성’, ‘조직적합도’ 같은 항목을 점수화한다. 말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신호’가 된 것이다.
기업들이 AI 면접을 도입한 이유는 명확하다.
수만 명의 지원자를 일일이 면접하기 어려운 현실
사람 면접관의 감정과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요구
채용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싶은 경영적 판단
그리고 ‘사람보다 더 객관적일 것’이라는 기술에 대한 믿음
게다가 AI 면접은 평가를 넘어, 기업의 인재 데이터를 축적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말하기 방식이 우리 조직에 잘 적응했는가?", "어떤 표정과 어휘가 향후 리더십 역량과 연결되었는가?"와 같은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다음 채용에 다시 사용되며, 결국 기업은 자신들만의 ‘AI 기반 인재 모델’을 만들기 시작한다.
AI 면접은 문지기다
물론 대부분의 기업은 AI 면접 뒤에 결국 사람 면접을 본다. 그러나 이 흐름은 거꾸로, “사람 앞에 서기 위해 먼저 기계의 판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의 채용은 AI의 언어를 먼저 익히고, 그 언어에 맞게 말할 수 있어야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구조다. 우리는 점점 기계에 통과하지 못하면 인간과 마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실제로 온라인에는 ‘AI 면접 잘 보는 법’이 전략처럼 공유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며 너무 웃지도, 너무 무표정하지도 마세요.”
“열정, 책임감, 협업 같은 단어를 꼭 한 번씩 넣으세요.”
“키워드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세요.”
지원자는 더 이상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기계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훈련받는다. 면접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정답을 말하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언어가 필요한 순간
AI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분석하고, 점수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 사이의 침묵을 기다려주지 않고, 지원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며, “긴장되시죠?”, “천천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은 사소해 보이지만, 관계의 언어다.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며, 서툰 말속에서도 진심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아직 사람뿐이다.
AI가 말을 배우는 시대.
우리는 지금, 기계의 언어를 먼저 익혀야 사람의 언어를 말할 기회를 얻는 구조 속에 있다. 그 구조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말은 무엇일까?
《 Series 1. AI가 말을 배우는 시대 》
AI는 말을 배우고, 우리는 말하는 법을 잊어간다.
기술이 기준을 제시할 순 있지만, 말의 무게는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첫 시리즈에서는, 변화하는 말의 풍경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 고민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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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때 그 말, 피드백이었을까 비난이었을까?
1-2. 센스 있는 말투도 학습되는 중입니다.
1-3. 낮말은 Slack이 듣고...
1-4. 면접관 'AI'입니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1-5. · · · upcomin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