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세요, 만드세운에서
최근 DIY 가구나 각종 공방에서 진행되는 원데이 클래스에서 향초, 도마, 도자기 등을 직접 만드는 것이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 싸고 질 좋은 제품을 간단한 클릭 몇 번이면 살 수 있는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왜 더 큰돈을 들여 직접 만드는 경험을 사려할까?
어쩌면 ‘만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을 도구를 사용하고 만드는 존재로 정의하며 ‘호모파베르’라고 칭했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보다는 생경한 단어지만,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반달 돌칼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말이다.
한 번 깨워진 본능은 만들기보다는 조립에 가까운 체험 클래스로는 채우기가 쉽지 않다. 남이 만든 걸 조립하는 대신 내 생각대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D 프린터와 오픈소스 프로그램의 확산으로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기사들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직접 만든 제품을 판매했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보고 나면 이런 욕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상 내 머릿속 구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감당하며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라고 하지만 3d 프린터 다루기 위해서는 그래픽 툴부터 배우기 시작해야 하는데 그 장벽은 생각보다 높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그 장벽을 넘은 자의 여유로운 감상일 뿐. 실상은 첫 발부터 내딛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도 아이디어를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있다. 바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을지로와 종로 일대에 위치한 소규모 제조업의 밀집지역이다. 필요한 건 튼튼한 두발과 다소 거친 사장님들을 상대할 만큼 두꺼운 얼굴이면 된다. 손으로 그려 설명하고 대화하며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머릿속 그림이 손에 들려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호모파베르로서 당신을 새롭게 만나보면 어떨까.
만드세운은 세운상가 일대의 생산동력을 활용한 메이커들의 창의적인 프로젝트들을 소개합니다.
프로젝트들의 제작 과정을 따라가며, 세운상가 일대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도시와 문화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두 발로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짬짬이 글을 쓰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un_egg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