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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수 Apr 12. 2022

나의 이별 이야기

나의 우울과 친해지기

인간에겐, 슬퍼하고 우울해할 시간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불행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몸이 아픈 건 내 몸의 훌륭한 자생력, 회복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적인 아픔을 '극복'함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그 난이도가 천차만별이고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를 갈지 말지 부터 고민하다가 가게 되더라도 내가 알게된 의사선생님에 따라, 나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언제쯤 회복될 지 나도 모르고 의사선생님도 모르니, 마음의 아픔은.. 정말 많이 아프다. 그 고통을 겪어봤기에 난 그 고통에게서 최선을 다해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객관적으로 봐도 최악인 상황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에서도 난 우울과 불행을 거부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겁이 없다. 흉악한 범죄, 귀신, 깜깜한 밤은 날 두렵게 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두렵고 무서운 것은 단 하나, 우울과 슬픔 그리고 불행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아 울고 싶으면 억지로 눈물을 나게 하는 영상과 음악을 따로 찾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찌보면 내 나름대로의 보호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들어 난 처음으로 우울과 슬픔과 철저히 단 둘이 있는 경험을 해보았다. 절대 자의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난 내 슬픔과 우울과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언젠가 읽은 시에서 말하던데. 행복과 슬픔 그리고 놀람 그 외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감정을 다 환영해주라고 했다. 지금까지 난 행복과 즐거움은 너무나 많이 봐왔다. 진심으로 환영해주며 내 삶의 녹여냈고 잘 접대해준 결과 이 둘은 늘 내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슬픔과 우울은 불편하고 싫어했다. 환영은 커녕 1초라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내 삶에 있어서는 큰 변화를 준 것 같다. 이 일들을 몇 시간이고 내 다이어리에 쓰고, 몇 시간이고 내 주위 소중한 친구들에게도 하소연해보았다. 그러다가 친구 한 명이 무심코 나에게 물었다 요즘 블로그 글은 안 쓰냐고. 그러고 보니 블로그의 존재를 잊고 살고 있었다. 나도 이제 25살이고, 2022년의 1분기가 지나갔으며, 처음 글을 썼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 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난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행복하다. 하지만 이렇게 나에게 찾아온 슬픔과 우울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글을 써보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 나에게 소중한 기록이 아닐까 싶어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일단 난 하루만에 2가지 사실을 알게됐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으며 걸리고 싶지 않았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점. 이 모든 일이 하루만에 일어났고 그 하루가 정말 얼마 전에 일이었음을 난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더니, 그게 내 삶이라고 예외가 있을까 싶다.


정말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던 듯 싶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함과 경의로움을 느끼게 해주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사랑해'라는 말을 할 때마다 가슴 속 안에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진심으로 사랑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둘만의 추억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참 많이도 다녔다... 라고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하는 사람이다. 둘 다 어딜 놀러다니는 걸 좋아하니 작년 저장된 사진들의 대부분은 그 아이와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사진이 너무, 정말 너무 많이 있더라. 애석하게도 이 2가지의 조건,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둘만의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이 2개의 조건은 헤어지면 많이 힘들기에 딱 알맞은 조건들이라 이별의 여운이 정말 깊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별을 알게된 것은 어찌보면 인생에서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별이 특히 나에게 좀 가혹했던 이유는 이별을 알게 된 날에 코로나 양성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가혹했다. 어떻게 ,어디서 걸렸는지도 나는 모르지만(심지어 난 3차 백신까지 맞은 상태였다) 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꽤 긴 시간동안 의지했던 사람이 없다보니 그 사람 없이는 어려움을 겪어본 게 너무나 어색했다는 점이 날 더 슬프게 만들었다. 다행히 코로나 양성이어도 증상은 거의 없어서 거의 매일 집에서 홈트를 할 수 있을정도의 몸상태었어서 참 다행이었다. 다만 제일 두려웠던 건 안 그래도 불안하고 힘든 와중에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해야할 시기에 이 자그마한 원룸에서 5일을 지내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 두려웠다. 내가 이성의 끊을 놓치진 않을까,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전화를 걸면 어쩌지?, 결국 내가 항상 문제라고 나를 깎아 내리는 끔찍한 결론을 내버리진 않을까, 많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자가격리가 끝난 이 시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앞서 말한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난 생각보다 괜찮고 더 슬퍼하고 차분히 있을 시간이 필요할 뿐 잘 회복중이다. '차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내가 살면서 처음 알게 된 깨달음인데, 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 내 일이 되어보니 다가오는 느낌이 색다르다. 이별을 했으니 다른 인연으로 전의 연인을 한사코 잊을 수도 있고, 걔가 정말 나빴다고 그 애를 한순간에 세상 최악의 악당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으나 난  조용히, 차분하게 그리고 천천히 그 애를 놓아주기로 했다. 단순히 빨리 잊어버리고 욕을 해버리기엔 그 애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애였기 때문이다. 마음아픈 그리움도 지우기 쉽지 않은 애정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심야 영화를 보고 돌아오고 다다른 동네 공원에서 이 두 마리의 고양이는 신기하게 우리 둘을 계속 맴돌았다.


