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인 Dec 04. 2019

호수

내 마음의 호수, 그곳에 남은 물결

 


 패딩을 입고 돌아다니면 귀가 시려우니까 더 추워지기 전에 남자 친구와 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의 끝 자락이어서 나뭇잎들은 번데기처럼 쪼그라들었고, 나뭇가지들은 앙상했습니다. 어느 곳은 분필 가루를 맞은 듯 희뿌연 나무들만 모여있기도 했습니다. 초록잎이 무성할 때면 나무를 끝까지 올려다보거나, 나무를 그다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지는 않는데요. 자연은 사계절, 각기 다른 모양으로 참 힘 있고 선명한 것 같아요.


사람들은 삼삼 오오 모두 다른 형태로 숲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왠지 좋았습니다.


숲을 걷다 두 갈래로 나뉘는 길이 나오면 남자 친구는 꼭 제게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먼저 물어왔어요.


 수목원은 처음인데 어느 길로 갈까.


왼쪽을 가리키는 투박한 화살표 위에 ‘호수’가 적혀있었어요. 정말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데 호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왼쪽으로 걸었습니다.


우리는 걷다가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었어요. 호수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은 군데군데 아직 주황빛으로 갈색 빛으로 가을을 떠나보낼 채비를 했습니다.


잡생각과 잡음들은 호수 앞에서 무기력해져요. 그저 조용하게 그것들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듯 사람들은 호수를 보며 걷고 멈춰 서고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남자 친구는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었고 저는 포즈를 취하기도 그를 찍기도 했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였어요. 계절이 바뀌는 구간에는 간혹 알다가도 모를 날씨가 툭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딱 그런 날이었죠.


우리는 오래된 나무다리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았어요. 햇빛으로 따뜻해진 나무에 나른해진 얼굴을 올려두고서요.


호수는 마치 레코드 판의 결처럼 둥근 원으로 겹겹이 간격을 갖고 파장을 일어내고 있었죠.


“아무것도 없는 데 어떻게 원을 계속 그리는 거야? 물으니


“눈에 보이진 않지만 호수 아래에 물고기가 숨을 쉬고 있는 거야.” 그가 답했습니다.


까맣게 깊어서 자세히 보려 해도 보이진 않았습니다. 오리 가족은 파장과 먼 곳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어요.


“보이진 않아도 움직이는구나. 그렇구나.”


저 아래에 정말 그의 말처럼 물고기가 숨을 쉬고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한 희미한 바람 때문에 파장이 생겼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호수는 알고 있을 거예요.

호수에게 남겨진 파장은 진실 이니까요.

호수는 현상에 따라 정직하고 자연스럽게 원을 그렸을 뿐이니까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남들이 알진 못 해도 일어난 일과 자신의 깊이를 모두 아는 호수처럼 내 마음에도 호수가 있다면 거기엔 무언가 지금도 그려지고 있을까.


그곳에는 매일 어떠한 물결이 있을까.


나와 타인의 생각, 감정과 판단은 비슷할 때도 있겠지만 다를 때도 있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나의 모습, 결과 보다도

내가 어떤 모습을 했을까 그것을 내가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아닐까.

내 안에 있는 것들은 흐르기 마련인데 그리고 그것들은 정직한데 타의에 의해 정해지도록 내버려 둔다면 호수는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걸까.

결과는 정지하고 과정은 흐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숲에 있던 기분, 함께 본 호수를 내내 떠올리며 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호수는 어떤 파장을 그려내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