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

에세이 2022.07

by 정훈



나는 평소 강남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퇴근한다. 집은 좀 먼 경기도 남쪽이지만 자리에 앉을 수 있어 편하게 간다. 회사에도 집에도 속하지 않은 짧은 퇴근길은 양쪽의 간섭이 잠시 사라진 온전히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된다.


항상 같은 퇴근길이지만 조금씩 다르게 간다. 타는 위치를 조금 멀게 앞 정류소로 가기도 한다. 회사는 정류소 사이 중간쯤에 있으니 어디로 가든 크게 거리의 차이는 없다. 길가에는 온갖 밥집과 술집이 늘어져있고 퇴근 후 저녁을 맞이하는 회사원들, 수업을 마치고 친구를 만나러 온 학생들로 북적인다. 술집에서 호객하는 목소리와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자기네가 더 중요하다고 와글대며 서로 뒤엉켜 여러 갈래의 소음을 만든다. 개인 방송을 하는 유튜버들은 셀카봉으로 고정시킨 스마트폰을 들고 젊고 화려한 여성들에게 방송에 참여해줄 것을 집요하게 권하지만 호응해주는 사람은 드믈다.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 혼자 먹기에 적당한 위치에 순댓국집이 있다. 저녁을 해결해야 하기에 자주 가는 식당이다. 따뜻한 국밥에 청하 한병 혼술 하기에 어색하지 않은 집이다. 뉴스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 집이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민하지만 항상 같은 식사를 시킨다.


식사를 마치면 길가로 나와서 차가 멈추는 익숙한 위치로 이동한다. 강남역은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타는 회차점이기에 안에는 좌석이 여유롭다. 버스에 오르고 보통 오른쪽 중간쯤 창 측으로 자리를 정한다.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자리마다 충전기를 비치해둔 것이 참 좋다. 배터리가 부족할 때 하차 태그를 못할까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거나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한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커다란 실례라도 되는 듯 각자의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다. 나 역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절대 관심 없는 듯 전화기를 꺼내 유튜브를 보거나 단순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를 리뷰해주는 채널이나 예전에 많이 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하이라이트를 본다. 혹은 정말 단순한 블록게임이나 아이들한테 배운 전투게임을 한다. 전두엽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 그야말로 단순한 자극에 최적화된 시간을 보낸다. 멍한 느낌이 유쾌하진 않지만 머리를 쉬게 하는 방법으로는 최고이다.


고속도로를 지나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멀리 건너편에 자동차 매장이 보인다.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업무의 찌꺼기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맴돌고, “아 오늘도 집에 전화도 한번 못했구나”라는 불안함이 밀려오면 ‘내사랑’이라는 이름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오늘 잘 지냈는지, 무슨 일 없었는지 묻고 무엇을 사 갈지 확인한다.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고 무언가에 지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다. 첫 번째를 바라긴 하지만 가장 좋을 때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을 때이다. 나는 책임을 다했으며 좋던 나쁘던 더 이상의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기에….


오늘은 좀 일찍 버스를 탔고 저녁을 먹지 않았다. 집 근처에서 해결할 생각이다. 내릴 곳이 다가왔지만 여름날은 아직 밝았다. 내려야 할 곳에서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치다 보았던 짬뽕 전문집이 떠올랐다. 거기서 저녁을 먹을까?. 겉보기에는 허름했지만 맛이 있으니까 그렇게 외진 곳에도 장사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집을 지나쳐 어디쯤 내려야 할지 머뭇거리다 그만 그 식당을 놓쳐버렸다. 버스는 이제 가보지 않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다. 버스 노선을 확인하고 서둘러 내릴 곳을 정해야 했다. 현재 위치에서 좀 더 가면 나오는 종합 재래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거기서 내리자.


시끌시끌한 새벽의 시장을 생각했지만 여기는 조용했고 손님은 많지 않았다. 아마 하루의 마무리를 할 시간이라 그런 듯하다. 과일은 다 나가고 떨이만 남은 듯했고 가판 위의 묶여 있는 봉지과자들은 오늘은 주인을 찾기 힘들다는 듯 어지러이 놓여 있다. 사천 원짜리 뻥튀기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얼음 위에 소금으로 버무려진 각종 생선들이 시선을 잃은 채 가지런히 놓여있다. 평소에 좋아하는 아구찜의 아구가 맛과는 다르게 흉측한 모습으로 묶여있다. 또 다른 골목에는 요리된 각종 고기와 떡이 놓여있다. 기름진 고기는 코를 자극했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떡집에서 흘러나왔다. 두세 가지 색깔로 일회용 그릇에 포장된 꿀떡과 절편이 눈에 들어왔다. 만원을 주고 세 가지 떡을 샀다. 계산을 하고 조금 앞쪽 건너편의 조그만 식당 앞에 멈추었다. 붉은색 글씨로 ‘순댓국’이라 쓰인 익숙한 냄새가 나는 집이다. 오늘은 여기서 밥 먹고 가야겠다. 식당 위에 과자랑 떡을 올려놓고 순댓국과 청하 한병 주문했다. 앉아서 집에 전화를 한다. “오늘 하루 잘 지냈어? 오늘은 떡 사 가지고 가려고 해”.



작가의 이전글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