30대 중순을 지나고 있는 친한 언니가 말했던 게 생각이난다, 20대이기에 할 수 있는 연애가 있다고. 30대가 되고 결혼을 앞두고 보니 그 때 할 수 있었던 연애가 생각나고 가끔은 그립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그 애의 연애는 24살 25살 때밖에 해볼 수 있는 참 '청춘'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연애를 해왔던 것 같다. 사귀기도 전에 우린 미술관과 오설록 티뮤지엄 데이트를 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내가 너무나 애정하는 한옥에 데려가 툇마루에 앉아 여름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나뭇잎과 몇 백년은 족히 돼 보이는 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았었다. 또 심야영화를 같이 보고 온 날,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새벽3시가 넘도록 동네 공원 정자에 앉아 있었었다. 그 정자에 앉아있는 우리 둘이 궁금했는지 가까이 오진 않지만 우리 둘을 하염 없이 맴돌던 고양이 2마리를 기억한다.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 애는 고양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지만 난 그 애에게 눈을 뗄 수 없었고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리는 마음에 그 애를 좋아하고 있음을 확신한 나는 고백을 '질러'버렸다. 미래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사귀게 된다면 이번 여름에만 빤짝할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연애를 하게 될 거라는 불안이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그냥 그 아이와는 절대, 정말로,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코 그 애와 친구로 지낼 수 없음을 난 그 새벽에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이 결코 한 순간의 두근거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알았다.

재채기와 같은 내 고백에 그 애는 많이 당황해 했고 현재보다 미래를 걱정했다. 나는 몇 주 안 돼서 부산에 갈 사람. 그아이는 계속 제주에 있을 사람. 그 미래가 너무나 뚜렷했기에 그 애는 내 마음을 거절 하려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애의 마음을 설득했고 그 애는 결국엔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비가 내리는 월정리 해변의 촉촉한 밤.

사귀게 된 이후로 우린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여름을 후회없이 보내기로 했다. 제주도에 20년 넘게 살면서도 2번째  가 보는 월정리 해변. 그 해변에서 우린 늦여름의 해수욕을 했다. 늦여름이라 쌀쌀했고 날씨도 구름이 많이 껴서 회색빛 하늘에 분무기처럼 내리는 비는 해수욕하기에 전혀 알맞지 않은 날씨였지만 난 내 인생 최고의 해수욕을 즐겼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춥고 비오는 날씨라도 바다는 아름다웠고 따뜻했다.

사실 그 애를 만나기 전에는 그 전에 몇 번의 연애를 통해 현실의 연애는 그리 로맨틱하지 않으며 그렇게 엄청나게 좋아하는 상대가 아닌, 서로의 호감도를 얼추 알게 된 남녀가 타이밍과 상황이 맞기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 연애이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연애란 현실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난 그 애와 만나면서 알게 됐다. 그런 사랑과 그런 연애가 내 인생에 일어나고 있음을.


이별이라는 우리의 결말 때문에 같이 있었던 특별한 순간과 감정이 아예 쓰레기통에 사라져 버리는 건 싫었다. 보이는 게 싫어서 점점 버려지는 그 애의 선물과 물건들을 보면서 난 그 애와 함께 했던 소중한 순간들 만큼은 천천히, 차분하게 보내주기로 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그 때 느꼈던 느낌과 즐거웠던 추억들을 토해내고 싶었던 내 의지 때문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재채기처럼 말해버린 내 고백처럼 이 글도, 이 감정도 그냥 토해버려서 개운해지고 싶었다. 고백했을 때처럼, 이 글을 쓴 이후에도 난 결국엔 개운해 질 것이라 믿는다. 몇 달, 몇 년 뒤에 이 글을 보면서 흑역사라 생각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어쩌면 결혼을 하고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냥 웃음밖에 안 나올수도 있다. 하지만 흑역사라고 해서 역사가 아닌 건 아니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사람과 사랑앞에서 당당하고 당돌하게 진심을 담아 관계를 이어나가게 하는 좋은 영양분이 될 역사라고 믿는다.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글을 끝 맞히면서 그 애에게 말하고 싶다. 이런 경험을, 이런 감정을 알게해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처음부터 불안하고 불투명한 연애었지만 너와 해서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앞으로도 원래 항상 네가 그래왔던 것 처럼 밝고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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