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바다 Dec 12. 2019


『그림책 이야기』 검은 강아지

그림책 서평 | 박정섭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8년 03월 15일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동네에는 ‘주인 없는 개’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주인이 진짜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유롭게 동네를 떠돌며 아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곁을 내주기도 했지요. 요새는 동네에서 이런 개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주인과 함께 목줄을 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모습 말고는 혼자 다니는 개들을 볼 수가 없지요. 예전의 그 개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집에선가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했을까요? 아니면 하루 종일 밖에서 신나게 놀고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가서 주인의 품에 안겨 쓰담쓰담을 받으면서 잘 잤을까요?


돌아갈 집과 기다려주는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검은 강아지』에 나오는 강아지도 그랬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지요. 하지만 어느 날 강아지를 차에 태운 주인은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혼자 가버립니다. 강아지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믿고 기다립니다. 어디 멀리도 가지 않고 주인이 내려준 바로 그 자리에서. 차가 쌩쌩 다니는 길가를 떠나지 못하고 하얗던 강아지는 까맣게 변해갑니다. 길가의 먼지와 차의 매연을 뒤집어써서 까맣게 변했지만 강아지의 맑은 눈빛은 여전합니다. 비록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주인이 꼭 데리러 올 거라는 굳건한 믿음. 그래서 강아지는 슬프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외로울 뿐이죠.


어느 날 검은 강아지는 자신과 똑 닮은 하얀 강아지를 만납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길 위 생활이지만 그래도 곁을 나누고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검은 강아지는 행복했지요. 주인이 나타나 검은 강아지를 데리고 가면 혼자 남겨질까 걱정하는 하얀 강아지에게 검은 강아지는 주인에게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우리 주인은 내가 해 달라는 건 다 해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검은 강아지를 보면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릴까요.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검은 강아지에게 했던 주인의 약속처럼 주인이 다시 데리러 왔을까요?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니까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 게 맞을까요?


아쉽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 그대로를 알려주기보다는 현실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겠지요.


『검은 강아지』는 판타지 이야기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변에 분명 있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들은 『검은 강아지』를 보고 이런 어른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생각 만해도 낯부끄러워지지만 분명 어린이들의 따끔한 꾸지람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림은 온통 어두운 무채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얀 종이 위의 ‘검은 강아지’는 더욱 까매 보이고 더욱 비참해 보입니다. 하늘에서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달과 별 만이 노랗게 반짝입니다. 많은 그림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화려한 색깔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바로 그림책의 매력입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뒷 면지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작은 CD 한 장을 만나게 됩니다. 요새 같이 좋은 세상에서는 QR코드로 검은 강아지가 담긴 애니메이션과 음악도 간편히 들을 수 있네요. 따스한 음악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검은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손을 내밀어 쓱쓱 쓰다듬고 싶어 집니다.


이제 날이 점점 추워집니다. 곧 눈이 내리겠지요. 길 가에 소복이 눈이 쌓이면 『검은 강아지』에 나온 것처럼 어딘가 숨어 추위를 피하고 있을 길 위의 많은 생명들이 생각이 날 것 같네요.


부디 올 겨울에는 어딘가 따뜻한 품속에서 추위를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