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고 새로운
요리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면 "이제 다진 마늘 한 스푼을 넣어 볼게요."에 주먹만 한 커다란 한 숟갈이 들어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K민족의 마늘 한 스푼이라며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나 역시도 공감한다. 마늘은 많이 넣을수록 맛있거니와 마늘만큼은 바로 생으로 다져 넣어야 신선하고 알싸한 맛이 살아난다. 결혼 준비를 할 때 은숙 씨는 신혼이 뭐라고 마늘 다지기를 백화점에서 좋은 물건으로 사다 주었다. 부지런히 써가던 작년 여름, 된장찌개를 끓인다고 마늘을 씻어서 한 알씩 눌러 넣고 있었다. 그러다 마늘 다지기는 돌연 뚝하고 반으로 부러졌다. 바위처럼 단단한 마늘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 기가 막혔다. 덜렁 떨어진 손잡이는 붙여도 붙여지지 않아 한 순간에 소용없는 쇳덩이가 되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나는 일 년 만에 부러진 상품이 형편없다며 투덜거렸다. 태식은 우리에게 온 새 마늘 다지기보다 10년도 더 된 친정집의 오래된 마늘 다지기를, 늘 더 좋아했다. 하도 오래 써서 빛이 바래고 탁해졌지만 정이 깃든 물건이었다. 태식은 뜯지 않은 새 제품을 은숙 씨에게 선물로 드리고 쓰시던 것을 가져오자고, 경력이 풍부한 그 마늘 다지기를 은근히 탐내기도 했다. 우리는 별 수 없이 칼 등으로 마늘을 다졌다. 그러다 언젠가 주방에서 본 그의 환한 표정이 오랜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떠올랐다.
같이 살기 전부터 우리는 서로의 집에 붙어살듯 집을 옮겨 다니며 점심을 먹었다. 차를 타고 15분이면 왔다 갔다 하는 거리니 그럴 수 있었다. 더불어 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찌 살아볼까 고민하던 터라 같이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사실 대부분은 그냥 논다고) 그렇게 점심을 먹고 놀다 보면 저녁이 돼서 또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으면 일을 끝내고 온 가족들과 과일을 먹으며 얘기하다 보니 또 밤이 되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태식과 우리 집에서 끼니를 해 먹는데 은숙 씨가 얼려놓은 다진 마늘을 다 써서 마늘 다지기를 서랍에서 꺼내야 했다. 마늘 다지기에 마늘을 넣고 쭉 짜는 내 손에 태식은 시선을 떼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대뜸 말했다.
"우와, 이거 너무너무 귀엽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게 뭐가 귀여워?" 나는 얼떨떨하게 물었다.
"이렇게 딱 마늘 한 톨만을 위해 태어난 물건이잖아!"
나는 순간 그가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퀴즈에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우리에겐 익숙한 문화이지만 그들의 눈에 새로운 부분을 말하면 미세하게 골 때리는 기분이 들면서 창의적인 발상에 감탄하고 웃게 되는데 딱 그런 마음이었다. 갑자기 대상이 어색해지더니 순수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네. 진짜 딱 마늘 한 톨만을 위해 태어났네."
듣고 보니 귀여웠다. 마늘 열개도 더 넣을 수 있는 디자인도 아니고 딱 하나를 눌러서 나온다니.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은근히 힘이 들어가는 것이 수고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는 다진 마늘은 사 먹는 집에서 자라와 마늘 다지기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모양이 비슷하고도 달라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서로를 놀라워하던, 살아있는 일상 공유의 초기 단계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각자 수건을 접는 방법이 달라 이 방향이 좋네, 저 방향이 좋네 각종 주장과 설득을 하며 합의를 봐야 했다. 여하튼.
그런 것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던 사람과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새삼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일이 많아졌다. 새삼스러운 것들은 여러 반경으로 존재한다. 내가 생각해도 별로인 내 단점을 상대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게 돼서 나 정말 안 좋은 습관이 있구나 다시금 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고치려고 노력하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시선을 가져보는 일은 눈총이래도 서로에게 다정한 의미가 있다.
반 면, 멀어지며 새삼스러운 것들도 있다. 은숙 씨의 잔소리가 한 집에 살 때는 잔소리로만 들렸는데 이제는 기분 좋은 관심과 사랑으로 들린다. 행복해서 그런지 이전에 입던 청바지가 잠기지 않을 만큼 살이 쪘는데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먹을 것도 며칠 전 은숙 씨와 약속하고, 증권사 비밀번호를 까먹은 것도 모자라 5회 이상 비밀번호를 틀려 공모주 수익이 미로에 갇혔는데 그것도 포기하지 않고 해결하기로 약속을 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알아서 할 게. 하며 알아서 못 할, 회피하는 말을 했을 텐데. 은숙 씨와의 약속도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마음은 더 애틋해지니 지키고 싶고 이룰 수 있는, 웃는 표정의 약속이 되었다.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에 애정을 갖게 된다. 매년 봄을 맞이할 때마다 처음 보는 봄 같아서 황홀한 눈빛으로 꽃을 보게 되는 마음까지. 차갑고 긴 겨울을 지낸 정독 도서관에 연분홍 벚꽃이 화사하게 만개한 모습을 보며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아득하게 바라보다가 집에 왔었다. 봄은 참 짧기 때문에 그런 벚꽃이 이내 져서 아쉬워할세라 지금은 라일락이 피고 푸른 녹음이 반긴다. 자연의 순환은 매 년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계절이다. 그건 나이가 들어도 똑같이 어딘가 갑작스럽고 새로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