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280년 서진 통일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중국사에서 혼란기는 흔했지만 이 시대만큼 임팩트 있기가 어렵다. 최악의 난세이면서도 최고의 인물들이 창업하여 자웅을 결한 용호상박의 시대라 할 만하다. 이 시대의 역사를 소설로 엮은 나관중의 첫 문장은 실로 압권이다. “천하는 오래 합쳐져 있으면 필히 나뉘고 오래 나뉘면 필히 다시 합쳐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란 역사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명문장이다.
소설로 쓰인 <삼국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사건은 황건적의 난이다. 태평도계 종교집단이 후한 말 수탈당하던 민중의 불만을 등에 엎고 전국적인 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반란군들이 모두 누런 두건을 썼다 하여 황건적이라 불렸다.
황건적의 난은 폭정과 부패로 몰락하기 일보 직전인 후한 제국의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켜 놓는다. 황제 칙령을 받는 중앙군을 이끌었던 황보숭 장군이 이 반란을 진압하는 공을 세운 이후 환관들에 의해 견책되면서 완전히 군 체계가 풍비박산이 났다. 역설적이게도 한 제국군은 황건적의 난 때문에 박살이 난 게 아니라 이기고 난 후 ‘나쁜 정치 세력’(환관)에 의해 약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중앙군이 힘을 잃은 대신에 전국에서 황건적의 난 때문에 동원된 의병 군과 지방 군벌들은 약진하는 계기가 됐다. 대표적으로 서량 동탁과 사예 정원, 기주 한복, 유주 공손찬 등이 있었는데 아주 작은 군세지만 유주 탁군에서 탄생한 의병 군도 그중 하나였다. 바로 유비, 관우, 장비가 이끄는 유협 집단, 훗날 촉한의 건국자들이다.
애초에 유비, 관우, 장비는 출세를 위한 도약대라고 생각해서 거병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살던 지역에 메뚜기 떼처럼 들끓었던 황건적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생업에 차질을 빚었기에 의협심 강한 오지라퍼들인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게다가 다들 젊은 혈기에 의형제를 맺어서 의기도 충천했다. 그 뻗치는 기운을 발산할 목표가 필요했고 난세에는 전쟁만큼 좋은 비전은 없었다.
유비, 관우, 장비가 거병하려고 할 때 그들은 정규군에 자원입대할 수도 있었지만 마을 청년들을 긁어모아 의병을 조직하는 걸 선택했다. 이런 상황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보통 의병을 조직하려면 한 고을의 유지 정도는 되어야 했다. 돈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하나 가진 거라곤 젊음과 용기뿐인 이 세 청년은 번듯한 군대를 조직하고 게다가 값비싼 무기까지 조달할 수 있었다. 누군가 투자한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야기책에선 장세평과 소쌍이라는 중산국(하북 평원) 대상이 장비와의 인연 때문에 유비를 만나 투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장세평과 소쌍은 말 무역을 하는 상인들인데 평원에서 기른 말을 북쪽에다 갖다 파는 일을 했다.
하나 하북이 황건적에 의해 쑥대밭이 되자 원래의 무역로를 잃고 탁군에 피신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 두 상인은 과거 상행 중에 힘센 장비에 의해 호위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 상행의 안전을 도모코자 장비를 만났을 건데 장비가 그들을 유비에게 소개한 것이리라.
장세평, 소쌍은 유비와의 대담 이후 운송 중이던 말 전부와 재물을 털어서 모조리 투자했다고 한다. 야사에선 그 투자금의 이윤을 갚을 수 있을 때 수십 배로 갚으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가 그런 엔젤투자를 그렇게 과감히 감행했을까?
장세평과 소쌍의 입장에서 보면 유비에 대한 투자는 단기-중기-장기 이익이 분명히 있는 투자였을 것이다. 첫째, 단기로 보면 유비가 이끄는 의병대는 유주, 청주 등 하북 일대의 황건적을 소탕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장세평 등이 이후에도 상행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유비의 의병대가 지역 일대를 수복하고 안전한 길을 열어줘야만 했다. 이번 장사는 망해도 다음 장사에 성공하려면 유비군을 도와 이기게 해야 했다.
둘째, 중기로 보자면 장세평 등은 유비의 자질과 그가 지닌 맨파워를 높이 샀을 것이다. 야사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장비와 친분이 있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호걸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비 이상가는 영웅 관우가 함께 있고 우두머리인 유비는 황제의 먼 친척뻘이라고 한다. 이 조합은 난리가 평정된 이후에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했다. 그들과 인연을 맺어두면 군상으로 도약해서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었다. 유비 집단이 성장할수록 다른 군대와도 연합할 테니 군수품 조달사업의 영업망을 계속 확장할 수도 있었다.
셋째 장기로 봐보자. 후한 제국이 멸망할 것은 상인인 장세평, 소쌍의 눈에도 분명해 보였을 거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나무에 올라 황제의 행차 흉내를 냈다는 유비의 꿈과 그릇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유비가 일 군을 다스린다면 일 군의 상인이 될 것이고 일 주를 다스린다면 주의 상인이 될 것이고 만약 천하를 다스리게 된다면 천하의 상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그저 변방의 말 무역상일 뿐인 장세평, 소쌍이 도전해 볼만한 투자 아이템이 분명했다. 사실 난리 중에 재물을 가지고 말을 운송해 보았자 황건적에게 털리면 끝이다. 그럴 때는 최대한 호의를 보이며 미래의 캐시카우이자 앞으로 소개받을 영업망의 키롤인 유비에게 투자하는 편이 나았다.
역사서에는 장세평과 소쌍에 대한 기록이 아주 짧게 기술되었을 뿐이다. 그들의 투자가 이후 어떻게 회수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추측컨대 장세평과 소쌍은 못해도 중기 목표까지는 밸류에이션 도달에 성공했을 것 같다.
유비는 다소 부침은 겪지만 벼슬로만 보면 고속 승진을 거둔 케이스다. 의병장에서 평원상을 거쳐 서주 태수, 예주목에 이르기까지는.. 그 사이 유비와 연관된 군벌만 해도 공손찬과 도겸, 조조 등이다. 싸운 군벌은 조조, 원술, 여포 등이다. 하나같이 그 시대 최고 레벨의 군벌들이었다. 그때까지 장세평이 군 조달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면 과연 얼마나 벌었겠는가.
만약에 유비가 조조에 의해 형주 신야현으로 패주한 후 강하까지 쫓겨 도망간 죽음의 루트까지도 장세평 등이 함께 견뎌주었다면 결국 그들은 적벽대전의 치열한 역전극 이후 장기 목표인 한 국가의 대상이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결국 유비는 천신만고 끝에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장세평, 소쌍이 투자자이자 동업자로 어디까지 유비와 함께하고 어디서 엑싯했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 속에서는 장세평과 소쌍이 유비의 영웅됨을 알아보고 돈만 쾌척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유비 또한 장세평과 소쌍의 투자를 은공의 기부 정도로 여긴 것으로 보이고 말이다. 허나 내실을 들여다 보면 투자자는 투자자대로, 창업가는 창업가대로 절묘한 타이밍에 자기가 보는 가치에 맞게 판단하고 거래한 것이라 본다.
가장 좋은 투자는 어차피 써야 할 돈을 가급적 배포 큰 호의로 보이게 에누리 없이 베푸는 것이고 가장 좋은 투자 아이템은 단기-중기-장기 그림이 한눈에 그려지는 것이어야 한다.
기억해두는 편이 좋다. 가장 업사이드가 큰 투자 아이템은 가장 혹독한 난세에 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