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인 컴퓨터를 맡기고 시간이 남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멀고, 그렇다고 곧장 출근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시간을 잘 활용했다고 나에게 만족할까. 길거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지금 이 시간에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게 뭘까, 조금이라도 나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그 방향은 어딘가.’
스스로 자문했다. 그리하여 찾아간 곳은, 인근 교보문고 서점이었다. 구입해 놓고 펴내지 않은 책, 읽다가 중간에 덮은 책, 서재는 책으로 점점 싸여만 가는데, 그럼에도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욕심이 생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 즐겨 읽는 에세이를 읽을까 하다가도 매대에 누워있는 수많은 책 들이 나를 유혹한다. 그렇게 또 서성거린다. 그리고 또다시 자문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책은 뭔가, 나의 역량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킬 수 있는 책은 뭔가.’
답이 나왔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초보 글쟁이기에 책 쓰기 혹은 글쓰기에 관한 책을 구입해야겠다고 했다. 아, 그런데 글쓰기에 관한 책이 수두룩하다. 글쓰기에 관련된 매대 앞에서 또또또! 서성인다.
하루키, 하루키,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작가의 이름으로 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님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로선 하루키라는 작가의 이름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라면 그만큼 유명한 작가이지 않겠나 해서 잽싸게 책을 들어 올렸다. 아, 그런데 좀 찜찜하다. 그 작가님은 일본 사람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불매 운동하는데, 책을 들어 올리는 나의 손이 민망하기도 하고 매국노가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괜히 양심이.. 뭐.. 아 몰라.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구입.
책 한 권으론 부족했다. 종합 베스트 매대로 향했다. <어른의 어휘력>을 들었다. 이 책은 뭐 종합 베스트 매대에 자리 잡고 있으니 믿어 의심치 않고 바로 들어버렸다. 사람 손위에 메시지를 담은 듯한 그림의 책 표지도 한몫했다.
<어른의 어휘력> 구입.
지름신이 왔다. 또 사고 싶다. 이쯤 되면 중독이다. 뒤 돌아 다시 글쓰기에 관련된 매대로 향했다.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어른의 어휘력. 이 두 책은 두툼했다. 그래서 가볍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을 찾기로 한다. 오렌지색으로 된 밝은 책이 포착됐다. 책도 상당히 얇다. 책 제목도 마음에 든다. 이 책을 먼저 읽어야겠다.
<열 문장 쓰는 법> 구입.
이렇게 책 세 권을 구입했다. 비싸다. 그럼에도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사람들이 쓰지도 않는 물건을 왜 그렇게 사놓는지 이해가 간다. 중독이다. 하지만 난 이것이 선한 중독이라 생각한다. 책은 한평생 함께 갈 수 있는 벗이 아니겠나. 그리고 다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훗날 다시 읽어보면 또 새롭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