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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드세운 Dec 12. 2019

을지메이드를 향한 삼 세 판

내 아이의 첫 자전거, First Bike #02. 작업 과정

프로젝트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을지로 생산시스템만을 100% 이용한 제품 생산.

둘째, 제한된 단가 안에서 제품 생산.

셋째, 대중과 을지로에서 만드는 경험의 공유.


그러나 을지로의 생산시스템만을 이용해서 작업한다는 건 어릴 때부터 이 지역을 누벼온 작가에게 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공식적인 디자인 용어와는 또 다른 현장의 언어에 적응해야 했고, 적합한 재료와 공장을 찾는 것 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First Bike의 세 개의 프로토타입이 전시된 모습 (왼쪽부터 프로토타입 1~3) 

하지만 뭐든 삼 세 판은 해봐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을지로 상황에 맞춰 디자인을 다듬고 재료와 부품을 맞춰가기를 반복한 결과 3번째 만에 First Bike가 완성됐다. 



prototype #1. 시행착오


사실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컴퓨터로 작업할 때와 실제는 다르거든요.
부딪혀 보고 만들어 봐야 알 수 있죠. 


작업 설명 중인 정원석 작가 (사진: 정동구)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을지로 생산시스템 안에서 First bike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첫 단계였다. First Bike는 목재를 CNC(컴퓨터 수치제어 기기를 이용해서 소재를 절삭하는 작업)로 가공해 각 부품을 조립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제품인데 먼저는 목재 CNC를 다루는 집을 찾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잘못했다간 작업 중 화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소재부터 조립부품의 안정성 문제까지 부딪혀 보니 변경해야 할 점이 많았다. 처음 소재로 선정한 나왕 합판의 경우 질이 좋지 않아 자전거 부품을 절삭한 단면이 많이 거칠었다.  이렇게 되면 샌딩 등 후가공이 필요해 인력과 품이 많이 들어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바퀴에 따로 타이어 가공을 하지 않고 나무로만 두었더니 제품 완결성에 문제가 생겼다. 바퀴 다운 성능을 내지 못했던 것이다.


* material: 라왕 합판 , 볼트




prototype #2.  전화위복   


두 번째 프로토타입 작업에서는 첫 번째 작업에서의 문제들이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우선 소재가 나왕에서 자작나무 합판으로 바뀌었다. 자작나무를 구매한 동양목재 사장님 덕분에 목재 CNC에 보다 능숙한 업체도 소개받았다. 나무 자체가 단단해진 데다, 작업 숙련도도 높아져서 절단면이 깔끔하게 나왔다. 더 고급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작업 시간을 덜어 오히려 전체 단가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어였다. 을지로 어디에서도 타이어를 판매하지 않았다. 타이어는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공업용 V벨트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V벨트를 발견한 게 가장 재밌었어요.
사실 모르던 부품은 아닌데 타이어로 활용할 생각은 못해봤거든요.


V벨트를 구매 중인 정원석 작가 (사진:정동구)

V벨트 덕분에 을지로 100% 활용이라는 목표도 달성하고, ‘을지로에서 타이어로 쓸 수 있는 것 이거밖에 없을 걸?’ 식의 위트까지 작품에 입혀졌다. V벨트의 용도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재미있는 요소일 게 분명했다.


핸들을 원하는 곳에 꽂아 두 가지 모드로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도 수정됐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니 여유롭게 추가적인 시도들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 material: 자작 합판 , V벨트 , 볼트




prototype #3. 유종지미   


이미 두 번째 작업에서 많은 문제점을 수정했지만, 최종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정원석 작가는 수정을 거듭했다. 단순히 예쁜 자전거가 아닌 튼튼하고도 성능까지 좋은 자전거를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냥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자전거답게 만들고 싶었어요.
First Bike의 최종모델


우선 바퀴와 방향을 조절하는 부분에 베어링을 추가해 자전거의 움직임을 보다 부드럽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나무와 쇠의 경도 차이로 발생하는 부식을 막기 위해 베어링을 감싸는 플라스틱 허브까지 자체 제작했다. 덕분에 나무자전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주행감을 자랑하는 First Bike의 최종 버전이 완성되었다. 


나중에는 각자 원하는 형태의 자전거를
만들 수 있도록 확장형 First Bike도 시도해보고 싶어요.
  그런 게 또 DIY의 매력이잖아요.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서 끝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확장형 First Bike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도 이야기했다. 현재는 가장 단순한 밸런스 자전거 형태지만 나중에는 페달을 추가하고, 모터를 추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보면 First Bike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material: 자작 합판 , V벨트 , 볼트, 베어링, 플라스틱 허브




아쉽지만 양산은 다음 기회에


당초 프로젝트의 목표는 을지로에서 기획, 제작된 제품을 양산해서 판매까지 하는 것이었지만 단가 문제로 양산의 꿈은 중국 공장에서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작가의 변. 


도심지에 다양한 산업 시스템이 모여 있는 을지로 특유의 장점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3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볼 수 있었지만, 항상 동전의 양면이 있는 법. 특유의 장점은 높은 단가로 이어져 현실적으로 을지로에서 대량생산은 불가능했다. 

 

워크숍에서 First Bike를 직접 만드는 시민의 모습

양산의 꿈은 다음으로 미뤄졌지만, 만드는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던 목표는 작게나마 이루었다. 지난 10월 26일 세운상가에서 열린 서울도시장에서 총 8명의 신청자들과 함께 직접 First Bike를 만들어보는 워크숍이 진행됐다. 내 아이의 첫 자전거, 내 인생 첫 작품을 직접 만들게 된 워크숍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서 보다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여전히 시도하기 좋은 곳, 을지로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진행한 정원석 작가도, 기록한 정동구 감독도 입을 모아 을지로는 여전히 뭔가 하려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곳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다양한 산업 시스템이 한 군데 밀집되어 있어 시작부터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한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 


예를 들어 한번은 외국인 친구가 볼펜 디자인을 하러 한국에 왔어요.
 볼펜 용 스프링을 제작해야 하는데, 정보나 얻자는 마음으로 저한테 얘기를 했죠. 그런데  비행기 타기 전에 제가 결과물을 줬어요.
연신 ‘Amazing!’을 외치더라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을지로 시스템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한테는 가능하다는 거죠.


사실 작가가 금세 새로운 CNC업체를 찾은 것도, 타이어를 대체할 부품을 발견한 것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다양한 부품을 찾을 수 있는 을지로였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높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소량 주문생산’‘샘플 제작’에는 최적화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라는 것. 

을지로 거리 위의 FIRST BIKE (사진: 정동구)


또 하나의 장점은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뭔가 아이디어만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물론 시작은 어렵겠지만 작업자들과 친분을 쌓고 대화로 풀어가다 보면 정밀한 도면을 그리는 능력이 없더라도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을지로는 무언가 시도하고자 하는,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좋은 곳이다. 






만드세운 작가, 박해란 

도시와 문화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두 발로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짬짬이 글을 쓰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un_egg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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