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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6. 2023

Neurodiversity

신경다양성이란 무엇일까?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란 Judy Singer가 제안한 용어로, 생물학적 다양성(Biodiversity: 생태계에 사는 종의 다양성)의 하위 개념이다. 생태계 내부의 생물학적 다양성이 클수록 우리 생태계가 안정적이고, 유지가능하듯, 우리 문화권 내부의 신경다양성이 더 존중/촉발될수록 문화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큰 전염병이 돈다고 가정할 때 한 순간에 위기를 맞이할 수 있지만, 풍부한 생물학적 다양성이 존재할 경우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신경다양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신경다양성을 포용하고 존중할 때,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용어는 신경학적 소수자의 시민권 운동을 위해 고안되었다. 이는 의학적, 심리학적 용어가 아닌 "정치적인 용어(political term)"으로 인간 사회를 번영시키는 모든 신경타입을 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은 다양한 신경학적 소수자(Neurologicla minorities)를 포함하는 "포괄적 용어(Umbrella term)"로, 자폐스펙스럼(Autism Spectrum Disorder), ADHD, 학습장애(Learning Disorder), TICS 등을 모두 포함한다. 사실 "전형적인 것(typical)"과 "비전형적인 것(atypical)"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명확한 구분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전형성과 비전형성을 무자르듯 자를 수 있는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은 전형적인 개인과 비전형적인 개인을,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어느 두 사람의 인지, 기억, 언어도 동일할 수 없기에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경학적으로 다양하다.  




  발달장애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은 의학적인 모델(medical model)이다. 의학적 모델에서 장애(disability)는 결함이자 비전형성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치료는 정상화 즉, "가능한한 보편적/평범해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자폐스펙트럼애(ASD)의 치료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면, 과거의 치료법은 상동행동(Restrictive-Repetitive Behavior)을 줄이나, 아이컨택을 높여 '가능한한 평범하게 보이도록' 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아이컨택을 높이는 것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정말 아이컨택이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수적 요소인가? 중요한 것은, 상동행동을 이상행동으로 보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상동행동에 대한 사회적 포용성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사자의 삶에 유의미한 개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 즉, 신경다양성의 시각을 지니고, 개입과 중재에 접근하는 것이다.


  신경다양성운동(Neurodiversity Movement)은 장애에 대한 사회정치적인 모델(sociopolitical model)을 취한다. 즉, 장애를 치료의 대상이나 결함/비전형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성이자 차이로 조망하는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더 전형적이어 보이는 것(be less autistic/ADHA)이 아니라, 더 독립적인 삶을 살고/더 많은 자기결정권을 가지고/더 좋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래의 문장들을 장애에 대한 진보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의 예시로 들 수 있다.


"Disability is created by social barrier. It is society that prevent thier potential."
"It is society which disables physically impaired people. Disability is something imposed on top of our impairment, by the way we are unnecessarily isolated and excluded from full participation in society."

  신경다양성운동(Neurodiversity Movement)과 사회정치적인 모델(sociopolitical model)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Annual Research Review: Shifting from ‘normal science’ to neurodiversity in autism science

Reflactions on Neurodiversity by Judy Singer


그러나 의학적인 모델(medical model)도, 사회정치적인 모델(sociopolitical model)도 온전하지 못하다.예를 들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이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의학적인 개입과 사회적인 낙인 등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가지 입장에 갖히지 않고 두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현재 누군가 나의 전공을 물으면 '심리학이요'라고 답하지만, 나의 본전공은 사회학이었다. 오랜시간,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자 결정한 마음은 꽤나 확고했다. 오랜시간 사회문제, 소수자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왔고,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사회의 변화에 있다고, 모든 개인에게 부여되는 너무나 다른 출발선에도 불구하고, 많은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사회가 무책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학을 공부하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법률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꽤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제도와 법률은 보수적으로 변화하기에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그 사이에서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고통받을 것임을, 그 시간이 짧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심지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때로 제도적 변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말로 쓰이기도 한다'- 대의를 위해서,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 속에서 희생되고 고통받는 개인을 모른척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거시적 시각에서 거대 담론을 변화시켜야한다는 사회학 공부 속에서, 개인의 무력함을 느끼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그 속의 개인을 외면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내일보다는 한 사람의 오늘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생각했고, 나아가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임상가가 된다면 혹은 상담가가 된다면, 더 포용적인 사회로 변화하기 전까지 한 사람의 오늘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 어쩌면 두 학문 모두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겠지만 - 심리학을 통해서는 분명 사회학에 비해 더욱 개인적인, 개인화된 접근이 가능하다고(개인 차원에서 그의 고통에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개인화된 개입에 또한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도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개인의 수는 제한적이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수반될 때 누군가의 삶은 비로소 온전히 더 포용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지쳐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신경다양성운동(Neurodiversity Movement)에, 사회정치적인 모델(sociopolitical model)에 설레인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두 시각의 균형이다. 언뜻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시각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상투적으로만 들리던 시간을 지나, 어느 한 시각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진단을 전문으로 하는 임상가는 근본적으로 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직종이다. 그렇기에 좋은/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임상가가 되기 위해서는, 신경다양성운동에, 사회정치적인 모델에,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그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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