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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간인 박씨 Jan 01. 2023

우당탕탕 스몰웨딩


정안수를 떠놓고 식을 하고 싶다던 말은 진심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도 의문이 많았지만,

결혼의 관문인 결혼'식' 자체 항상 물표였다.


애초에 결혼식에 로망이 없었던 지라,

그날 하루 공주처럼 꾸며질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부끄럽고, 소름이 돋았다.


직장 생활을 몇 년 하면서, 결혼 자금을 모아 집과 결혼식을 준비하는 일반적인 청년들의 과제


지인들의 결혼식은 예쁘고 아름답 경건하지만

도저히 내가 그 과정과 시간을 견딜 수 없겠다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웨딩홀에서 하는 결혼이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허례허식인 것도 아니지만,

그저  그 자체를 귀찮은 과정으로 인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떤 형태든 식을 올린 건

사실 부모님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도 있었다.

어느 날 직장과 도시의 생활을 제쳐두고 시골로 내려간 자녀가 식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고 부모님이 가족, 친지들 앞에서 해야 하는

구구절절 많은 설명들.

내 물음표와 의문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리하여 '식은 하겠다!'

하지만 중요한 의미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배우자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일 테니

식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전부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시작부터 끝까지 절대 깨지지 않았다.


지인의 혼식에 다니며 '이번 주말에는 좀 쉬고 싶은데'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고,

 사람한테까지 축의를 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기도 했다.

(두 번의 이직을 하며 연락이 끊 려받지 못한 축의가 훨씬 많다)


만히 식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나 말들이 많은 지,

남의 집 잔칫날을 채점하는 여러 평가 기준들.

혼자 이동이 힘들 정도로 인위적으로 꾸며진 신부와 비교적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신랑.

마치 예법서에 있어 모두가 따라야 하는 것 같은 정해진 식순과, 잘 짜인 각본과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는 1시간의 연극 무대가 어쩌면 이 시대  보편적 결혼식이라는 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작 식에 가려져 부부 두 사람의 행복한 시작이 잘 보이지 않다. 준비 과정에서 서로에게 실망하며 싸운다는 지인들의 기가 넘쳐났다.


이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내가 결혼식이라는 것에 뒷걸음질 치게 만든 것들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식 생각이 없었으니 축의를 포기하더라도

식에 점수를 부여할 사람들은 애초에 초대하지 말

가까운 친인척과,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친구들

딱 거기까지만 초대자.


우리의 기쁜 날 굳이 흠을 찾아내지 않고,

유쾌하게 웃어줄 사람들.

본질적인 요소를 예쁘게 봐주고,

껍데기는 중요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


그저 인생의 좋은 사람들에게 배우자와의 시작을 알리며 맛있는 음식과 시간을 대접는 게 어떨까.

그날의 주인공이 내가 되기보다, 가족 친구들이 소풍을 나온 듯 행복한 시간을 선물고 싶었다.


그래서 당초에 생각한 인원수는 대략 70명 정도였다.

번에 근교 레스토랑 야외 정원을 섭외하고,

불필요한 건 죄다 생략 및 축소했다.

장소 섭외 당시 근교 레스토랑의 야외정원, 실제 식 올렸을 때는 유리정원이 생겨 원했던 그림과는 약간 달라져버렸다.


양가 부모님들도 우리에게 전권을 위임한지라, 별로 관심이 없으셨고

(정말 날짜와 장소만 알려달라고 하)

한참 준비하던 때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평범한 식 진행이 불투명한 황이기도 했다.

한동안 49인 하객 제한이 있었고 당시로서는 더 강력한 제한이 생길지, 완화될지 알 수 없었다.


청첩장은 정말 식에 초대드릴 분들께만 전달하고,

그 외 지인들에게는 작은 선물을 제작해서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스몰웨딩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식 당일

내 몸에 맞춰 제작한 수제 드레스에,

높은 웨딩슈즈 대신 흰 스니커즈를 신고 식장을 종횡무진 누볐.


남편은 남편대로 손님을 맞았고

나도 내 손님은 직접 맞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이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동안

사회자와 축가를 맡아준 친구들과 리허설부터 식순까지 직접 조율했다.


예도인 없어 신랑신부가 어머님들의 화촉점화 입장까지 안내했으니,

정말 얼렁뚱땅, 우당탕탕 식을 치렀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그럼에도 초 예상 인원을 넘어 100여 명이

온전한 축하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달려와

기쁨을 나눠주었다.




정안수 대신 선택한 우당탕탕 스몰웨딩은 

결과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되는데,


식장의 베뉴가 아름다웠는지, 신부의 드레스가 반짝거렸는지, 식사가 맛있었는지와 같은 부분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 모인 행사가  큰 문제없이 잘 치러졌고

1부터 10까지 어느 하나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는 만큼,

함께 준비한 하나의 관문을 잘 마무리했다는 만족감.

부모님이 우리의 선택을 온전히 믿어주시고, 신뢰한다는 고양감.


이런 감정적인 충만함이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닥칠 역경 앞에서 에게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혼인서약서에 쓰여있던 것처럼 말이다.


지난 10년 간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묵묵히 제 옆을 지켜준 당신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더 많은
역경이 닥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파도를 당신과 함께 손잡고
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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