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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식당 by 안주인 Aug 06. 2018

'맛있는' 가지를 '아직' 안 먹어봐서 그래

가지를 안 좋아해요, 말하는 너에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지라는 식재료에 열광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결혼 후 거의 가지 예찬론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진을 뒤져보니, 어쩌면 예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하던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구나.


프랑스, 중국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식국가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탐험을 하고 싶었던 나는 신혼여행지를 '터키'로 정하여 신랑을 꼬셨다. 함께하는 첫 해외 여행이니 안그래도 긴장할 것 투성이인데 '터키'라는 나라는 너무 낯설었고 우리의 동선은 너무 빡셌다. 그러니 다녀오고 난 지금에 와서는 '3대 미식국가'라는 타이틀에 갸우뚱한다. 그런건 대체 누가 정한거야? 


그런 터키에서도 물론, 몇가지 인상적인 맛의 경험을 했다. 고등어 케밥도 그렇고 아직 어디에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민트 요거트도 있었고, 양고기, 소고기도 언젠가 써야할 글감으로 쟁여져 있구나. 그리고 파묵칼레의 가지요리가 있었다. 

신혼여행, 터키의 '파묵칼레'에서 만난 거대한 가지요리

음.. 죽기 전에 한 번은 와서 볼만한 풍경이구나 싶었던 '파묵칼레'는 정말 먹을 것이 없었다. 식당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마트나 시장에 가서 식재료 구해다 해 먹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Bar겸 Restaurant쯤 될까 싶은 정체성을 가진 식당이 제법 먹을만 해서 이틀 묵는 동안 이틀 갔던 기억이 난다. 그 곳에서 커다란 가지의 배(?)를 갈라 토마토 소스를 잔뜩 넣은 요리를 경험했다. 와, 가지를 이렇게 근사하게 메인 요리로 만들 수 있구나. 엄마는 가지=나물 반찬으로만 썼는데. 가지의 세계가 넓어지는 시작점이 여기부터였나 싶다. 






맛있는 식재료, 맛있는 음식의 즐거운 경험을 위해


시어머니는 결혼 후, 냉장고가 빌만하면 갖추갖추 택배를 보내오셨다. 시댁은 두 아들을 독립시키자마자 일찌감치 귀농하셨고 텃밭을 가꾸는 것이 어머니의 큰 일과이자 즐거움이시다. 고추, 방울토마토, 상추 같은 것은 물론이고 땅콩에 생강까지 심어 수확하셨고, 봄이면 쑥을 캐고 여름이면 산딸기를 따다가 택배를 한아름 보내주신다. 간장, 고추가루, 매실액, 조림 밑반찬까지. 친정 엄마는 "너희 시어머니 같은 사람 없다. 네 복이다." 말씀하신다. 우리 시어머니밖에 안 겪어 본 철 없는 며느리는 고부갈등은 TV에나 나오는 건줄 알고 산다.

택배 상자를 열면, 쑥떡 봉지에 내 이름이 붙어있곤 했다. 내꺼~

어머니가 텃밭에서 캐다가 보내주신 것들은 마트에서 사다 먹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도소매 유통 과정을 안거치고 바로 왔으니 잘 상하지 않는 것은 물론, '맛의 깊이가 다르다'던가 '재료가 다한다'는 표현을 몸으로 배우게 한다. 신랑이 요리를 잘 하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택배 상자 앞에서 '조리는 거들 뿐'. 


어머니의 택배 상자에는 물론, 가지도 있다. 오이랑 가지는 하룻밤 새에 쑥쑥 자라고 주렁 주렁 열린다던데. 마트에서 비슷한 크기의 것들이 일렬 종대로 누워 있던 것과 달리 올망졸망 작은 것부터 터키의 가지마냥 꽤 큰 것까지 택배 상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 집으로 온다.

어슷 어슷 썰어 올리브유에 소금/후추 간하고 굽기만 해도!
알록달록 채소를 센불에 구워 올리브 오일 / 발사믹 크림을 곁들이면, 그릴드 샐러드
도톰하게 채썬 가지를 부침가루로 연결만해서 구워낸 가지전 한 판 (쥬금. 진짜 맛있!)

요리랄것도 없이 굽고, 간하는 것으로 충분히 맛있다. 어릴 때 가지나물이 흐물흐물하다고 싫어했던 것 같은데, 채즙이 팡팡 터지는 몰캉함의 매력은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그 자체로 맛이 진하지 않기 때문에 소스를 곁들이면 스펀지처럼 흡수해 맛을 전해주는 훌륭한 식재료이다. 


가지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맛있는 가지를 아직 안 먹어 봐서 그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신랑이 자신의 요리를 해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꿈을 꿀 때, 잃지 말았음 하는 이정표이다.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해요, 하면 "맛있는 생선을 아직 안 드셔봐서 그러세요."라고 웃으며 내어주는 한 그릇의 소중한 경험. 물에 빠진 고기를 안 좋아한다면 "맛있는 수육을 아직 안 드셔 보셨죠?" 말 걸 수 있는 음식.


우리의 외식도 늘 그런식이었다. '맛있음'을 늘 찾아 다녔다. 그것은 '먹는다'는 행위가 가지는 자체적 즐거움 이상으로 '맛있음'을 알게되는 확장되는 즐거움이다. 즐거움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는 경험은 무척 소중하니까. 예민한 미각을 세워 평가되는 형태의 경험 말고, 맛있어서 짜릿짜릿한 놀라움, 춤이 절로나는 환호, 그런 것들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으니까. 그 즐거움을 전하기 위한 노력을 잃지말고 노력하자!가 언제까지고 잃고 싶지 않은 에너지원이다.





@칭다오, <선가어수교>의 탕수가지튀김

다시 가지로 돌아가서. 칭다오 여행 중에 만난 '탕수가지튀김'. 놀랍도록 '초딩입맛'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소스를 잘 흡수하는 가지의 특성을 살린 조리법이긴 하나, 짭조롬하고 달달한 끈적거림이 이것이 과연 가지인가 싶을 정도. 맥주를 절로 부르는 맛이었다. 이 요리에 대한 호불호나, 미식의 평가는 좀 미뤄두더라도 "가지를 이렇게도 요리할 수 있구나!"의 측면에서 즐거운 확장의 경험이었다. 아직도 가지를 안 좋아한다면, 이런 가지 요리도 있던데!하고 디밀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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